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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호일보 인터뷰] 호주국민훈장 수훈 황백선씨‘한국전 참전용사 우호 증진’ 등 기여
고직순 기자 | 승인 2021.01.28 14:41

2021년 OAM 수훈 영예 

한국 공군 예비역 중령, 72년 호주 취업 이민  
64~70년 대통령 1호 헬기 조종사 역임
69년 ‘1호기 불시착 위기’의 영웅 
5천피트 상공 엔진 멈췄지만 ‘안전 착륙’ 성공   

공군 조종사 시절의 황백선씨

2021년 1월 26일 오스트레일리아데이(Australia Day)를 맞아 844명(군인 약 200명 포함)이 각 분야에서 노력과 봉사, 사회 기여 등으로 호주국민훈장(Order of Australia) 수훈자로 결정됐다.

올해 시드니 동포인 황백선(88, Bexon Whang) 호주 한국전참전 유공자회 고문(patron, 후견인 의미)도 국민훈장(OAM) 수훈자로 영예를 앉았다. 한국 공군 예비역 중령(조종간부 7기)인 황 고문은 1964년부터 70년까지 박정희 대통령 헬기 1호기 조종사로 활동했다. 

1차 오일 쇼크 당시 공군에서 예편했고 72년 호주 항공사(Airfast)로부터 헬기 조종사로 초청을 받아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을 왔다. 전천후 헬기 조종사로서 수십년 호주와 PNG 등 광산촌에서 활동한 황 고문은 최근까지 시드니의 비행학교 교관으로도 종종 출강을 했다.   

황 고문은 내년이면 호주 이민 50년에 이른다. 호주 초창기 한인 사회의 산증인이자 동포 원로분들 중 한 명이다.

그는 올해 호주 국민훈장을 받은 공로를 대체로 세 가지로 요약했다. 

첫째, 그는 시드니 제일교회에서 1993년부터 약 15년동안 호주 한국전참전용사 초청 행사를 주관했다. 93년 첫 예배를 지태영 목사가 인도했고 다나 베일 당시 연방 보훈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두 번째, 1982년 재호 대한민국 재향군인회 발족을 이종윤 초대 회장과 함께 주도했다. 황 고문은 이 단체를 통해 호주-한국 양국간 참전용사들의 우호 증진 등 가교 역할에 앞장섰다.
세 번째, 1989년 호주 한국전참전유공자회 발족과 단체 활동에 크게 기여했다. 발족 당시 165명이었던 노병들 중 다수가 작고했고 50여명이 생존 중이다. 다수가 양로원 등에 거주하고 있으며 벨모어 RSL클럽에서 열리는 월례회는 약 15명이 참석한다.

호주 항공사(에어파스트) 헬기조종사 시절(1985년)

조종 간부 7기생으로 1955년 공군 소위로 임관한 황 고문은 당시 공군 입대 동기에 대해 “고등학교를 졸업하니까 바로 입대 영장이 나왔다. 당시 휴전 직전 ‘철의 삼각지’에서 많은 군인들이 숨졌다. 이를 보고 걱정한 부모님들이 공군을 지원하도록 권유했다. 조종간부 후보생 선발 공고를 보고 지원했다.”라고 회고했다. 

150명이 입학했지만 47명만이 졸업했다. 훈련기 T6와 무스탕 전투기로 훈련을 받았다. 후보생 당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동기생들이 사고로 순직하는 일이었다.

비행술과 영어 실력이 우수했던 황 고문은 F51 무스탕 120시간 비행 후 조종학교 교관으로 차출됐다. 몇 년 후 대위 시절 미 공군 비행학교에 1년 유학생(2명)으로 뽑혀 미국 유학을 했다. 텍사스에서 영어 교육(6개월) 후 네바다주 공군기지에서 6개월 비행훈련 교육을 받고 1959년 귀국했다.

2018년 시드니 무어파크 한국전참전기념비. 왼쪽부터 이안 크로포드(Ian Crawford) 한국전참전전우회 총회장, 심재철 국회부의장, 황백선 고문

1963년 소령 시절 청와대의 요청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군산 계화도 제방(현재 새만금으로 확대) 공사 시찰 비행을 했다. 

