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호주 주변에서 선거가 빈번했다. 지난 10월 18일 ACT 선거와 뉴질랜드(NZ) 총선이 있었다. 이어 10월 31일 퀸즐랜드 선거와 미국 대선(11월 4일)이 치러졌다. 

호주, NZ, 미국은 한 때 앤저스(ANZUS) 군사 동맹이었다. 뉴질랜드가 이 동맹에서 이탈했지만 호주와 미국은 계속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앤저스 70주년인 2021년 조 바이든 미 대통령 당선인에게 호주를 방문하도록 초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모리슨 총리는 17-18일 일본을 방문한다고 12일 발표했다. 스가 요시히데 총리와 정상 회담을 갖고 양국간 국방관련 협약을 체결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NZ-미국 세 나라는 같은 영어권 선진국이지만 선거 제도에서는 전혀 다르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같은 의원내각제이지만 선거 제도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 세 나라에서 치러진 최근 4번의 연방 및 주선거를 보면서 두가지 흥미로운 점이 목격됐다. 
첫째, 선거 결과가 나라별로 전혀 달랐다는 점이다. ACT 준주에서 진보 성향인 노동당이 승리했다. 노동당은 녹색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하며 6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보수 정당인 캔버라 자유당(야당)은 6연패의 수모를 당했다. 뉴질랜드 선거도 제신다 아던 총리의 집권 노동당이 대승으로 재집권에 성공했다. 

퀸즐랜드 선거는 노동당 승리로 아나스타시아 팔라쉐이 주총리의 노동당 정부가 3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스콧 모리슨 총리가 한주 동안 퀸즐랜드에 머물며 야당인 자유국민당(LNP)의 유세를 지원했지만 LNP는 의석 3석을 상실하며 패배했다. 또 LNP보다 훨씬 강경 보수 성향인 폴린 핸슨의 원내이션(One Nation)은 지지율 폭락으로 참패했다. 다른 보수 성향의 군소 정당인 광산 부호 클라이브 파머의 연합호주당(UAP)도 매우 저저한 지지율로 1석도 당선되지 못했다,

호주에서 정치적으로 퀸즐랜드와 서호주가 가장 보수 성향이 강하다. 광산과 농업, 목축업이 이 두 주에서 주요 산업인 점도 이와 연관이 크다. 현재 두 주 모두 진보 성향 정당인 노동당이 집권당이며 가장 강경한 주경계 봉쇄 정책을 취하고 있다. 

보수 성향이 강한 퀸즐랜드에서 노동당 주정부가 3연속 집권에 성공한 요인은 코로나 사태의 위기 정국에서 집권당이 유리한 점도 있었겠지만 유권자들이 주정부와 연방 정부의 정치 사안을 분명히 구분하면서 지지와 반대를 명확히 한 점이다. 한 예로 주경계 봉쇄로 관광업과 요식업이 큰 타격을 받았지만 유권자 다수가 필요성을 인정하며 지지했다.    

두 번째는 대양주의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트럼피즘’으로 불리는 포퓰리즘(populism: 대중영합주의)과 극우주의를 배척한 반면 미국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패배했지만 7천만표를 얻어 막강한 세력임을 과시라면서 트럼피즘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선거 한주 후에도 결과를 승복하지 않은채 여러 선거 소송의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낡은 제도를 시대에 맞게 변혁하지 않은 미국 대통령 선거제도는 문제가 많다. 그래도 2016년 대선까지는 승자와 패자 모두 현행법에 따른 결과에 승복해 왔다. 이런 140여년의 아름다운 전통을 완전 무시한 트럼프의 향후 60여일 동안의 행보는 미 대선만큼 세계적 관심을 모을 것이다. 

미국의 옛 관습 고수 성향은 비단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모든 세계가 표준으로 미터법과 킬로그램을 사용하지만 미국에서는 여전히 마일리지와 파운드/온스로 통용된다. 전력도 220~240 볼트가 거의 세계 표준이지만 미국은 110 볼트를 고수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미국을 원수로 대하는 북한도 110볼트를 사용한다. 북한은 이를 바꿀 경제적 능력이 없어 고수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은 ‘우리가 편한데 왜 바꾸어야 하나?’라는 ‘미국 우선주의’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가 이미 단행한 변혁을 아직도 실행하지 못한채 거부하고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의미인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는 트럼프의 슬로건이며 트럼피즘의 핵심 정신이다. 여기에도 미국 최우선(중심) 주장과 일방주의가  담겨있다. 공정한 플레이를 통해서도 1등을 지킬 수 있는 숨은 강점(hidden strength)이 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편가르기’를 통해 내편과 적으로 구분해 놓고 당근과 채찍(겁주기)으로 이탈을 못하도록 막말 공포 정치를 해 왔다. 트럼프의 4년이 단적으로 ‘분열과 선동을 앞세운 편가르기 정치’였건만 미 대선에서 이처럼 원색적이고 고지식한(naive) 주장을 앞세우는 리더의 포퓰리즘에 환호하는 국민들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점은 정말 놀라웠다. 일부 지지자들은 거의 ‘컬트(cult)의 광신도들’ 수준이다.  

호주 사회에도 트럼피즘이 자리를 잡을 구석이 곳곳에 있다. ACT와 퀸즐랜드 선거를 통해 나타난 것처럼 호주에서 트럼피즘의 약발이 통하지 않은 요인은 정치적-사회적 안정과 30년의 경제 성장, 코로나 사태의 성공적인 대응 등이다. 분명 이런 측면에서는 ‘호주에 사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라는 말이 나온다. 사회가 불안해지고 빈부 격차 증대 등 양극화가 심각해지면 호주에서도 트럼피즘이 분명 들먹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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