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호 TIME 표지는 바탕이 하얗다. 가운데 굵고 검은 글씨로 2020이라고 쓰고 그 위에 붉은 물감으로 “X”표를 그었다. 그 밑에 작은 설명이 있다. “The Worst Year Ever”. 이렇게 읽었다. “우리가 살아본 세월 중 가장 최악의 해”. ‘스테파니 자카렉’이라는 칼럼니스트 이름도 작게 쓰여져 있다. 그녀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인터넷을 뒤져 봐도 나이는 나오지 않는다. 뉴욕에서 대학을 나오고 그곳에서 영화평론가로 일해 온 사람인데 대략 1970년 전후 생이라고 생각된다. 그 나이의 뉴요커로서는 당연히 그런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지난 150년 동안 미국 땅에서 일어난 참사로는 이번 코로나 사태만 한 것이 없다. 영국과의 독립전쟁, 프랑스/스페인/멕시코와의 영토전쟁, 그리고 1861년에 일어나 군인만 62만 명이 죽은 남북전쟁이 있지만 고래(古來)적 이야기다. 그 이후에는 자기 땅에서 전쟁이 일어난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2001년 뉴욕의 쌍둥이 빌딩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에 의해 파괴되었는데, 그녀는 그 참상을 두 눈으로 똑바로 본 뉴요커다. 그때 2,997명이 죽었다. 그 일에 충격받은 미국인들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쫓아가 복수의 혈전을 펼쳤다. 그때 사망한 미국 군인이 6,758명이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는 그와 비교할 수도 없다. 최근에 미국 한복판에서 일어난 참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9일 하루 만에 3천 명이 죽었다. 전체 사망자는 31만 4천 명이 넘어간다. 이번 겨울을 지나면서 50만 명까지 사망자가 나올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런 상황 한복판에서, 그것도 최첨단 뉴스를 다루는 TIME 지에 근무하는 그녀에게 “우리 생애 최악의 해,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2020년’이란 말은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다.

2.
그러나 호주는 좀 다르다. 이제는 주 경계를 풀었고, 비행기들이 다니기 시작한다.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이 공항에서 포옹하고, 가지 못했던 휴가와 파티를 즐기기 위해 숙소와 식당 부킹 사이트가 대단히 바쁘다. 시내 교통상황은 코로나 이전 상태로 돌아가 러시아워가 짜증을 유발한다. 9개월 전에는 교회당 문을 닫아걸고 1.5미터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몸을 피하더니, 이제는 안 돌아오면 오면 짐을 빼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그렇게 나라마다 사람마다 형편이 다르다. 

물론 2020년은 우리 모두에게 크고 작은 상처를 남겼다. 호주 역시 코로나로 인해 908명의 사망자가 생겼다. 그 가족들에게는 정말 기억하고 싶지 않은 2020년이다. 그러나 어떻게 하겠는가? 인간이 인간의 죽음을 되 돌릴 수는 없다. 이번 코로나로 인해 전 세계적으로 1백65만 여명이 죽었는데, 1918년 스페인독감으로는 5천만 명이 죽었다. 그래도 인류 문명은 계속 발전했고, 미국은 지난 백 년간 최고 강국의 자리를 전혀 내놓고 있지 않다. 그렇게 인류 역사는 흘러가고, 동시에 사람은 병들고 죽기 마련이다. 그 과정에서 많은 상처를 안고 산다. 사실 그 상처 때문에 남은 사람들의 삶은 더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 내 왼팔에 있는 흉터가 그 증거다. 어릴 적 맞은 종두 주사 자국이다. 일부러 흉터를 내어 예방 주사를 맞지 않았다면 천연두에 걸려서 죽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소아마비도 걸렸었다. 부모님의 지극 정성과 당시 의학기술로 인해 치유된 다리를 가지고 평생 살고 있다. 그렇게 죽지 않을 정도의 흉터와 불행은 남은 삶을 오히려 건강하게 만든다.

3.
불행의 크기는 주관적이며 자신에게 닥친 불행의 크기가 가장 큰 법이다. 그러니 각자 삶의 고통 속을 들여다봐야 한다. 왜 인간은 고통을 당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지를. 살다 보면 갑과 을의 위치를 오가며 살지만,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그 죽음에서 삶이 탄생하고, 그 삶은 고통 속에서도 기쁨을 누리다가, 또 죽는다. 
그렇게 빤한 인생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영원에 접속되기 위함이다. 그래서 나는 2021년이라는 숫자를 쓰고 그 위에 붉은 X자를 다시 긋는다. 물론 방향은 90도 비튼다. 좌로나 우로나 상관없다. 그러면 십자가가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다. 그분은 죽음으로 끝나는 인생을 영원한 삶으로 바꿔 놓으신 분이다. 그분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이 다음 주에 온다. 그래서 큰 소리로 외친다. 

‘메리 크리스마스 앤드 해피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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