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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편동화 3회중 첫회]

 밤 사이렌이 세 번 울렸다. 검은 유리창을 가득 채운 TV 화면에 하얀색 우주복을 입은 앵커가 등장했다.
 “행복나라 국민여러분, 오늘 하루도 행복하셨는지요? 이제 건강한 내일을 위해 취침할 시간입니다.”
 내 우주복에서도 삐삐삐 잠 잘 시간을 알려준다. 나는 보통 때처럼 우주복을 벗기 시작한다. 맨 먼저 가슴에 꽂힌 안테나를 빼 책상에 놓는다. 여전히 앞가슴에서는 ‘여3호 이아라’ 이름표가 반짝인다. 여자 3학년 이름은 이아라다.
 안전모를 벗으려다 주춤한다. 점점 희뜩하게 변해가는 내 얼굴이 검은 유리창에 비쳐 해골처럼 하얗다. 바이러스를 차단시켜주는 안전모가 햇빛을 차단해 멜라닌 색소를 앗아간 거다.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본다.
 ‘앗, 오늘 비타민D 먹는 걸 빼먹었지 뭐야.’ 
 약병이 유난히 반짝인다. 어린이용 햇빛보충 비타민D : 2000 IU. 
 오늘 아침에 늦게 일어나 약 먹으라는 알람소리를 놓쳤다. 허겁지겁 물과 알약 한 알을 삼킨다. 그때서야 빨간 불이 꺼진다.
 ‘삐삐삐. 이제 침대로 가셔도 됩니다.’
 정해진 일과 중 하나라도 빼먹으면 내 가민 워치에서 엄마 폰으로 연락이 간다. 하루의 운동량도 물론 엄마에게 보고가 간다.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생일날 내가 원하는 선물을 못 받는다. 그리고 다음 달 용돈이 깎인다. 이건 죽음이다. 친구들과 VR 총 쏘기 게임도 레이싱 존에서 하는 카레이싱도 할 수가 없다.  VR 총 쏘기는 외계인을 죽이는 게임인데 정말 짜릿하다.
 엄마는 잘 때도 가민 워치를 차라고 한다. 위급한 일이 생기면 엄마에게 연락이 가니까. 나는 그런 일은 없을 거라며 가민 워치를 풀어 머리맡에 탁 놓는다. 
 우리 반 아이들 모두가 가민 워치를 갖고 있다. 처음엔 신기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너무 싫다. 그러나 6년 동안은 가민 워치를 벗으면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행복나라 국민의 건강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안전모 속에 말아 올렸던 머리칼을 푼다. 온종일 숨도 못 쉬던 머리칼이 자르르 목덜미에 쏟아져 내린다. 
 ‘아이 시원해!’
 머리채에 손가락을 넣어 아래에서 위까지 쓸어 올려본다. 그리고 한 번 흔들어댄다. 머리채가 참기름을 바른 듯 찰랑거린다. 아, 이 말은 사실 할머니가 내 머리를 묶어줄 때마다 해주었던 말이다. 
 “어쩌면 우리 아라 머리는 이리도 반짝이누? 꼭 참기름 발라놓은 것 같다.”
 할머니가 어렸을 적 고소한 참기름을 머리칼에 발라봤는지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러다 가슴이 막힌다. 지금은 할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물어볼 수도 없는 일.

