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입학은 수험생이나 가족에게 중요한 일이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시험 공부의 결과이다.  한국이나 호주도 마찬가지다.  시험 공부를 좋아하지 않는 청소년들도 많다. 그래도 참고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이나 학과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런 공부도 필요하다. 의사며, 회계사 등 자격고사를 위해 혹은 석.박사 학위 논문을 쓰는 공부도 중요하다. 

나는 학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다. 아내에 비교해서 그렇다. 그런 아내는 가끔 내가 ‘엉터리 박사’라고 한다. 그건 사실이다. 책을 더 많이 읽고, 대학에서 10여년 가르치기도 했지만 가사일이며 생활 속에 모르는 것이 많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할 어리숙한 학생이다. 공부는 학교에서 하는 것만은 아니다. 삶속에서 배우는 것이 ‘진짜 공부’다.

한 이웃 친구가 저녁 식사 초대를 했다. 불과 몇시간 전에 받은 갑작스런  초청이었다. 식사 후 밤에만 피는 한 특별한 꽃을 함께 즐기고 싶어서라고 했다. 그 꽃 이름은 여왕이라는 의미의 ‘레지나’(Regina)라고  했다. 그 분 아내의 이름 또한 레지나였다. 저녁 식사 후 7시경부터 시작해서 눈에 띄게 변해가는 그 과정을 지켜보았다. 9시 30분경에 크고 소담한 일곱 송이의 꽃들이 모두 한꺼번에 만개하였다. 눈부신 흰 백색의 우아하고 기품있는 꽃이었다. 은은한 향기도 좋았다. 여왕이라는 그 이름에 걸맞는 꽃이었다. 

이튿날 아침, 그 친구는 한 사진을 보냈다. 어젯밤의 레지나 꽃송이들 전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쳐저 있었다. 활짝 핀 그 모습으로 하루만 계속된다면 아니 낮에  핀다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아쉬움이 크다.  반면에 밤 몇 시간만의 그토록 짧고 황홀한 만개때문에  오히려 레지나는 내게 더 강렬한 감동을 주었다. 마치 새해 첫 시간, 시드니 하버브릿지의 휘황찬란한 불꽃 쇼처럼 말이다. 

실상 레지나 꽃은 전에 살던 집 정원에 몇 그루가 있었다. 다만 우리가 이름도 몰랐고 밤에만 핀다는 것은 더욱 알지 못했다. 그래서 꽃봉오리가 커지면 활짝 피기를 기대하곤 했었다. 이튿날 아침에 갑자기 시들어 버린 것을 보며, 어떤 병이 들었나 벌레 때문인가 궁굼해 시든 그 봉우리를 찢어 안을 살펴 보기도 했었다. 너무 몰라서 그랬다. 세상에도 그처럼 무지한 말과 행동이 또 얼마나 많은가! 

집 베란다에 있는 한 다육이는 화분 전체가 레지나 꽃 한송이보다 작다. 잎 주위에 작은 가시들이 돋혀 있어 고약스러워 보인다. 그 다육이가 샛노란 꽃 두 송이를 피웠다. 오후 2시쯤 활짝 피었다가 해가 지면 오므라 들었다가 이튿날 다시 피기를 계속하고 있다. 이런 단순한 앎을 통해, 나는 레지나 뿐만 아니라 앙증맞은 이 다육이도 좋아하게 되었다. 

지방을 쓸 때에 어떤 벼슬을 하지 못했던 고인의 이름 앞에 ‘학생’이라는 칭호를 먼저 쓴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이다. 살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이 공부다.  성공이나 실패, 행복이나 고통, 만남과 이별도 공부의 한 과정이다. 이민 생활을 통해 이 세상은 본향을 향해가는 나그네 길임을 배우고 있다. 호주 교인들을 위한 목회도 유익한 공부였다. 빅토리아와 타스마니아주의 다민족교회와 목회자들을 섬기는 선교사역을 통해 여러 도전과 보람을 경험했다. 내 삶의 지경을 넓혀주는 가치있는 공부였다.  은퇴자의 삶은 자유함이 있어 좋다.  반면에 또 다른 의미와 목적을 찾는 새로운 공부다. 코로나 사태로  일년이 넘도록 제한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 또한 처음 해보는 어려운 공부다.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느긋해진다.

새해를 맞으며, 모처럼 서울에 있는 동생과 긴 통화를 했다. 외숙부 내외가 돌아 가신 것이며, 한참 아래인 사촌동생이 신장이식을 못해 죽었고, 한 조카는 이혼을 했다는 등의 소식을 들었다. 일부러 연락을 안했다고 한다. 핸드폰 연락처에서 지난해 돌아가신 두분의 이름을 발견했다. 마음으로 그 분들을 배웅하며 그 전화번호를 삭제했다. 앞으로  어느날, 누군가는 엇비슷한 심경으로 나를 저 세상으로 배웅할 그런 날이 정녕 오지 않겠는가! 쓸쓸한 상념만은 아니다. 오늘을 감사하자고 다짐해 보는 공부 시간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말하고 행동했던 날들도 있었다. 지금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한가지 내 삶의 모든 것, 가족, 건강, 친구 등 모든 것들이 주님 은혜의 선물임을 알고 있다.  그래서 가난한 심령이 된다.  그것을 배우고 깨닫는 것이 진짜 중요한 지혜라고 생각한다. 

한 친구 목사의 아내는 지금 극심한 고통가운데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그 사모뿐만이 아니다. 그 친구도 함께 벼랑 끝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 지금은 다 이해 할 수 없는 큰 고통가운데 있지만,매일 감당할 수 있는 그 만큼의 능력을 주님께서 허락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누구든지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들고 아플때도 있지만,  그런 날에도 삶이 괴롭다거나 기쁨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님을 외치고 싶다. 문제와 고통이 큰 만큼 동시에 주님 주시는 넘치는 위로와  더 큰 산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걸 배우는 것이 진짜 공부요 지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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