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모컨, 장난감 등 영유아 안전 위협 인식해야 
연간 건전지 삼키는 사고로 24명 중상

2015년 여름, 생후 14개월 된 벨라가 버튼 모양의 리튬 배터리를 삼키고 무려 19일 동안 고통을 견디다 결국 숨졌다. 그간 병원을 네 차례나 찾았지만 의사들의 반복된 오진이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벨라가 고열과 구토 등의 증세를 호소해 처음 응급실을 찾았을 때 병원에서는 장염일 뿐이라며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 음식을 거부하고 혈변까지 보여 다시 병원을 방문하자 이번에는 요로감염을 진단했다. 증세가 지속되면소 병원을 또 찾았을 때도 진단은 같았다.

그리고 2015년 2월 4일 이른 아침, 엄마를 부르는 소리에 벨라에게 달려간 앨리슨은 경악했다. 아이가 온통 피범벅이 된 채 침대에 쓰러져 있었던 것. 네 번째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그제야 의사가 엑스레이를 찍었다. 동전 모양의 물체가 식도에 걸려있었다.

갑자기 벨라의 심박 박동이 멈췄다. 의료진이 한 시간 넘게 심폐소생술을 시도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불과 2cm 크기의 작은 리튬이온 건전지가 몸속에서 내출혈을 일으켜 벨라를 숨지게한 것.

벨라 뿐만이 아니다. 2013년 6월, 퀸즐랜드의 작은 외곽마을에 살던 썸머 또한 하루에도 응급실에 여러 차례 실려 간 뒤에나 엑스레이를 찍은 결과 식도에 박힌 리튬배터리가 발견됐고, 브리즈번 시내 큰 병원으로 급히 이송된 지 한 시간 만에 숨을 거두었다. 호주에서 리튬배터리를 삼켜 사망한 최초 사례였다.  

통계에 따르면 호주에서는 한 주에 약 20명의 어린 아이들이 버튼모양의 건전지를 삼킨 것이 의심되는 증세로 병원 응급실을 찾는다. 그리고 배터리를 삼키는 사고로 연간 최대 24명이 중상을 입는 것으로 나타났다. 

버튼 배터리는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다. 각종 리모컨과 장난감, 열쇠, 멜로디 생일 카드, 부엌 저울 등 집안 구석구석에 숨어있다. 

리튬배터리가 식도에 걸리면 전류 발생으로 생겨난 수산화나트륨이 주변 조직과 반응해 화상을 유발, 심각한 출혈을 일으킨다. 

먹는 소시지 중앙에 칼집을 내고 리튬배터리를 넣는 실험을 했다. 물이 닿자 거품이 나며 연소반응을 일으켜 안쪽 살코기를 순식간에 태웠다.  

리튬배터리로 인한 어린이 부상이 지속되자 배터리 안전제조에 대한 목소리가 커졌다. 2019년 9월 앨리슨과 안드레아는 소비자단체 초이스(CHOICE)의 협력으로 캔버라 의사당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등 각종 캠페인을 벌였다. 언론과 일부 정치인이 관심을 보였지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포장이 부실한 리튬배터리, 배터리 삽입 공간이 허술하게 디자인된 수많은 제품이 여전히 시중에 널리 판매됐다.

하지만 서서히 변화는 일어나고 있다. 주요 건전지 제조업체인 에너자이저(Energizer)는 “호주경쟁소비자위원회(ACCC)와 협업해 배터리 상품 포장에 안전기호 표시, 경고문구 등을 추가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제조업체 듀라셀(Duracell)은 아동보호 안전포장법과 함께 섭취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는 신기술 제품을 곧 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한, 지난해 말 연방정부는 버튼 배터리와 해당 배터리를 사용하는 제품에 대한 안전기준 관련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리튬배터리 제조 및 판매, 사용 규정 등을 법제화한 것으로 세계 최초다. 

이에 따라 관련 산업 부문은 2022년 6월 21일까지 배터리 안전검수, 경고문 표시, 배터리 삽입부 안전제작 등의 변동 규정을 시행할 기한이 주어졌다.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최대 1천만 달러의 벌금이 부과되는 등 형사 및 민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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