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테의 강을 건너는 사신처럼 의미심장하게 짐을 꾸렸다. 백팩의 지퍼 밖으로 빠져 나오는 책을 억지로 밀어 넣다 말고 표지의 뒷면을 읽어본다. 
나는 종이 기록을 피하고 휴대폰에 글을 썼다. 종이에 기록을 남기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자칫 기록을 뺏기기라도 한다면 더 위험한 일이 기다린다. 이곳에선 멀쩡했던 사람도 점점 비정상적으로 변하게 된다. 성폭력과 인권유린이 빈번하지만 사건은 극비에 묻힐 뿐이다. 나는 이곳 구금센터와 고향에 대한 이야기, 오스트레일리아를 상상하며 글을 썼다.  
책을 손에 들고 가기로 했다. 어차피 해군 소형선에서 읽을 계획이었다. 작가는 구금센터(난민 수용소)에서 쓴 이야기로 호주에서 수여하는 여러 상을 받았다. 하지만 수상식에는 한 번도 참석 하지 못했다. 그는 난민이었다. 잘만 하면 작가를 만나 그 책에 사인을 받을 수도 있겠다. 멋진 장면을 상상하고 있을 때 책상 위에서 스마트폰이 떨었다. 병원주차장에 도착했다는 니콜의 문자였다. 코테가 다가와 어깨를 툭 치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며칠 전 실없이 논쟁을 벌였던 일에 대한 사과였다. 
  
찍어낸 판화처럼 평범한 선착장에 도착했다. 일행은 남태평양의 하늘을 힐끔거렸다. 나는 손에 들고 있던 가방을 어깨에 걸쳤다. 한쪽 어깨가 축 쳐졌다. 밤새 소형선의 꽁무니를 별의 그림자처럼 따라오던 하얀 돌고래들의 매끄러운 몸매는 마치 꿈에서 본 것만 같았다. 세 명의 해군과 니콜 그리고 마취의사와 함께 산호초를 짓밟으며 걸었다. 산호초의 비명소리에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수용소는 깎아지른 절벽과 빽빽한 숲에 가려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모퉁이를 돌아섰을 때야 언론에서 읽었던 것과 사뭇 다른 극적인 실체가 눈앞에 나타났다. 가시철망안의 교도소 같은 단층 막사대열을 본 일행의 발길이 갑자기 빨라졌다. 첨단 보안시설의 정문을 열어주는 경비의 경직된 표정에 마음이 저절로 움츠러들었다. 
  나는 소장의 경고를 한귀로 들으며 나직하게 한숨을 쉬었다. 상주간호사를 따라 막사 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과 동시에 13살 소녀를 보았고 잠시 멘붕에 빠졌다. 소녀는 인간이 아니라 좀비로 보였다. 바늘로 꿰맸다는 입술은 붉고 검고 푸르고 노랗게 썩어 흉측했다. 소녀가 숨을 할딱일 때마다 불씨 같은 상처가 움찔 움찔 놀랐다.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진 몸에서 오직 입술만이 생명을 부르짖었다. 
“살려야 해” 
혼잣말을 했다. 마취의가 서둘러 마취를 시켰다. 오브아이 현미경을 들이대고 실밥을 뜯어내는 동안 소녀의 고통이 내 손가락을 타고 전이되어 왔다. 그 감각을 차단할 길을 알지 못해 손가락 떨림은 계속되었다. 손가락 끝에서 느끼는 고통의 분노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고통 자체가 내 편이 되지 않아서 손가락 떨림은 쉽게 가라않지 않았다. 
