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청계천
장 정 윤
1.
옥상에서 기르던 늙은 닭,
그래도 예뻐만 보였다
내일부터 겨울방학이다
학교에서 오니, 벌쭉 열려 있는 닭장
뜨끈한 닭죽이 되어있다
안 먹으면 혼날 새라 꾸역꾸역 먹었다
2.
주인 잃은 책들이 뒤얽혀
곰팡이 냄새 켜켜이 입고
쿰쿰하게 늙어가는 곳
주인 아저씨 눈치를 보면서도
만화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맙게도 아저씨는 못 본 척 내버려뒀고
난 그래서 꼭 그 책방만 가곤 했다
3.
재봉틀 밟는 소리보다
캬바레 뽕짝소리가 더 커지는 시간이다
색소폰 소리에 맞춰
여가수의 부르스에 밤은 깊어 갔다
노랫가락 흥얼대다 자고
드르륵 재봉틀 소리에 잠 깨고
그래서인지 학교에선 매일 졸렸다
4.
창문 없는 공장
전깃줄에 목 매달린 촉 낮은 노란 전구
어린 동생들 뒷바라지
입 하나 줄이려 집 나온 언니들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았다
드르륵 제 마음을 박으며
말하지 않기로 결심했기 때문이다
5.
눈발이 날리는 창밖, 기웃 나를 들여다본다
저녁 어스름,
동생들을 몰아세워 밖으로 나갔다
검은 하늘을 환하게 채워가는 하얀 것
우린, 혀를 날름거리며 받아먹고
솜사탕 먹은 것처럼 즐거웠다
그렇게 우린, 우스운 짓을 많이 했다
6.
카바이트*쯤 쉽게 꺼버리는 바람이
건달처럼 골목을 휘젓고 다녔다
비명 같은 셔터문 소리는 자꾸 들어도 싫었다
바보같이 잘 견디기만 하는 사람들은
아랫목 뜨뜻한 집이 그리운 시간에도
리어카 옆에서 캉캉춤을 추며
얼어 터진 귀 자꾸 비벼댔다
7.
머리 질끈 동인 아저씨가 지나간다
세상보따리가 한 지게
광장시장 포목점 거리를 나와
소경다리* 건너가는 길이다
빙판 다 된 길 후들거리며 가는데
배 나온 사장님 팔에 걸린 뾰족구두의 여자
깔깔대며 장통교* 카바레로 들어간다
창에 들러붙은 눈발, 청계천이 슬피 운다
*카바이트(Carbide): 리어카 장사나 포장마차에서 쓰던 램프로, 냄새가 독특하다.
*소경다리: 조선시대 소경들이 많이 다니던 다리라고 한다.
*장통교: 종로와 청계천 사이에 있던 다리
2007년 호주동아일보 신년문예 <철대문>으로 시 당선
2014년 한호일보 신년문예 <엄동이와 도깨비 방망이>로 희곡 당선
시집 <미네르바> <좋은 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