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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지평 ‘수필’] 노란 운동화 3
한호일보 | 승인 2021.02.18 14:48

아라비안나이트가 구슬을 흩뿌려 놓은 것 같은 해변이다. 수영객 서퍼 사진작가…… 액티비티의 중심지 본다이비치는 점점 다양다종이 모여드는 여행지로 유명해졌다. 구조대는 대물렌즈 쌍안경을 눈에서 떼지 않고 사람들을 지키고 있다. 경쟁하듯 자유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은 전라나 다름없는 모습이다. 나는 그들이 돌아갈 제 나라의 스위트홈을 상상하다 수용소를 떠올렸다. 그리고 훌훌 옷을 벗어 던지고 싶어졌다. 
이번 여행의 최종효력으로 나는 팔을 부러뜨렸다. 그것은 여행이 내게 남긴 의미 있는 유물이 되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수첩을 만지작거리며 니콜에게 되돌려줄 적절한 타이밍을 조율하고 있었다. 수용소를 빠져나오기 전 자신은 요주인물이라며 니콜이 내 호주머니에 숨긴 것이었다. 
“자기는 상상이 안 되겠지? 소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니콜은 테러라도 당한 시민처럼 흥분했다. 그녀는 분주히 돌아다니며 혼신을 다했지만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버려 정보를 얻을 수 없었다. 수용소 직원들은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방문자를 경계했다. 더구나 하루도 채 되지 않는 시간은 정보를 수집하기엔 너무 짧았다.
“들어봐, 경비가 은밀한 장소로 소녀를 끌고 갔을 때 알리가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을 거야. 경비가 소녀를 폭행하자 알리가 참지 못하고 뛰어 나갔을 것이고. 알리를 붙잡은 경비는 발설을 하면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을 했겠지. 그 후 알리는 자살극을 벌였고, 정신이 나가버린 소녀는 스스로 입을 꿰맨 거야. 내 추론 어때?” 
“……”
“소녀의 수첩이 내 추리를 밝혀 줄 것 같지 않아?” 
“제발 진정해. 수첩이 뭐 그리 대단해? 소녀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판에.” 
나는 니콜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버럭 화를 낸 것은 불현듯 술이 간절해서였다.  
“의사에겐 당장 눈앞의 한 생명이……” 
니콜이 내 말을 싹둑 자르고 그녀의 말만 계속 이어갔다. 
“소녀는 살아날 거야, 이제 그 원인을 밝혀낼 차례야.”
나는 입을 굳게 다물어 버렸다. 고개를 빼고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호주머니에서 손을 빼면 팔을 부러뜨릴 것 같은 먹구름이 소형선의 선미에까지 내려와 굴러 다녔다. 
“조력자가 그 정도야?”
완전 먹통이라며 니콜이 사이클론처럼 화를 냈다. 그러고 두 손가락으로 엑스 신호를 보내더니 비틀거리며 캐빈으로 걸어갔다. 수첩을 돌려주려고 뒤를 따르는데 중위가 불쑥 나타났다. 다투는 소리가 너무 컸던 걸까. 우리의 대화를 모두 엿들은 것 같았다. 흰 돌고래 무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돌고래가 나타나지 않는 바다가 영 딴판으로 보인다고 나는 헛소리를 뱉었다. 사이클론을 무사히 피할 수 있어야 할 텐데, 그가 시선을 허공에 박고 동문서답을 했다. 중위가 뜨거운 커피를 청했지만 나는 가볍게 거절했다. 그 말이 술 생각을 더 부추겼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소형선이 갑자기 껑충 뛰어 올랐다. 호주머니에서 급히 손을 빼면서 소녀의 수첩이 딸려 나왔다. 몸을 날려 강풍에 날아오르는 수첩을 잡았지만 발을 잘못 디디면서 미끄러지고, 갑판에 철퍼덕 자빠지는 순간에 몇 바퀴 굴렀다. 그 바람에 왼팔이 날카로운 쇠붙이와 부딪쳤다. 
나는 상어에게 다리를 물어뜯기는 서퍼처럼 비명을 질렀다. 소리를 듣고 뛰어나온 마취의사가 익숙한 동작으로 구급처치 해 주었다. 애인의 팔이 골절되었는데도 니콜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면도날로 촘촘하게 그어대는 고통이 덮쳐왔다. 팔을 떨어대면서 마취 의사의 손에서 뺏은 모르핀을 스스로 찔렀다. 잠시 후 시간개념을 잊고 무의식의 세계로 나가 떨어졌다. 
의사가 팔을 다치면 한심해진다. 한 손으로 짐을 풀면서 또 길을 걸으며 심지어 밥을 먹으면서도 엔리케 이글레시아의 노래만을 삼일 동안 줄기차게 들었다. 감정의 무게를 흐물흐물하게 뭉개버릴 것 같은 노랫말들, 빠른 리듬과 강렬한 관능의 주인에게 내 자아를 양도해버리고 싶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니콜에게 알 수 없는 가책이 일었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칭찬할 말을 주워 모았다. ‘내가 당신의 입술을 만지면 당신은 몸을 떨까요.’ 듣고 있던 노래를 끄고 니콜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과잉된 뉘앙스로 아부적 칭찬을 쏟아 부으며 데이트신청을 했다. 어떤 승리감이 뒤섞인 목소리로 전화를 받은 니콜은 지금은 단체에 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변호사들로만 구성된 인권단체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참 생각을 헤아리던 그녀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많은 메시지와 전화를 한 결과 가까스로 못이기는 척한 응답이 돌아왔다. 
“그쪽으로 갈 게. 소녀의 수첩 번역 들어봐, 중요한 게 있거든.”
이모티컨과 녹음파일이 연속으로 액정에 쏟아졌다. 나는 한동안 망설였다. 하지만 소녀의 일기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의사로서 겪는 익숙한 긴장 떨림 동정 불안들, 세상에 넘쳐나는 고통들을 체념하고 잠깐이나마 현실의 등 뒤로 숨으려고 했던 마음의 정체를 들킨 것 같아 죄의식이 느껴졌다. 

