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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비긴 어게인
정원일 (공인회계사) | 승인 2021.01.07 13:00

새해가 되면 으레 덥다 못해 뜨거워 자동차 핸들에 손을 덴 것 같은 날씨가 돼야 몸도 마음도 새해가 다가 온 것이 비로소 실감이 되곤 했다. 올해는 충족 요건이 채워지지 않은 채, 마치 예고없이 방안에 불쑥 들어선 손님 같은 유별난 시작이 되었다. 연말에 시드니 북부 해변지역에서 발생한 코로나 확진자들로 타주 여행도 중단됐다. 날씨도 흐리고 비가 오는 날이 2주나 지속됐다.  바닷가에 가서 맨 몸에 여름 햇살을 쪼이고 모래 사장의 따가운 열기와 청량한 바닷 속에 파도를 거슬러 그나마 늘어진 뱃살에 조금 탄력을 받아보려던 마음을 접고 말았다. 대신 늦은 아침을 먹고 느긋이 소파에 앉으니 자연스레 켜놓은 TV에 방청객으로 쉽게 모드 변경이 되었다.  

화면엔 채널 어디를 틀어도 경연 프로그램이 대세이다. 미스터트롯에 이어 미스트롯, 전국 트롯 대전, 싱어게인, 여러 경연 프로그램엔 예전과 달리 트롯 열풍으로 가득하고 장르를 바꿔 트롯 가수로 전환하거나 적어도 몇 곡의 트로트를 부르는 가수들도 부쩍 눈에 띈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젊은 세대들도 좋아한다고 하니 의아해하면서도 세월이 변해서 인가 한다. 나도 이제 나이가 먹어서인지 예전과 달리 트롯의 노래들이 귀에 정겹게 와 닿는다. 종종 가사가 조금 민망하다 싶은 부분들도 있지만, 절절히 곡조에 담긴 노랫말은 오히려 까발려놓은 마음 밑바닥을 훤히 보여주는 것 같아 속이 시원하기도하다. 그래, 사람 사는게 다 그런게 있지.. 하며 젊은 때는 생각해 보지 못한 그 편의 입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오디션에는 유명인이 등장 하기보다는 무명의 세월이 길었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생소한 얼굴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도전장을 내고 모처럼의 기회에 최대한 멋지게 가꾸고 구성진 노래를 목청을 다해 부른다. 사회자가 왜 이 프로에 나왔는 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 지.. 를 물으면 전혀 일면식도 없는 그들의 힘들었던 인생 이야기가 마치 트롯 가사처럼 내 마음에도 공감을 불러 온다. 열심히 사느라 행사장을 전전하기에 급급해 아무도 이름조차 알아주지 않는 무명의 긴 세월을 보내고, 딸의 성공을 지켜 보지 못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에 보답하기 위해 나왔다는 애절함도, 이혼으로 재정적 능력이 없어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어 돈을 벌어 꼭 같이 살겠다며 다짐하며 다시 힘을 낸 도전자의 이야기도 있다. 들어보면, 외로이 무명의 삶을 살며 생계를 이어가기에 바빠 호방한 삶을 꿈꿔 볼 겨를이 없었던, 이들의 마음 아픈 사연은 우리의 현실이며 우리의 이야기이다. 이들의 홀로 애쓰며 거듭 거듭 새롭게 도전하며 살아온 인생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들이 담겼다. 

1등이 되어야 성공했다고 대접을 받고 2류로 살아야하는 더 많은 인생들에겐, 푸대접과 갑질을 감내하며 자존감에 숫한 상처를 버텨내야 하는 설움과 억울함이 두렵기 조차하다. 1등을 지켜야하는 정상의 사람은 행복하기 보다 불안한 마음의 연속이다. 하지만 이들의 외로운 불안과 설움에는 만족시키고자 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어한다. 하지만 내 재능이, 지식이, 학벌과 가문이 나의 작은 소망을 만족시켜 주지 않는 매정한 현실 앞에서 좌절하며 홀로 외로워 한다. 야속한 심사위원들은 탈락자들에게, 상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애쓰는 노래가 아닌 내가 좋아, 심취한 나의 노래를 부르라는 주문을 한다. 세상을 만족시키려고 하기 보다 나에게 주어진 것을 사랑하는 것이 해답이라는 말로 들린다.  

12세기의 스페인의 현자 마이모니데스는 의학과 과학 뿐 아니라 신학과 철학에 있어 그의 지성과 학문적인 업적이 유럽의 르네상스를 지나 현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에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아랍인들과 기독교인들을 포용한 세계주의자였다. 그의 역작인 미쉬네 토라의 마지막에 그는 “ 세상의 끝에는, 기아도 전쟁도 증오도 적대감도 없고.. 이 땅의 수고와 고통도 사라지고 오직 창조주에 대한 지식만이 남을 뿐이다” 라고 적었다. 
외로운 인생, 혼자인 것 같은데 우리에겐 보이지 않는 전능자의 세심한 배려가 있다. 그는 처음부터 우리가 외로운 것을 용인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인류의 첫 사람을 만들고도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않다..” 하고 파트너를 만들어 주셨다. 인생은 외롭지 말아야 한다는 신의 확고한 뜻이 담겼다. 그래서 성경의 맨 마지막도 “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시고 다시는 죽는 것이 없고 애통하고 곡하고 아픈 것이 모두 사라 질 것” 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비록 오디션에서 떨어져 중간에 탈락하는 사람들에게도 그 만큼의 성공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 시작하는 새 길에도 함께하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세상 끝까지 나와 함께 하신다는 신의 사랑의 약속이 있다.   
외로운 것 같아도, 이제 우리는 새해에 또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다.
‘싱 어게인, 비긴 어게인!’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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