 내가 우주복을 처음 본 날은 행복대박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코흘리개 신입생들이 여3호 줄 앞에 나란히 섰다. 아니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1.5m 간격으로 그려 놓은 발 모양 위에 섰다.
 그때 눈사람같이 덩치 큰 우주인이 강당 앞으로 나타났다. 순간 이벤트에 우리는 와! 비명을 질렀다. 하얀 북극곰이 고장 난 테이프처럼 뒤뚱거리며 강단으로 올라왔다. 그리고 안전모를 벗었다. 순간 아이들이 발을 동동 굴렀다. 
 “야! 속았다.”
 “오소리 교장 샘이잖아!”
 교장선생님 눈가가 판다곰 같다고 아이들이 붙인 별명이다.
 “오, 저 다크서클!”
 여6호 패셔니스타가 속삭였다. 
 “안전모 때문이야.”
 “그것보다 우주복 입으면 교장 샘처럼 되는 거 아냐?”
 “겁쟁이님들. 행복나라에서 다이어트 관리해주는데 뭐가 걱정이냐? 뒤뚱뒤뚱 북극곰만 안 되면 오케이!”
 우리는 어기적대며 깔깔거렸다. 곧 교장선생님의 장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아, 아. 조용히 하세요. 주, 중대 발표를 하겠습니다.”
 이번에도 맘이 급한지 첫 단어를 두 번씩 발음했다. 게다가 중대 발표라니 행복학교에 귀신이라도 출몰했다는 말일까?
 “내가 지금 착용하고 있는 에이씨 우주복을 보십시오. 코, 코로나 후의 최대 발명품이라고요.”
 아이들이 난리가 났다. 에이씨, 에이씨, 우주복 싫어! 라며 깔깔거리고 웃어댔다. 당황한 교장선생님이 황급히 손을 저었다.
 “그, 그 나쁜 말이 아니라 After Corona 의 약자 AC예요.”
 “어쨌든 AC가 에이씨지 뭐야.”
 아이들도 어른도 깔깔대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누군가가 말했다.
 “맞아. 코로나로 인해 BC와 AC의 세계가 엄청 바뀌고 있는 건 사실이지.”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 여3호 김지식이다. 아이들이 우리 반의 킹카 김지식을 바라보며 존경스러운 양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식은 아는 게 엄청 많은 잘난척쟁이다. 
 나는 보통 답을 다 알면서도 누가 물어보면 그것에 대한 대답만을 한다. 그러나 김지식은 나와 다르다. 자기가 제일 많이 알아야 하고 먼저 정보를 알려주어야 속이 시원한 아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나도 김지식이 아는 것쯤은 거의 다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 너희들 BC도 알아둬. Before Corona.”
 김지식은 잘난 척하고 교장선생님은 계속 말씀하셨다. 
 “이 AC우주복은 추위와 더위는 물론 습도까지 자동으로 조절해줍니다. 그뿐 아니죠. 외부로부터 세, 세균은 물론 바이러스의 침입을 막아줍니다. 세계를 구석구석 강타하고 간, 아니 다시 오고 있을 그 무서운 코로나! 그 역병을 막아줄 행복대박 나라의 최신형 웨어란 말입니다.” 교장선생님이 한 손에 안전모를 든 채 뒤뚱거리며 한 바퀴 돌았다. 그의 애교 섞인 패션쇼에 강당 전체가 폭소를 터뜨렸다. 아이들은 발을 구르며 손뼉을 치고 아빠들은 손 휘파람을 불기까지 했다. 
 “아, 아침마다 이 옷, 저 옷, 입을 옷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그 시간을 고, 공부하고 일하는데 써보세요. AC우주복은 각 학교에서 시작하여 전 국민의 유니폼이 될 겁니다.”
 교장선생님이 유니폼의 ㅍ을 발음할 때 두꺼운 아랫입술에 윗니를 불쑥 내밀자 푸수수 침방울이 튀었다. 
 “위험 수위 경보 발효. 침방울 하강이다!”
 “1.5 m 거리유지!”
 앞자리 코흘리개들이 모두 거리를 두느라 웅성거렸다. 순식간에 마스크를 꺼내 쓴 건 남3호 깔끔쟁이 유비환이었다. 
 “자나 깨나 마스크 지참!”
 유비환이 다시 중얼거렸다.
 “교장 샘은 세, 세균을 무서워하시는데 말씀이지 .”
 드디어 여3호 김지식이 나섰다. 
 “그런데 사실은 세균, 즉 박테리아보다 바이러스가 더 무서운 거 알아?”
 김지식이 세균은 소금물에 죽지만 바이러스는 절대 죽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코로나가 판을 칠 때는 바다수영도 하면 안 된다. 바닷물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죽지 않기 때문이다. 
 김지식 부모님이 딸 이름 하나는 잘 지었다. 김지식은 이름까지 지식으로 장식한  오만한 애다.
 “흠. 말하자면, 그래서 운동장도 무균상태의 유리알 바닥으로 바꾼 거야.”
  옳은 말만 하는 김지식이 얄밉다. 사실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축구장을 뺏긴 것이 제일 억울했다. 나도 지지 않았다.
 “쳇, 그렇다고 우리 놀이터를 없애는 건 어린이 인권침해다.”
  예상처럼 아이들이 내 편이 되어 우우 손뼉을 쳤다. 김지식이 다시 받아쳤다.
 “노는 것도 좋지만 어린이의 안전이 더 중요한 세상이 되었어.”
 난 반박하고 싶지만 대응할 말을 찾지 못해 속이 탔다.
 ‘그래, 너 잘났네요!’
 그때 누군가가 분위기를 눈치 챈 듯 교장선생님 흉내를 냈다.
 “이, 이제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은 미래를 위한 고, 공부 밖에 없어요! 싸, 싸우지들 말고요.”
 그때 여자 교감선생님이 나타났다. 기다렸다는 듯 양 팔을 벌려 올린 채 소리쳤다.
 “우주복을 입으면 남녀노소 차별이 없습니다!”
 교장선생님이 외쳤다.
 “비, 빈부 격차도 없습니다!”
 입학식에 온 엄마, 할머니들이 손뼉을 치고 만세를 불렀다. 어떤 할아버지가 소리쳤다.
 “그러면 전 국민이 지공거사(지하철 공짜) 대상입니까?”
 아이들은 무슨 도사 이야긴가 싶어 귀를 쫑긋,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쨌든 제일 신이 난건 엄마님들이다. 당장 아이들 찌든 옷 빨아대기 끝! 아빠들 와이셔츠 다림질도 해방! 
 교장선생님이 신이 났다.
 “고, 고물이 된 다리미와 세탁기는 모두 학교로 가져오세요. 우, 우주복과 바꿔줍니다. 거기서 나오는 철과 플라스틱을 재생해 우주복의 신소재로 개발하고 있는 위대한 정부의 방침에 모두 협조하여 주십시오.”

 

이마리 작가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 제5회 목포문학상, 제18회 부산가톨릭문학상,  ARKO국제교류지원문학인 선정 등 다수 수상
-장편동화 <빨강양말패셔니스타><코나의여름><구다이코돌이><버니입호주원정대>중 세 권이 연속 세종우수도서로 선정
-신간(2021.2) 청소년소설<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출간
-위안부소녀와 호주원주민소녀 이야기를 다룬 동화 출간예정

삽화 출처 : 이정헌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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