  4월 19일
압바스가 수용소에서 달리다 경비원에게 따귀를 맞고 구둣발로 짓밟혔다. 압바스는  일곱 살이다. 이곳은 끔찍하고 더러운 곳이다. 지금보다 훨씬 더 어릴 때 나는 깨달아야 했다. 이상한 나라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동화에 나오는 그런 나라까진 바라지 않았다. 그런 나라가 있다는 건 믿지 않았으니까. 무함마드 할아버지는 노란 샌들 한 짝이란 동화를 읽어주시다가 폭탄 속으로 사라졌다. 내전에서 한 쪽 다리를 잃은 할아버지는 달릴 수 없었다.    

  4월 24일
13살이 되었다. 일기라도 쓰지 않으면 내 자신이 통째로 사라져버릴 것 같다. 어쩌면 바다에서 아빠의 손을 놓칠 때 이미 나의 세계는 사라졌다. 이곳에서 우리는 인간이 아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서쪽 바다에서 보트가 난파할 때였다.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우리는 바닷물을 마시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울부짖던 사람들의 비명이 아직도 귀에 들린다. 나는 벌레가 된 것 같다. 너무 오래 이곳에 감금되어 있은 탓이겠지. 알라에게 빌어도 소용없다. 오스트레일리아가 알라보다 더 힘이 세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  
벌거벗은 남성이 달려간다. 모래사장을 질주해 바다로 뛰어드는 금발 누드를 카메라의 앵글이 재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비계덩이 주인공 영화를 찍나? 두 명의 구조대원이 그를 쫓아간다. 잠깐의 자유를 유보한 사람들의 시선이 누드에게 달라붙어버렸다.  
스트립쇼를 하는 사내는 고독해 보인다. 주체할 수 없는 자유를 스스로 수장(水葬)해 버리려는 몸짓이다. 가이드에게 끌려나오며 두 손으로 성기를 가리고 있는 고독한 누드에게 누군가가 ‘위험 구역’이란 붉은 글씨의 세모꼴 깃발을 북 찢어 치부를 덮어준다. 나는 곧 흥미를 잃고 이어폰을 꽂았다.

 5월 14일
여자가 폭행을 당했다. 남편과 아이를 크리스마스 섬 앞 바다에서 잃고 혼자 살아남은 여자다. 살아야할 이유조차 불투명한 여자를 누군가가 피투성이로 만들었다. 독신 여성들의 명단을 경비들이 소지하고 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 아니다. 