상처의 지혈을 해보려고 안감 힘을 다하고 있는 간호사 목의 파란 힘줄이 터질 것 같아 보였다. 피고름이 쏟아지는데도 나는 바느질을 시작했다. 머리카락보다 가는 실이 바늘 끝에서 전율하며 썩은 피부를 찔러 들어갔다. 모세혈관의 핏줄과 신경을 최대한 보호하느라 내 중추신경은 칼날 위에 서 있는 것보다 더 긴장했다. 긴 시간 공들여 수술을 마친 후 바늘을 놓았을 때 손가락 감각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마비되어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간호사가 항생제를 투여하는 것을 지켜보는 내 의식이 먼 레테의 강으로 달려갔다. 소녀가 올라탄 주사위가 삶도 죽음도 아닌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무작위로 맴도는 것을 내 눈길이 따라다녔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야 공포와 절망 그리고 원망에 절여진 환자들이 넋 없이 호소하는 눈길로 내 등을 직시하고 있었음을 알았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끼쳤다. 심상치 않은 독기 같은 눈길들을 외면하고 싶은 내 심장이 순식간에 섬뜩해졌다. 다양한 증상의 난민환자들을 치료해야만 했다. 한 시간 한 시간이 흐르고 내전 같은 긴 첫날이 끝나가고 있었다. 내 권한은 거기까지였다. 나는 무력감을 곱씹으며 진료막사에서 밖으로 나왔다. 어차피 다음날 새벽이면 돌아가야 했다. 경비들은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외부인의 발길 닿는 곳마다 예민하고 의심이 가득한 레이저광선 눈초리가 따라붙었다.
상자 같은 공간에 들어가 앉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짧은 꿈을 꾸었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그 바람에 책이 배위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자를 만나 사인을 받는 일은 마치 환상이나 먼 나라의 전설이 되고 말았다. 두 손으로 책을 움켜잡자 비누거품 같은 소리 없는 표현들이 튀어 나왔다. 배고픔 참극 죽음 억압 폭력 난파 방관자 이기심…… 콘트라베이스 현에서 분출하는 것 같은 무수한 고통의 떨림이 내 몸 구석구석을 찔렀다. 국적을 잃고 법과 권리마저 상실한 그들, 생사의 항로를 헤맬 땐 한 순간도 희망의 문을 의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토록 간절했던 문이 열렸을 때 앞을 막아선 제2의 문, 그들을 외면하는 비정한 제3국과 비인도적 처사……  생각을 애써 접으려고 고개를 흔들었다. 
 노크소리가 들렸다. 책을 놓고 방문을 열었다. 방문자 숙소 앞에는 니콜과 소장이 서 있었다. 소녀가 깨어났다는 것이다. 니콜의 표정은 뛰어난 지구력과 사회성을 자랑하는 하이에나처럼 의기양양해 보였다. 캔버스 모자챙을 만지작거리며 니콜이 물었다. 
“알리의 자살과 소녀가 입을 꿰맨 진짜 원인을 소장님은 알고 계시죠?” 
“정신이 이상한 아이들입니다. 자살극을 벌이거나 입술이라도 꿰매면 호주 입국허가를 받을 수 있다고 믿고 있어요.” 
“그렇게 말 돌리셔도 그 사건에 대해서 저…… 알고 있거든요.” 
 “저도 잘 모르는 일을 어떻게 아시죠?”  
“솔직하게 알리와 입술을 꿰맨 소녀의…….”
 분명 의도적으로 수없이 연습했을 니콜의 재치부린 말솜씨를 나는 모르는 척 듣고만 있었다. 이곳까지 애인을 견인해 온 그녀를 향해 말없이 갈채를 보냈다. 
치료막사의 코너를 돌때 니콜이 바짝 옆에 따라붙었다. 손으로 가리고 티셔츠를 벌려 보였다. 생명이라도 달린 것처럼 소녀가 마지막까지 손에 꼭 쥐고 있었다는 수첩이었다. 그것은 백여 군데도 넘게 기운 소녀의 입술처럼 나달나달했다. 수첩을 열면 이 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진짜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 것 같은 기이한 믿음이 내안에서 생겨났다. 
