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을 전공한 클라리넷 연주자의 듀엣.

요즈음 호주 시골에 살기 때문에 좋은 점이 있다. 주위 사람들도 우리 동네에 사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종종 나눈다. 유행하는 코로나바이러스 위험에서 조금은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마스크 쓴 사람을 보기 어렵다. 비교적 자유롭게 일상생활을 누린다. 

물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다. 그러나 대도시와 비교할 정도의 불편함은 아니다. 이러한 시골이지만 사람들 마음 한구석에 자그마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리코더의 아름다운 음색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 무대

얼마 전에 가까운 타리(Taree)라는 동네에 있는 재향군인클럽(RSL Club)에 들렸다. 방역 수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클럽 중 하나다. 입구에 들어서니 직원이 체온을 측정한다. 흔히 있는 일이다. 그러나 직원이 묻는 말이 이외다. 최근에 시드니를 방문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다. 시드니를 위험지역으로 취급하고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문득, 지난 일이 생각난다. 평소에 자주 오가는 이웃과 식사하기로 약속했었다. 그런데 돌연 이웃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에 손님이 온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낯선 사람들이 우리 집에 있는 것을 본 모양이다. 시드니에서 친구들이 왔었다는 나의 대답을 들은 이웃은 약속 날짜를 늦추자고 제안한다. 요즈음 약을 먹고 있는데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형적인 호주 초원의 모습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했던가. 코로나바이러스가 위험하다는 이야기를 입에 달고 지내면서도 각종 모임은 멈추지 않는다. 동네 식당에서는 삼삼오오 모여 앉아 커피나 맥주를 앞에 놓고 담소하는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다. 

동네의 각종 모임도 활발하다. 내가 속한 밴드 그룹도 매주 모여 연습한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의자를 멀찌감치 떼어 놓았고, 다과와 함께 담소 나누는 시간을 생략한다는 점이다. 은퇴한 사람이 주를 이루는 고령자 골프 모임도 계속하고 있다. 요즈음은 참가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추세다. 골프를 핑계로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갖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동네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얼마 전에 음악회 초대를 받았다.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은 아니다. 악기를 다루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 조촐하게 클래식 음악을 선보이는 시간을 매년 갖는다고 한다. 올해는 바이러스 때문에 청중을 제한했다고 한다. 장소는 윙햄(Wingham)이라는 전형적인 호주 시골 동네다.     

음악회에 초대받은 날이다. 재즈 공연이라면 청바지 차림에 슬리퍼 신고 참석해도 될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악이라 의복에 조금 신경 쓰인다. 오랜만에 슬리퍼 대신 구두를 신고 예정 시간보다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산등성이를 따라 닦아놓은 포장된 시골 도로에 들어선다. 주위 풍경을 즐기며 운전한다. 보라색 꽃이 만발한 자카란다 나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는 길에 전망대가 있다는 표지판을 보고 잠시 차를 세웠다. 

오래전에 와 본 적이 있는 전망대다. 전망대에 올라서니 예전에 본 풍경과 달라진 것이 없다. 강물이 심한 곡선을 그리며 푸른 초원을 어루만지며 흐른다. 너른 초원 구석에 있는 큼지막한 농가도 옛날 모습 그대로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로 인해 물기를 머금은 초원은 진한 초록색을 가감 없이 들어낸다. 

전망대를 나와 다시 운전한다. 이번에는 많은 젖소가 초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풍경이 나타난다. 낮은 구름을 배경으로 젖소가 풀을 뜯는 모습이 목가적이다. 차를 도로변에 잠시 세우고 카메라에 풍경을 담는다. 집에서 20여 분 정도 운전해 나왔지만, 호주 전형적인 시골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도시 생활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골에 머무는 이유 중 하나다.   

개인이 여러 잼을 만들어 자선 모금을 하고 있다.

공연 장소에 도착했다. 장소는 동네에 있는 작은 마을 회관이다. 아는 사람이 반갑게 인사한다. 나와 같은 밴드에서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테리(Terry)와 그의 아내다. 그의 아내는 오랜만에 만났다. 공공장소가 아니면 반갑게 등을 두드리며 인사했을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주위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조금 떨어져 안부 인사를 나누며 반가움을 표한다.    

입구에는 여러 종류의 잼이 테이블에 놓여 있다. 가정에서 만든 잼을 파는 것이다. 잼을 팔아 생긴 수익금은 프레드 홀로우(Fred Hollow) 재단에 기증한다고 적혀 있다. 빈곤한 나라에서 눈 수술을 해주는 의료봉사 기관이다. 호주에는 기부 문화가 뿌리 깊게 박혀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작은 동네에서 적은 숫자의 사람이 모여도 어려운 사람을 위한 기부를 생각한다.  

연주가 시작되었다. 클라리넷 듀엣이다. 쉽지 않은 멜로디와 템포를 주고받으며 연주한다.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그리고 피아노 협주도 이어진다. 할머니가 무대에 올라와 성악가 수준의 무반주 독창을 부른다. 리코더의 멋진 연주도 마음에 와닿는다. 피아노를 비롯한 현악기들과 함께 클래식 음악을 멋지게 소화한다. 리코더는 초등학교에서 기악 입문용으로 배우는 간단한 악기라고 생각하는 나의 선입관을 무색하게 만든다.  

음악회 가는 길에 잠시 머물렀던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박수와 함께 동네 음악회가 끝났다. 행사가 끝났다고 헤어질 분위기가 아니다. 여러 사람이 준비한 케이크와 다과가 테이블 위에 올라온다. 나는 집에 돌아가야 할 일이 있어 주위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며 인사를 나누었다. 도시에서는 맛볼 수 없는 정겨움이 넘치는 분위기를 뒤로하고 집으로 향한다. 

사교성이 많은 호주 사람들이다. 그리고 은퇴한 사람들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 가는 줄 모를 것이다. 오늘 공연에 대한 이야기도 있을 것이다. 동네 이야기도 곁들일 것이다. 뒤풀이에 참석하지 않아도 분위기가 눈에 선하다. 

고독한 삶을 각오하고 7년 전 시드니를 떠나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자연과 가까이하는 삶을 선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곳에 살면서 고독한 삶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오히려 더 빈번하게 사람과 접촉하며 지낸다.  

비우면 더 많은 것이 들어온다는 성인의 말씀을 생활 속에서 체험한다. 

은퇴한 사람들이 주를 이루는 골프 모임. 뒤풀이 때문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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