윤희경

삼포해변을 막 출발했다고 
속초에서 보내온 아침 편지에 가을이 두 섬이다 
하얀 파도와 빨간 등대를 짊어진, 길은 이차선 
왼쪽 모래는 맷돌에서 나온 콩가루처럼 노랗다 
몇 개의 태풍을 견뎌낸 소나무가 힘차고 
바위에 부딪치는 물결에도 사연이 겹겹이다 
국난을 너머 들들 끓는 지구전에도 상하지 않은 여러 폭의 풍경 
모래알을 차면서 나도 9.4킬로를 걷는다

낚싯대 내리고 서 있는 사내의 갈고리를 지나
기암괴석 돌밭을 건너며 비로소 굳은 등줄기를 폈다
사색과 태양이 남매 같은 해파랑 길 
등대와 의자들이 반가운 친지 같다 
아이야
바다를 뚫고 가는 길에는 속도만이 최선은 아닐 거야 
옛날처럼 숨바꼭질도 하면서 
천 길 물속을 넘나들어 보자
 
다림질된 곶 앞에 해오라기 몇 마리 웅성거린다 
시월 바다에 뛰어들까 말까 
가을 하늘 속으로 날아들까 말까
할머니가 그러셨다 너무 깔끔해도 곁이 없다고 
그땐 바다가 둘둘 멍석처럼 말리는 흰 마당 같앴다
 
동네 안길, 출렁이는 황금색 억새에 어른거리는 두고 온 식구들 
낮은 기와집 앞 너른 연리지에는 
흔들리는 연잎이 귀향을 재촉한다 
아버지 손에 들려오는 학꽁치나 전어가 있었지 
엄마 손을 따라오는 두렁박 속 소라나 전복도 있었지 
빈 집을 지키는 아이들에게 구르며 달려가 
허기진 밥상을 서두르시던 
세월이 흘러도 어른거리는 자연산 회 한 접시 위로
선홍빛 해가 기울어간다
 
가을바다 누운 볕에 서둘러 가진 항에 도착했다 
고맙고 억센 2020년 가을 한 날 
갯내음이 물씬 묻어나는 해조의 편지는 
어느새 내 젖은 그리움의 무게이고 
아직도 걷고 있는 네 푸른 파도의 교차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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