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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새롭고 낯선 것들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 승인 2021.03.04 14:00

몇 개월 동안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했다. 코비드 펜데믹으로 집에서 온라인 예배에 참여하고 있다. 처음엔 예배 드림 같지 않은 어설픈 느낌이었다. 그런데 얼마간 반복하다 보니, 조금씩 거부감이 덜해졌다. 나도 모르게 적응이 된 것일까? 아직 미흡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래도 이런 형태의 낯선 예배가 새로운 하나의 정상이 된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게 된다. 이번 주일부터 시작되는 은목회 예배가 기다려진다.

줌(zoom)을 통한 원격 강의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 작년에는 교실에서 대면 강의를 하다가 학기 중에 비대면 강의로 바꾸게 되었다. 서로의 안전과 공공의 유익을 위해서지만, 그냥 불편했다. 만족스럽지 못했다. 물론 이런 형태의 줌 강의를 달가워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었다. 금년에 새학기를 맞으며 상황이 많이 완화되었다. 예방수칙을 지키면 교실의 대면 강의도 가능하게 되었다. 학생들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의외로 줌을 통한 강의를 더 선호해 지금 그렇게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다. 

유발 하라리 교수는 집에서도 학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어, 등하교의 번거로움이며 학교의 넓은 교실이 필요없어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가 2018년에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에 언급된 내용이었다. 코비드 확산으로 인해 그의 말은 예측보다 앞당겨 우리의 생활 속에 새로운 일상이 되었다. 학교 수업만이 아니다. 재택 근무를 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식료품 등 여러 상품 구매도 인터넷으로 주문하고 배달시키는 새로운 방법들이 점점 더 많아지는 추세이다. 이 또한 낯설지만 새로운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금년에 대학 신입생이 된 손자는 첫 오리엔테이션을 줌을 통해 참여했다. 설날이라고 미국에 있는 아들 가족이 영상 세배를 보내왔다. 나도 장례식이며 목사 임직식 등을 줌을 통해 참여했다. 텍사스주의 한 지역 수영대회의 실황을 접속비 10여 달러를 내고 지켜 보았다. 손자가 고등학교 대표 선수로 참석해서다. 단체전 계주 경기에서 그의 학교가 대회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했다. 또 개인전 500야드 자유형 경기에서 손자가 우승했다. 실시간 경기를 보면서 응원하며 기쁨의 순간을 함께 할 수 있어 좋았다. 금년 엠마오대학 졸업식은 제한된 인원수만이 참석할 수 있어 많은 졸업생들이 줌을 통해 참여했다. 프레드 나일 NSW 상원의원 등 하객도 참석했는데 전처럼 찬양이며 축하 순서 등이 없어 아쉬었다. 너무 멀고 낯설다고 여기던 것들이 이미 내 생활의 한 부분이 된 것을 발견한다. 요즈음 내 안의 낯섬과 익숙함의 경계가 모호해진 느낌이다. 

며칠 전 한국의 작은 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부친의 형제 중 막내로 유일한 생존자셨다. 은퇴 후에는 족보 만들기와 선산의 가족묘지 정비에 큰 관심과 열정을 쏟으셨다. 그 분은 가족묘지에 묻히시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그런데 유가족의 뜻에 따라 동작동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고 했다. 이해할 수 있는 선택이다. 그것은 명예로운 일이고, 서울에 사는 가족들이 쉽게 방문할 수 있다는 유익 때문이다. 나 역시 오랜 외국 생활을 했으니, 죽어서라도 선산에 묻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부담이 될 것 같아, 시드니의 맥쿼리 공원묘지에 장지를 마련했다. 나는 가족중심의 소박한 장례식을 원하지만, 결국 자녀들이 좋을대로 할 줄 안다. 내게 관한 일이지만 자녀들이 정하는 것이 순리요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상념들이 낯설어 조금은 쓸쓸해진다.

사람이 70세가 되면, 마음 가는대로 해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고 공자는 말했다. 그만큼 삶의 지혜와 원숙함에 이르게 된다는 뜻인 줄 안다. 나는 이미 그 나이가 지났다. 그러나 내 마음은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직도 철부지다.  때로는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이리 저리로 내닫곤 한다. 그 마음가는대로 하면 정녕 어긋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마음을 절제하고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만 하는 사람이다.  낯선 노년의 모습인 것일까?

지금의 나는 어떤 새롭고 큰 성취를 꿈꾸지 않는다. 과거에 어떤 성취라고 우쭐대던 것들도, 돌이켜 보니 스쳐가는 바람처럼 아니 그림자 처럼 부질없는 것이었음을 보게 된다. 비교적 평탄한 삶으로 나를 인도해 주셨고 또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건전한 사회 구성원의 역할을 감당케 하심도 감사하다. 모두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베푸신 은혜임을 고백한다. 다른 욕심없이 단순하고 겸허히 살아야 한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다. 조금씩이라도 매일 그리스도를 배우며 성숙해가는 자가 되기를 원한다. 

사순절 기간이다. 주님의 사랑과 임재하심에 감격해서 많이 울었던 날들이 생각난다. 지금은 왜 그런 감동이 낯설게 느껴지는가? 그저 나이가 들어 감정이며 눈물샘이 메말라진 것일까?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만지심을 기다리며 십자가를 묵상하는 사순절 여정이 되기 원한다. 그런 기다림이 낯설고 불편할 줄 안다. 그래도 내게 필요한 새로운 회복과 치유의 길이 되기를 소망한다.

최정복 (엠마오대학 기독상담학과 교수)  jason.choi4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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