1964년 박 대통령이 헬기의 편리함을 높이 평가하며 청와대에 1호 헬기를 상주하도록 지시했다.

UH-1 헬기 6대로 35비행대대가 창설됐고 황 고문은 대대장 겸 전용기 조종사가 됐다. 박 대통령은 한 주 3-4회 헬기를 이용할 정도로 경부고속도로 건설 현장. 간척 사업지. 산업 현장  등 전국 방방 곳곳을 방문했다. 

이어 황 고문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사건인 ‘1969년 대통령 헬기 불시착 사건’이 터졌다. 

2021년 1월 27일 한호일보에서 단독 인터뷰를 가졌다

"1969년 6월 21일이니까 벌써 50년이 넘었네요.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당시는 울진, 삼척, 서해에서 공비 출몰이 잦은 때였지요. 동해경비사령부 창설식에 가기위해 박정희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이 대통령 전용 헬기 1호를 탔습니다.

이날 오전 9시50분경 태백산백이 내려다 보이는 강원도 명주 상공에서 갑자기 ‘쉬익’하는 신호음이 두 번 울리더니 헬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프로펠러도 곧 멈췄습니다. 헬기를 급강하(유턴)해 풍압을 올리고서야 프로펠러의 정상 회전수를 유지했습니다. 불시착 장소로 보리밭 옆 작은 평지를 확인하고 그곳을 목표지점으로 하강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죠. 그때 '각하, 엔진이 꺼졌습니다. 안전벨트를 최대한 세게 매십시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경호실장(박종규)이 벌떡 일어나 대통령을 꽉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불시착에 성공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조종간을 꽉 잡은 채 다시 소리쳤습니다. '각하, 엔진이 폭발할지 모르니 빨리 내리십시오.'"

당시 고도는 약 5천 피트(약 1700미터)였다. 엔진이 멈춰 헬기가 추락하면 1분에 약 2500피트 속도로 떨어진다. 아무 부상자 없이 안전하게 불시착하는데 걸린 위기 상황은 불과 45초였다. 황 고문이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평소 엔진이 하나인 헬기의 불시착 훈련을 수백번 이상했기 때문이다.

황 고문은 “내심 내 실력을 발휘할 기회라는 생각을 가졌다”라고 담당하게 술회했다. 

당시 1호기 탑승자는 박 대통령, 임충식 국방장관, 이후락 비서실장, 김성은 안보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육군참모총장이었고 조종사(황 중령), 부조종사(대위), 정비사였다.

2005년 최차규 공궁참모총장으로부터 예비역조종사 웰던상을 받았다

엔진 멈춤 사고의 원인은 기체 결함으로 확인됐다. 이 사고 이후 박 대통령은 헬기보다 고속도로를 이용한 시찰을 선호했다. 2년 후 황 고문은 중령으로 예편했고 호주 항공사의 초청으로 1972년 호주로 취업 이민을 떠났다. 일을 하면서 집에 오는 기간동안 호주 한국전참전용사들과 우호 증진에 앞장섰다. 호주한국전참전유공자협회, 재호대한민국재향군인회 발족을 주도했다. 호주 군인들 특히 공군 예비역들과도 두터운 친분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이런 활동이 기반이 돼 2021년 호주국민훈장 OAM 수훈한 것.
 
한국 공군은 지난 2015년 공군회관에서 예비역 조종사 웰던상 시상식을 가졌다. 공군은 “1969년 6월21 귀빈임무수행 중 강원도 명주군 상공에서 엔진이 정지되는 긴박한 상황이 발생하자 투철한 책임감과 완벽한 처치로 안전하게 비상착륙함으로써 탑승한 귀빈들의 귀중한 인명을 보존하고 항공기 사고를 방지하였기에 그 공적을 높이기려 특별 비행안전 웰던상을 수상하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국가 비상사태’를 막아낸 황 고문은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였기에 나에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했을 뿐"이라며 오히려 담담했다.

고직순 기자  editor@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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