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 사람들이 엘리트란 말들을 잘 쓴다. 거의 한국어화가 된 영어(원래 불어 Elite,   선택된 소수)의 뜻을 찾아보고, 실제  어떤 사람을 그렇게 부르는가를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관찰을 하게 된다.  
엘리트는 대중 가운데 극소수를 의미하지만, 영어사전에 설명된 ‘the best of the group(그룹  중 최고층)’대로라면  그냥 소수가 아니라 피라미드의 꼭대기로  최고 역할과 특권이 주어지는 소수이다.
 
무력으로 싸워서 이기는 게 목적인 군대의 경우는 이런 소수 정예부대의  역할과 특권에 대하여는 의심할 여지가 없겠다. 일당백이라 하지 않는가. 그러나 정권의 핵심이 되는 몇 사람의 권력 엘리트(The power elite), 행정의 윗선인 소수 엘리트 관료, 국가의 부를 많이 거머쥐어 남다른 힘을 발휘하는 몇 안되는 재벌 총수와 그 일가족, 소수 지성으로 명성을 누리는 학자들에 대하여는 지금처럼 무조건적으로 엘리트란 타이틀을 붙여도 좋은가 묻게 된다. 
 
극소수 정예가 사회를 이끈다 또는 지배한다는 뜻의 엘리트주의(Elitism)라는 말을 생각해보면 더욱 그렇다.  물론 일리는 있다. 행정에 대한 지식과 경륜이 없는 관료가 행정부를 잘 운영할 수 없다. 오죽하면 해방 공간에서 우리대로의 잘 훈련된 고위 경찰, 행정가, 법관이 없거나 모자라 군정과 이승만 정부가 일본에  부역한 전문 인재들을 상당수 등용해야했었다. 이게  오랜 과거 청산의 시비거리가 되어 왔다.
 
지금은 그런  때가 아니다.  엘리트주의를 내세우고 엘리트들에게 나라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역할과 특권이 부여되고 그런 이유로 최고의 명예가 주어진다면 이들 엘리트들에게는 한 가지 새로운 자격 요건이 부과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름이 아닌 도덕성이다. 특히 오늘의 한국적 상황에서는 그렇다. 

무슨 말인 지 사례를 들어 보면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일류대학 법과를 나와 젊은 나이에 고시를 합격한 수재로서, 법관과 변호사 생활을 거쳐 축적한 돈, 해박한 법률 지식, 유창한 언변에 힘 입어 국회에 입성하고 나중에는 청와대 수석이된 행운아들(?)은 분명 언론과 사람들이 만든 엘리트다. 
그런데 이들 엘리트들이 사회에 기여보다는 누를 끼친 정황이 더 많다. 권력  엘리트는 어떤가?  총칼로 헌정을 짓밟은 전력은 물론이고, 그 와중에  정치 8단이니 9단이 하는 잔꾀로 정치판에 끼어든 소수 정예는 어떻게 평가해야 하나. 엘리트 지식인이라는 명망을 팔아 밀어서는 안 될 정권에 빌붙어 출세한 ‘먹물’들도 그렇다.
 
엘리트라는 용어를 함부로가 아니라 가려서 써야할 이유다. 송구영신 (送舊迎新)과 예수의 탄생을 기리는 크리스마스의 계절에 이렇게 딱딱한 글을 써 송구스럽다. 그러나 이 특별한 시즌에 누구나 쓰는 말은 온 지구상의 평화와 밝은 새해다. 그건  말로만이 아니라 쉬지 않고 노력해야 될 일이다. 아디유! 다시 오지 않을 2020년..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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