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은 서방지역 한인들의 고국지향성과 그에 따른 잠재적 부정적 영향의 가능성을 시사한 지난번 본난(1월15일자 참조)에 대한 후속이다. 그때 이 약속을 했었다. 길 수 없어 쓰지 못했지만 고국지향성이 모두 부정적인 건 아니다. 아름답거나 필요해서 지켜나가야 할 것도 많다. 
나는 지금도 페북이나 카톡에 올라오는 어린 시절 살았던 정다운 고향의 풍경, 그것을 생생하게 그린 시와 노래들을 읽고 들으면 가슴이 설레인다. 백인사회에서 오래 살았지만 아직도 우리 음식이 좋고 우리말로 정을 나눌 수 있는 동포와 지내는 게 좋다. 
정말 부정적인 고국 지향성은 해외 한인들로 하여금 한 때 고국을 떠나게 만들었거나 지금도 선진국 민주주의 사회에 살게 되었다면 버려야 할 전근대적 가치나 행태가 나와서도 계속되거나 더 심화되어 거주국 사회의 가치와 충돌할 것들이다.
 
2. 여러 가지 그런 사례를 들 수 있으나 그 중 하나로 지난번 글에서   운을 띈 해외 한인사회를 돕는다는 고국의 재외동포정책 자체다. 오늘은 이 토픽에 한정해서 말해본다.
한국은 민주화가 많이 되었지만 아직 멀었다. 한번 굳혀진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음으로 그렇다.  역사적으로 오래 이어져온 우리의 왕권정치, 일제시의 군국주의와 관료주의, 아래에서 설명할 해방 직후부터 오늘까지 계속되어온 분단 상황 등이 겹친 결과인 중앙집권적 권위주의 통치의 잔재가 그것이다. 
중앙을 정점으로 촘촘히 짜여진 그 많은 기구와 조직들이 고국에서야 물론, 선진민주주의 국가에 산다는 한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재외동포정책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어떤 공익 사업을 하겠다면 기구와 조직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게 정치적 필요에 따르는 거라면 내실 없는 행사와 절차 놀음으로 혈세를 낭비하게 된다. 
대부분 해외에 존재하는 한인 조직과 기구는 고국 정부가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나 직간접으로 장려한다. 어떤게 그런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겠다. 
 
3.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박사는 반공의 화신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옹립하여 그 자리에 앉게 된 이 정치 지도자에게 주어진  급선무는 첨예한 좌우 대립 상황에서 남한의 공산화를 필사적으로 막는 일이었으므로 당연하다. 그때 그는 지방 유세를 많이 다녔는데 그 연설의 핵심은 언제나 ‘공산주의는 절대 안되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을 위하여 정부 주도하에 서울에 중앙본부로부터 도에 도지부, 군과 시에 지부까지 뻗치는 학도호국단과 대동청년단과 같은 전국적 반공 조직망이 생겨 학생들과 젊은이들을 꽁꽁 묶었는데 그건 중앙집권의 전형이었다. 그런 전통은 아직도 한국의 정치인과 행정관료의 피 속에 그대로 흐르고 있다. 이름은 대지 않겠으나 한때 모 시드니총영사는 모든 한인단체들에게 공관에 신고하라고 한 적이 있었다. 내가 글로 이의를 제기했었지만, 그래서 그런지는 알 수 없으나 그후 유야무야 되었다.
 
4. 얼마전 한국의 재외동포재단의 재단 홍보문화조사부장 겸 서울 사무소장을 맡게 된 깁봉섭씨가 새로 취임한 김성곤 10대 재단 이사장과 현지 여러 재외동포 관련 학자와 전문인들과 상견례를 가졌다는 소식과 사진을 페북에 올렸었다. 여기에 따라 붙은 재미있는 댓글 하나를 그대로 옮겨 본다. “좀 아쉬워요. 왜 저렇게 중요한 자리에 정작 재외동포는 참여하지 않는지 말입니다. 여성회 문제를 남성들이 모여 경정하는 느낌이랄까요 ㅎㅎㅎㅎㅎ”
그에 대하여 김 소장이 이런 짧은 답을 띄었다. “장현석 중국 용정 출신 동포도 참석했습니다.” 여기에 나는 아래와 같은 댓글을 달았다.
“제가 사는 아직도 1세가 주도하고 언어장벽으로 주류로의 진입이 어려운 서방의 한인사회와 해방 이전에 조성되고 더 이상 이민을 받지 않아 3,4,5세 한인계가 주도하는 중국, 구 소련, 일본 등의 한인사회의 실정과 필요는 크게 다릅니다. 용정 출신의 동포가 누군지 모르지만 그 양반 하나가 참석해서 발언을 했다고 한인사회의 실정이 반영될까요?” 
“한국의 재외동포정책은 현지가 아니라 서울의 생각에 따라 운영되어 온 건 아주 오래된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그 정책의 대상이 되는 해외 한인사회의 이익이 되자면 현지의 우선 순위에 따른 필요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와 그에 따른 그런대로 수긍할만한 지식이 축적되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연구나 그 결과 나온 문헌을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으로서 본 적이 없습니다.”
이에 대한 김소장의 반응은 이랬다. 일단은 희망적이다. “김삼오 박사님. 현지 사정은 현지 동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지에서 바라보는 의견 주시면 최대한 반영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를 잘 활용해주세요. 동포들의 의견을 열린 마음과 낮은 자세로 경청하겠습니다.”였다.   
 
5. 연 예산 600억원 규모의 외교부 산하인 재외동포재단은 적어도 예산만 놓고 볼 때는 이 분야 최일선 창구로 볼 수 있다. 이번에 이 재단의 제주도 이전으로 서울 사무소 개설이 필요해진 것이다.   
어쨌든 내 생각은 이렇다. 누구를 탓하랴. 해외 현지 한인들의 책임이 크다. 다른 서방지역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 여기 한인사회도 이런 문제를 놓고 고민커녕 논의 한번 한 적이 없다. 한국에서 유입되는 재정 지원 규모가 얼마며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조차 전혀 알려지지 못하고 있다. 
그럴 리도 없지만, 이 사회의 단체장 몇 사람을 서울에 초치, 아니면 서울에서 책임자가 호주를 방문하여 그들을 만나 이 사회의 필요를 묻고 들으면 되는 것도 아니다. 우리대로의 믿을만한 리서치면 좋고, 아니더라도 평소 토론과 체계있는 의견 취합을 거쳐 문서화해서 건의하는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그러니 이런 중요한 문제를 각자 즉흥적으로 대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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