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늘 따뜻하고 부드러우며 온유합니다. 사마리아를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지역민들이 예수님 일행을 맞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은 분노를 넘는, 저주에 가까운 폭탄질문을 합니다. 삶의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광경이지요.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꾸짖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루카 9,51-56) 

예수님 일행은 어찌하여 사마리아 동네의 완고함에 맞서지 않고 다른 마을로 피해갔을까요? 예수님은 화가 나도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화가 나면 나는 대로 있지, 행동으로 응징하지는 않습니다. 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왜 대하지 않았을까요? 부드럽고 자애로운 마음이 능사는 아니지 않다는 걸 모르신 걸까요?

실제로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인과 원수지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감정대로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반전이 필요합니다. 완벽하지 않고 약한 자들에게 늘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예수님은, 깊고 넓은 자비의 시선으로 그들에게 마음을 전합니다.

보복과 앙갚음의 방식은 폭력과 죄의식을 더 증폭시킵니다. 화가 나더라도 예수님은 미워하거나 더욱이 행동으로 보복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보복인 자비를 취합니다. 아니 보복을 넘어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용기를 줍니다. 반전 또는 총체적 변화 요구의 부메랑이 쓰나미처럼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라고 말입니다.

“누가 네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마태 5, 39)

반전이 일어나지 않으면, 악순환이 계속 반복될 것입니다. 반전은 악에 저항하지 말고 상대방을 유연한 부드러움으로 받아들이라는 뜻이지요. 이웃 사랑의 대안이 착한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보복이 아닌 변화 곧 받아들임입니다.(루카 10,31-37) 
화가 나고 밉기도 하지만, 행동은 하지 않는 반전을 한번 시도해보세요. 생각하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사랑의 힘이지요.

‘이웃이란 누구인가요?’ 죄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그 마음에 상처입지 않도록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자입니다. 변화에로 초대된 회개는 압박과 강요로 이루어지면 안 됩니다. 그래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회개는 죄의식과 불신, 불안과 패배감에서 벗어나, 완벽하지 않지만 처음처럼 사랑받고 이해받으며,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생에 대한 응원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니 너무 죄의식에 사로잡히지 말고 온전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회심을 하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하지만 회심하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자신을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나를 만나는 여정이 필요합니다. 혼자 갈 수 없다면 손을 뻗어 도움을 청하세요. 도움을 줄 수 있는 분들이 주변에 의외로 많습니다. 손을 뻗어 보세요. 

손을 뻗어보시면, 심리학과 교육학에서 말하는 메타인지(meta-cognition)나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을 통해 도움을 받을 것입니다. 메타인지란 자기 자신의 인지 처리 과정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것으로,‘생각에 관한 생각’을 말합니다. 곧 하루 자신의 삶을 어떻게 지냈는가를 살피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거울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자기 스스로에게 신뢰와 믿음을 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하고 모자란 자신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브레인스토밍은 한 가지 문제를 놓고 가족이나 집단에서 회의를 통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구상하는 방법으로서 많은 구상을 얻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비록 의견들과 생각들이 달라 갈등하고 헷갈리기도 하겠지만 그런 긴장을 통해 사고가 확장이 되고 중요한 가치들이 모아져서 점차 정리가 되어갑니다. 손을 뻗어 보세요. 그리고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우리의 속담을 믿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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