서둘러 진료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소녀의 눈이 어지럽게 움직이다가 내 눈에 초점을 맞췄다. 원망과 분노가 원군 바이러스처럼 감염되어 쉽사리 치유되지 못할 것 같은 눈자위 뒤에 숨은 검은 점의 실체를 보지 않으려고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소녀는 다시 혼수상태에 빠졌다. 강에서 귀환한 주사위는 소녀의 주위를 빙빙 배회하고 있었다. 출발 한 시간 전이라고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었다. 서둘러 약물을 주사하고 소녀를 외면하며 책을 펼쳤다. 문장들이 어지럽게 흔들려 한 자도 읽을 수 없었다. 코테가 자신의 눈과 귀로 직접 구금센터의 형편을 보고 듣게 된다면 그는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코테는 스리랑카 태생이다. 부모를 따라 일곱 살 때 생사의 항로를 헤맨 결과 호주에 정착했다. 난민들이 난민을 옹호하지 않는, 난민일수록 기를 쓰고 난민을 반대하는 외침을 접할 때면 내 판단력도 흐릿해졌다. 행복한 물질주의를 지향하는 금발의 백인들이 아니라 대다수의 난민들이 난민입국에 저항하는 목소리 앞에서 나는 침묵했다. 어렵게 정착한 난민일수록 더 큰 목소리를 내는…… 엄밀하게 따져보면 호주는 원주민을 제외하면 모두가 난민인 셈일 테지만.
그날 니콜에게 선물 받은 책을 자랑하지 말았어야 했다. 사랑을 떠벌리려던 내 의도가 빗나가버렸다. 느닷없이 코테가 책을 뺏었다. 후루룩 책장을 떠들더니 책상위로 홱 던졌다. 그러고 사나운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저들은 우리의 적, 무슬람이요.”  
“왜, 무슬림이 당신의 적입니까?”
엉겁결에 나도 날카롭게 응대했다.
“테러범들이니까요.”  
“모든 무슬림이 테러범이은 아니죠, 그 말은 모든 인간이 테러범이라는 말로 제 귀에 들립니다.” 
“ISIS와 빈 라덴을 생각해 봐요. 전 세계 테러조직이 무슬림인 걸 모르세요? 세상은 911 사건을 잊지 않을 겁니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테러범을 지원하잖소. 내 가족의 생사가 달린 일이고요. 오페라하우스나 하버브릿지가 언제 한 방에 날아갈지도 모르고.”   “글쎄요, 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자국으로 돌아가면 처형될 사람들……, 그러니까 당신 말대로 테러조직에 맞서다 망명한 사람들을 내 모는 것은 우리 손으로 앞서 살인을 저지르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건 그들의 문제죠. 왜,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들의 죽음이나 고통을 책임져야 합니까?” 
“출항준비 완료되었습니다.” 
해군 중위였다. 생각에 갇혀서 그가 막사로 들어오는 것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했다. 그가 막사를 나가면서 거수경례를 올리며 웃었다. 다시 소녀를 바라본다. 일부의 인도주의자들과 일부의 방관자들의 이기심으로 양분된 민심을 호주정부도 어찌해 볼 도리가 없을 것이다. 비인도적 처사라고 한 마디로 비난하는 것도 옳은 일이 아니리라. 그래서 난민을 제3국으로라도 무사히 보내려고 시도하고 있지 않은가. 난민들 생각엔 거대한 통치술의 호주 권력이 그들이 믿는 알라신 보다 한 수 위라고 믿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현실을 생각해야지요, 정치인들이 결코 난민을 대륙에 들여놓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지 않아도 삼만 오천 호주 가정이 살 수 있는 비용이 매년 사라지고 있지 않습니까.” 
코테의 말이었다. 
“호주가 얼마나 국제사회로부터 비난받고 있는지 알잖아요. 제대로 된 이해 없이 무조건 몰아가지 말자고요. 아기들 어린이들 노인들 혼자된 여성들 중환자들 정신질환자들…… 진짜 가여워요.” 
“그건 그들의 문제죠.”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당신은 당신의 나라가 책임을 져서 이곳에 정착할 수 있었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가 보트피플로 호주에 정착했다는 사실이 싶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함에도 또 코테의 주장을 이해할 것 같기도 했다.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는 니콜이 오히려 이상해 보였다. 
그나마 인권단체에서 요청한 해군 소형선을 허락해준 정부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할 때였다. 정보사냥을 하러 돌아다니다 헐레벌떡 나타난 니콜이 자그만 손을 내 어깨위에 올렸다. 내 큰 손이 그녀의 손을 덮쳤다. 가방을 어깨에 둘러맸다.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았다. (계속)

*베로우즈 부차, 『친구는 없고 산들만 있네』, 인용, 변용했습니다. 

테리사 리 소설가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대상
11회 민초문학상대상 수상
소설집<비단뱀 쿠니야의 비밀><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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