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새로운 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사가 신문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최근엔 애플이 자율 주행 전기차를 2024년까지 생산 할 것이라는 소식이 실렸다. 작으면서도 고성능의 배터리를 개발하고 눈과 같은 ‘라이더 센서’를 개발해서 아이폰이 나왔을 때처럼 획기적인 차가 세상에 나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종종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테슬라 전기차처럼, 근사한 모양뿐만 아니라 첨단의 기술력이 탑재되고 자율 주행 기능이 가능하다고 하니 얼른 구경이라도 해보고 싶다. 

팬데믹으로 여행을 다니지 못하니 가상이 현실처럼 느껴지도록 여행지를 소개하는 프로그램도 다양한 아이디어로 속출하고 있다.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인기 있는 관광 도시를 팩키지화해서 외국을 가지 않아도 머리에 헤드셋을 쓰면 관광지가 화려한 색감을 덧입고 입체로 생생하게 눈에 다가오고 전자 센서가 부착된 조끼만 걸쳐도 바람과 온도, 차량이나 배의 진동이나 풍랑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심지어 AI도우미가 등장을 해서 독거 노인의 집에서 청소를 한다든지 문을 열어 주고 심부름도 가능하고 말을 걸면 대답도 하고 제법 감성 담긴 인사도 나눈다고 한다. 누군가, “예쁜 도우미는 더 비싼가?” 라고 질문해서 AI 애기를 하다 크게 웃은 적이 있었다. 짓궂은 상상력이 발동해 “ 비싸도 좋은 도우미 한 두개 사두면 좋겠네..”라고 내심 편한 발상을 덜컥 말했다가 그 자리에 있던 아내들로부터 싸늘한 눈총을 받고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한 기혼 중년의 다 말못한 아쉬운 표정이 기억난다. 

팬데믹에 여러 AI가 등장하며 우리는 더욱 신기한 시대를 살고 있다. 팬데믹은 많은 고통이 수반되고 폭발하고 싶은 자유를 제한하지만, 다투듯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고 현실이 따분하지만 않도록 움츠러든 아쉬움을 기발한 가상 현실로 우리를 달래주고 있다. 앞으로 어떤 획기적인 세상이 펼쳐질지 오히려 암울한 시대가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고 있다. 

벌써 오래 전 일이지만, 마이애미 올랜도에 있는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아이들이 아직 어렸을 때 다녀왔던 적이 있었다. 고글을 끼고 기차에 올라타니 뉴욕에 맨하탄에 킹콩이 나타나 실제 내가 탄 기차를 향해 거대한 팔로 내려치며, 기차가 흔들리고 성난 킹콩의 괴성을 들으며 기차가 끝없이 추락하고 물에 몸이 젖고 빠져들어가는 것 같아 소리를 지르고 혼비백산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 때쯤 놀이기구가 멈춰서서, 현실이 아닌 것을 감사하며 소스라친 가슴을 쓸어내린 기억이 있다. 

어수룩한 호주 촌사람들이 멋 모르고 첨단 도시의 놀이 기구를 탔다가 현실감이 더 했을 것이다. 마치 악몽을 꾸고 깨어난 것처럼 진짜 같았는데 현실은 아닌 것이다. 아마 요즘은 더욱 기술이 발전 했으니, VR 헤드셋을 쓰면 훨씬 더 현실 보다 더 진짜같은 적나라한 가상의 세계가 펼쳐질 수 있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시간과 공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모형이며 실제 우리가 사는 조건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마치 미래에 다가 올 시대를 그의 물리학 이론에서 발견했던 것일까? 그는 이미 시간과 공간은 제한 있는 것이 아닌 단지 영원에 연결된 과정일 뿐이라고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과거,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지속적인 집착적 환상”이라고 강조한 것은 마치 작년부터 이어진 팬데믹 상황이 단절된 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시간은 미래로 연결되고 그리고 영원으로 가는 다리와 같다고 설명하는 것 같다.  결국 영원에 다다라야 실제로 존재하는 영원을 맛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는 무엇이 실재로 남았는 지 분별이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때로 작은 일을 큰 일처럼 여기며 걱정하고 전전긍긍하며 산다. 지나고 나면 별 일이 아니었는데 괜한 의심을 하고 노여워하고 고심으로 잠을 설친 자신을 부끄러워한다. 우리 마음 속의 가상 현실은 종종 별의 별 상상과 의구심의 시나리오로 나래를 편다. 집착해도 맘처럼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결국 내가 멋대로 편집한 가상 환상의 왜곡된 결론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의 증거”라는 말을 써 두었나보다. 집착하며 현실을 살아도 결국 맞닥뜨리는 영원에 존재하는 미래 현실은, 마음에 실재가 이루어지는 믿음의 진정성이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니까..  
설날에, 혹 미운 시댁 식구를 만나도 결국, 너그러운 마음을 먹기에 달렸다. 
가상 현실(VR)은 현재의 집착적 환상을 깨닫게 하는 반면 교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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