  5월 21일
결코 조국을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이유로 나라를 버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싸움은 대단한 게 아니다. 쉽다. 참을성 없는 어른들이 싸운다. 낙서가 뭐 길래, 고작 낙서 하나로 통치자가 내전을 일으키다니 웃기지 않는가? 절반이 넘는 국민이 제 나라를 떠나게 하는 살인자를 이해하긴 너무 어렵다.  
내 나라에서는 뛰어야만 했다. 노란 운동화를 꼭 끌어안고 잠잤다. 바스락 소리만 들려도 화들짝 깨어나 달렸다. 이곳은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어 달릴 수 없다. 경비에게 얻어터진 압바스는 아직도 걷지 못한다. 나라란 무언가? 그런 생각을 하기엔 내 나이는 충분치 않다. 나라를 잃는 것은 소소하면서도 작은 박탈이라고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죽을 것 같다. 대낮에도 누군가 내 목을 조르는 환상에 시달린다. 밤마다 뿔이 세 개 달린 유령과 경비가 교대로 꿈에 나타나 목을 조른다. 유령과 경비는 서로 닮았다. 
나는 아이스버그 수영장 계단을 가볍게 뛰어 내렸다. 거기서 넘어졌다. 한손으로 균형을 잡았지만 너무 늦었다. 깁스한 팔이 콘크리트 벽에 부딪쳤고 단말마가 터져 나왔다. 일어서려는데 휴대폰이 울렸다. 
“어 어 어 디야?”  
“나 그쪽 가고 있어.”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6월 1일
우리는 날마다 배가 고프다. 음식은 끔찍하다. 알리와 게를 잡으러 가기로 했다. 밤엔 컨테이너 밖으로 나가선 안 된다. 하지만 내겐 숨겨둔 담요가 있다. 알리도 검은 담요를 덮어쓰고 나올 것이다. 우리는 내일 밤 경비초소에서 먼 철조망 아래서 만나기로 했다. 밤마다 게들은 감전철망 아래로 싹 싹 싹 소리를……“
“위용 위용 위이잉” 사이렌이 울린다.
덩달아서 휴대폰이 울린다.
“상어가 출현했어.” 
“나, 구조대타워…… ” 
사이렌 소리가 니콜의 음성을 물어뜯어버린다. 캔버스 모자를 들어 보이며 이쪽을 향해 오고 있는 니콜을 발견했다. 나는 반사적으로 깁스한 팔을 들었다. 구조대가 물속에 뛰어 들어가 확성기와 손짓으로 관광객들을 몰아내고 있다. 
“상어에게 물려요. 물 밖으로 나와요.”
자유를 제지당한 사람들이 짜증난 표정으로 느릿느릿 물 밖으로 나오고 있다. 쌍안경으로 먼 바다를 일별한 구조대가 쌍안경을 모래밭에 던지며 외쳤다. 
“저 저 저 서퍼 상어와 너무 가까워.” 
보드에 몸을 날려 올린 구조대가 서퍼를 향해 나아간다. 무릎을 꿇고 두 팔을 휘젓는 구조대의 동작이 고속 영화에서 사물이 빠르게 축소되는 영상처럼 작아지고 있다. 
“돌아 나와. 제프, 둘 다 위험해.” 
확성기에 대고 소리치던 동료구조대가 확성기를 내던지고 바람처럼 날아간다. 전망타워 지하 가라지에서 제트스키를 밀고 나왔다. 제트스키의 요란한 엔진이 전투기처럼 바다를 향했다.  
그 때 회색 불샥이 삼각형 윗니로 서퍼의 다리를 물어뜯었다. 순식간에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다. 서퍼의 두 번째 다리를 향해 불샥이 전기톱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 해저에서 빅뱅이 솟구쳤다. 나는 경악하며 상상에서 깨어났다. 내가 왜 그러한 상상에 빠졌는지 의문을 가질 시간이 없었다. 니콜이 코앞에 뛰어오고 있었다. 반가움을 참지 못하고 그녀를 향해 한 팔을 번쩍 들어올렸다. 하지만 내가 투명인간이라도 되는 양 니콜은 곧장 바다로 뛰어 들어갔다. 눈으론 니콜을 응시하고 머리론 괴상한 상상을 하는 동안 바다에는 이미 다양다종의 인간이 끝이 보이지 않는 사슬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바다 속에서 비늘처럼 펄펄 뛰는 것은 손에 손을 잡은 인간사슬의 물결이다. 그들의 앞에는 제트스키 구조대 서퍼 상어가 일직선으로 펼쳐져 있다. 인간사슬은 마치 바다에 내동댕이쳐진 난민들 같기도, 마디그라 축제를 즐기며 춤을 추는 것 같기도, 아라비안나이트가 구슬을 흩뿌려 놓은 것 같기도 하다. 서로의 손에 묶인 인간사슬이 밀물처럼 출렁출렁 나아가고 있다. 
팔을 다친 의사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휠체어를 탄 장애인 그리고 어린아이들만이 해변에서 그 광경을 바라본다. 그 때 공중에서 다급한 프로펠러 소리가 들렸다.


테리사 리 소설가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수상
11회 민초문학상 수상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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