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내기  

김미경

“엄마 순두부찌개 먹고 싶어요.” 아들이 말했다.
“순두부? 그래 뭐 어려운 일이라고, 당장 해줄게.”

나는 서둘러 일어나 냉동실에 있던 오징어와 홍합을 꺼내어 해동하고 손질을 한다. 냉장고를 뒤져서 두부와 호박, 양파, 버섯 등 찌개에 넣을 재료를 다듬고 국물에 들어갈 멸치 육수를 준비한다. 작은 뚝배기를 골라 꺼내어 기름을 두르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넣고 볶으니 마늘 향이 진하게 퍼진다. 빨갛게 고추기름이 나오기 시작할 때 준비해둔 해물을 넣어 함께 볶는다. 양파와 호박, 버섯도 썰어 넣고 멸치 육수를 부어 끓이다가 순두부를 넣으려던 순간, 재료의 부피에 비해 뚝배기가 너무 작은 느낌이다. 재빨리 조금 더 큰 전골용 뚝배기를 꺼내어 옮긴다. 육수를 살짝 더 붓고는 뚜껑을 덮으려는데 아무래도 국물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기왕 하는 김에 남편과 딸 것도 하자 싶은 생각이 들면서 내 손은 벌써 순두부와 남아있던 재료를 마저 다 넣고는 불을 높이고 있다. 국물 수위가 뚝배기 목을 살짝 넘었다. 아무래도 불안하다. 아니나 다를까 끓는가 싶더니 거품이 화산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에구! 안 되겠다. 화산구가 터지기 직전 얼른 국솥을 꺼내 우르르 쏟아붓는다. 이제야 편안하다. 솥 가득 올라온 거품을 걷어낸다. 풋고추와 파를 어슷어슷 썰어 넣고 간을 맞추고는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온도를 높여 바짝 끓이다 불을 끈다.

이번에도 또 조그만 뚝배기에 보글보글 끓이려던 찌개가 솥으로 하나 가득 국이 되어 버렸다. 조리를 마치고 싱크대를 돌아보니 전쟁터 같다. 설거지해야 할 뚝배기며 냄비로 가득하다. 미쳤다. 그동안 주부 경력이 얼마인데 아직도 이렇게 주먹구구식인 게 말이 안 된다. 찬장 속의 뚝배기랑 냄비를 다 꺼내어 난리가 난 주방의 상태를 돌아보니 나도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 내가 만든 김치 맛만 보고 음식을 꽤 잘하는 줄로만 아는 지인들은 아마도 나의 이런 어리석은 모습을 알면 김치맛이 다르게 느껴질 것이다. 
“손이 커도 어느 정도지. 엄마는 늘 그래." 아들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다. 

한 끼에 알맞게 먹고 끝낼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자꾸 양에 집착한다. 
식구들이 많을 때 음식을 하던 습관 때문이라지만, 이제는 식구가 적은데도 여전하다. 전쟁을 겪어 굶주린 세대도 아니고 지금 음식을 못 먹을 만큼 어려운 상황도 아닌데 양에 집착하는 것은 내 안에 뭔가 정신적인 결핍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솥으로 한가득 만들어 놓은 음식은 이제 몇 날 며칠을 먹다가 결국 남아서 버리게 될 것이다. 
 
나의 이런 습관은 음식뿐만이 아니다. 처음에 정해둔 기준에 맞춰 이어가지 못하고 자꾸 곁길로 가는 습관은 글쓰기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글쓰기에서는 음식할 때와는 반대로 호흡이 짧아 실패를 한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마음만 앞서가다 보니 제대로 호흡이 긴 글을 쓰지 못하는 것이다. 주절주절 이야기만 늘어놓아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거나 도무지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애초의 핵심이 사라져 버리기 일쑤다. 시작할 때는 시원한 해장국처럼 쓰려 했는데 이것저것 너무 첨가하는 바람에 잡탕 찌개 같은 글이 되곤 한다. 항상 넘치거나 모자라는 통에 원하지 않는 결과 앞에서 후회 하곤 하지만 고쳐질 기미가 없다.
해장국이든 잡탕 찌개든 상황에 맞게 맛나게 조리해 낸다면 무슨 문제가 될까. 북어 한 마리를 가지고 속 풀이용 해장국도 끓이고, 입맛 돋는 잡탕 찌개도 만들 수 있다는 걸 증명해 내는 것은 내 몫이다. 갈 길이 멀다.

“엄마 강된장 찌개 먹고 싶어요.” 딸이 말한다.
“그래 바지락조개 있는데 해줄게.”
“솥으로 가득 말고, 보글보글 뚝배기요.”


<프로필>
김미경 수필가
수필집 <배틀한 맛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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