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쓰고 있는 칼럼의 명칭인 ‘독자의 편지’는 서방신문에 빠지지 않는 ‘편집자에 대한 편지(Letters to the Editor)’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이 지면은 많은 독자가 참여할 수 있게 기고자가 길지 않게 자기 제안이나 의견, 남의 글에 대한 논평을 쓰는 게 보통이어서 ‘공개 토론의 광장’이 됩니다. 또 잘 쓴 글에 힘을 실어주는 피드백(Feedback, 메아리) 난이기도 합니다. 다만 호주 한인 신문에 그런 독자의 참여가 거의 없다 보니 이 귀한 지면을 제 혼자 독불장군으로 쓰고 있는 기현상입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오늘 ‘독자 편지’는 지난주 한호일보(11월20일자)에 실린 기후 스님의 ‘중맹모상(衆盲模像)과 아전인수(我田引水)’ 제목의 글(금요단상 칼럼)에 대한 피드백입니다. 다만 서두의 몇 마디가 사족(蛇足)이 되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스님은 평시 칼럼에서 불교 사상과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현실생활에 매우 유익한 지혜와 함께 가끔은 고국과 여기 한인사회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아 개인적으로는 많은 감명을 받았고, 한인 언론에 크게 기여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해외 한인사회의 실태는 고국과 고국의 재외동포정책을 떠나 생각할 수 없습니다.

말 잘하는 정치인  

이번 ‘중맹모상과 아전인수’는 오늘 잘 살게 되었다는 고국이 저렇게 시끄러운 이유가 이 두 사자성어에 잘 담겨있다고 보는 게 분명 합니다.  백번 동감하면서 곁다리로 제 생각을 한 두 가지 보태고자 합니다.
 
중맹모상은 칼럼에서도 풀이된 대로 맹인이 코끼리의 각기 다른 작은 일부분만을 만져 보고 그 거대한 동물을 논하는 우(愚, 어리석음)를 지적합니다. 그런데 이건 오늘 많이 배웠다는 한국의 학자와 지식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합니다. 자연 현상과는 달리 살아있는 인간이 실체가 되는 사회현상은 대부분 원인이 되는 변수가 많고, 그것도 쉽게 분리할 수 없게 서로가 복합되어 있는 게 특징입니다. 
 
그래서 어떤 문제를 놓고 찬반 논쟁을 벌일 때 논객들은 각자 주장을 자기에게 익숙한(또는 눈에 쉽게 보이는) 한 두 개 제한된 변수를 가지고 펴기 쉽고, 그러다 보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끝나 말 잘하고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결과가 됩니다. 그리하여 올바른 해법을 못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회과학은 이러한 맹점에 대비해서 오래 축적된 사회과학적 연구 방법론을 마련해 놓고 있지만 그게 힘 센 정치인이나 웅변가들의 관심이 되겠습니까.  
 
더 문제인 것은 아전인수, 즉 자기 논에 먼저 물을 대는 자기 이익 중심의 주장입니다. ‘독재 정권’이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 문제인 정권은 박정희 군사정권과는 비교가 안 되게 많은 언론의 자유를 허용하고 있다고 봅니다.
 
자유민주주의 아래 의견의 다양성을 위하여 언론의 자유는 필수입니다.  그러나 다양한 의견도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표출될 때 미덕이 될 수 있지 아니면 백해무익합니다. 
 
요즘 유튜브 화면에서 많은 새로운 정보와 뉴스를 배우게 됩니다. 그러나 일부 TV출연자와 유튜브 운영자들의 담대한 발언과 행태를 지켜 볼 때는 이들이 특정 세력의 하수인들이 아닌가라는 의구심을 품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과거를 돌이켜보건대 한국에서 그런 기회주의자들이 승승장구하였습니다. 이런 구태가 없어져야만 나라가 안정될 것입니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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