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속 130km 강속구의 ‘야구천재’ 소녀
한국 최초, 유일 여자 고교야구선수 출신
영화에선 진출한 프로입단 현실에선 좌절
일본서 선수 활동 후 호주 정착 

제 11회(2020년) 호주 한국영화제의 오프닝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야구소녀’였다. 영화 ‘야구소녀’의 실제 인물이라고 알려진 안향미 선수는 10여년 전 호주에 와서 거주하고 있다. 3일 시드니에서 안 씨를 만나 야구선수의 삶과 야구를 떠난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영화 ‘야구소녀'는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이자 시속 130km 강속구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지닌 ‘주수인’(이주영)이 졸업을 앞두고 프로를 향한 도전과 현실의 벽을 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담은 여성 성장 드라마다.

‘주수인’은 최고 구속 134km, 볼 회전력의 강점으로 ‘천재 야구소녀’라는 별명을 얻으며 주목받아 왔다. 고교 졸업 후 오로지 프로팀에 입단해 계속해서 야구를 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하던 ‘수인’은 야구부에 새로운 코치 ‘진태’(이준혁)가 부임한 이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최윤태 감독은 ‘주수인’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모티브로 삼은 인물은 안향미 선수라고 밝혔다. 안 선수는 1997년 여성으로 한국에서 최초이자 유일하게 고등학교 야구부에 입학했으며 KBO에서 주최하는 공식 경기에 선발 등판한 최초의 여자 야구선수였다.

안향미 씨는 ▲ 1991년 경원 중학교 졸업 ▲1997 덕수정보산업고 야구특기생 입학(여자 최초이자 유일) ▲ 1999년 여자 야구선수로는 처음으로 공식경기(대통령배고교야구대회 4강)에 출전했다.
공식 경기에 출전한 최초의 여자선수로 준결승에서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올렸다 ▲ 2002~2004년 2월 일본 여자야구팀 ‘드림윙스’ 투수 및 3루수 ▲ 2004년 3월 한국 최초 여자야구팀 ‘비밀리에’ 감독으로 활동한 바 있다. 

최근 영화를 본 안 씨는 “오래간만에 야구선수 생활을 돌아보게 한 것 같다. 최초의 여성 야구 선수로의 삶은 영화에서 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고 소회를 밝혔다. 

야구, 그 매력에 풍덩..!! 
배트에 공이 딱! 하고 맞은 타구가 하늘을 향해 쭉 날아가는 느낌이 좋았다. 
그렇게 초등학교 5학년때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동생이 속해있던 리틀 야구단에 들어갔는데 모두 남자 아이들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야구생활 20여년동안 ‘여자 선수’라는 이유로 외로운 싸움은 계속됐다. 

영화 속 변화구를 가르쳐준 ‘진태’(이준혁)와 같은 코치를 한번도 만난적 없다. 옆 친구가 배우는 것을 귀동냥으로 듣고, 따라하며 실력을 혼자 키워나갔다. 아무도 연습 상대를 해주지 않았기에 집 앞 큰 나무에 네트를 걸고 홀로 연습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야구부가 있는 경원중학교에서 3년, 야구 명문인 덕수정보산업고등학교에서 3년을 남학생과 똑같이 훈련 받으며 이 악물고 버텨냈다. 

1999년 5월 1일 제33회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4강전에서 한국내 유일의 여고생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한국 최초의 여자야구선수의 출전은 지금까지도 전무후무한 공식기록이다. 
피나는 노력에도 영화와는 달리 현실에서는 프로 입단의 꿈은 끝내 좌절됐다. 
2002년 4월에는 일본팀에 진출해 투수와 3루수로 활동을 다시 시작했다. 생활을 해야했기에 주중에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야구 선수의 삶을 이어나갔다. 일본에 자리를 잡아야 되는지 고민을 하다 한국으로 다시 귀국해 2004년 3월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팀을 창단했다. 처음 볼을 잡아봤거나 야구의 룰도 잘 모르는 사람까지 모였지만 훈련을 거듭해 7월 여자야구 월드시리즈에 출전했다. 당시 홍콩과의 경기에서 16:6, 일본과의 경기에서 53:0으로 대패했지만 첫 시도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후 많은 여성 야구팀이 생기고 여자야구연맹도 출범하면서 야구팀 감독과 지도자로서의 삶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혼자 열심히 연습했을뿐 정식으로 배운적이 없기 때문에 야구에 대한 이론 지식도 전무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됐다. 20여년도 충분히 최선을 다했으니 여자 야구선수 안향미가 아니라 여자 안향미로서의 삶을 살아보자는 마음에 2011년 3월 홀연히 호주행을 택했다. 

버컴힐 야구단 소속 당시

호주, 그 매력에 빠지다 
호주에서도 야구선수생활을 1년여간 하기도 했다. 
세계대회에 나갔을 때 호주팀의 코치와 인사를 한 적이 있는데,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무작정 ‘시드니로 가게 됐는데 야구팀을 소개해 달라’고 했고, 버컴힐 팀에서 1년간 활동했다.
팀은 10대부터 20대 중반이 대부분이고 30대 이후는 몇 명 안됐다. 신입이었지만 팀내에서 ‘최고령 선수’였다. 실력을 인정받아 4번 타자로 마운드에 올라 경기에 참여했지만 체급차이와 나이?!로 오는 체력적 한계로 힘에 부딪치며 야구 배트를 놓았다. 

호주에서의 삶도 녹록치 않았다. 골프장에서 공 줍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공에 많이 맞기도 했고 영어 소통 때문에 어려움도 여러번 겪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웠고 열심히 하면 연령 배경에 상관없이 인정 받는 것에 기뻤다. 지금은 치킨 공급업체에서 일한지 한 4년차로 한 파트를 전체 관리하는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해 호주에서 삶을 꾸려가고 있다

행복, 성공의 잣대 
영화에서는 프로입단에 성공하며 꿈을 이루는 장면으로 끝이 나지만 현실에서는 프로입단이 좌절되면서 야구선수로는 실패했다고 그는 말했다. 실패한 이야기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인터뷰를 하기 전까지도 망설였다고. 

“영화를 보며 제3자의 관객으로 영화속 주인공을 보니 참으로 답답했다. 사람들이 모두가 어렵다 안된다 포기하라고 말리는데 왜 그렇게 악착같이 야구를 고집했을까. 지금 내가 주인공 ‘주수인’이 답답한 것 처럼 주변사람들이 나를 봤을 것 같다. 영화에서는 달리 묵묵히 자신을 응원해 주는 가족들이 있었기에 긴 시간을 견딜 수 있었지만 고집을 부리며 고생하지 말고 다른 선택을 했으면 어땠을까?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좋아했던 야구에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는 없다”  

최고의 선수는 매번 바뀌지만 최초의 선수는 단 한 명뿐이다. 안향미 선수는 그 초석을 닦은 것으로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낸 것 아닐까.. 지금은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행복한 시간을 지내는 그의 삶은 충분히 성공한 삶이다. 그것도 다운언더(호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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