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부터 운동장에서 이벤트가 벌어졌다. 다리미가 산더미처럼 잔뜩 쌓이고, 세탁기 실어오느라 유리알 운동장이 트럭 흙먼지로 가득해졌다. 
 나도 아빠와 함께 세탁기를 싣고 왔다. 차에서 내리며 아빠가 물었다. 
 “세탁기 한 대에 우주복을 세 벌 바꿔줘도 모자란데 겨우 한 벌 준다고요?” 다리미를 든 남자가 말했다.
 “이거나 저거나 똑같은 고물인데 한 벌씩만 받아갑시다.”
 “그래도 그렇지…….”
 항상 마음이 약하고 착한 아빠다.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우리 아빠 말이 맞아요. 우리는 우주복을 세 벌쯤 받아야 해.”
 “우주복 한 벌 만드는데 경비가 얼만데. 행복나라에서 손해 보고 있거든.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 만드는 거니까 세대 당 한 벌씩이 맞지.”
 돌아보니 또 김지식이었다. 김지식은 아빠까지 국회의원인데다 아이들이 추켜 주니 더 잘난 척을 했다. 하지만 그 말이 틀린 말도 아니라 더 따질 수도 없었다. 쳇,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김지식을 흘겨보며 말했다. 
 “김지식, 그건 ‘공평’하지 않아.”
 “넌 공평이라는 단어도 몰라? 공평하게 한 개씩!”
 “바꾸는 물건이 똑같은 사이즈라면 똑같이 한 개씩이 맞아. 그런데 세탁기 사이즈는 다리미의 몇 배쯤 될 거 같나? 그건 공평이 아니지.”
 “그건 그렇고 사이즈가 뭐냐? 순수한 한국말 좀 쓰시지!”
 나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김지식을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었다. 
 “우리는 공평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뚱딴지같이 영어타령이냐?”
 그때 김지식 아빠가 다가왔다. 아빠가 갑자기 다가가더니 고개를 깊게 숙였다.
 “아이고, 이 건강 우주복이 다 의원님 덕분입니다.”
 “건강 우주복을 나라에서 무료로 제공하는데 내가 힘을 좀 쓰기는 했소만.”
 김지식이 자기 아빠와 주먹인사를 했다.
 “아빠, 그래서 모두 한 벌씩만 받아야하는 거지요?”
 국회의원이 배를 내밀며 으스댔다.
 “당근이지. 허허, 우리 지식이는 아빠의 보배요 나라의 보배다.”
 아빠가 뒷걸음질 치며 내 귀에 작게 말했다.
 “이아라, 새우싸움에 고래등 터지겠다. 어서 가자.”
 “흥, 아빠가 고래나 되면 좋게요?”
 “하기야 고래가 대단한 동물이라더라.”
 나는 아빠가 이렇게 후퇴하는 게 딱 질색이었다. 오늘도 김지식 아빠에게 굽실대는 아빠가 못마땅했다. 공부라면 반에서 일등은 나였다. 그런데도 김지식이 항상 일등 같았다. 
 “에이씨 우주복 땜에 망했다!”
 “아니 이아라. 웬 나쁜 말을 쓰고 그래?”
 “아빠는 알지도 못하면서.”
 “이아라, 지는 게 이기는 거야.”
 “쳇, 어떻게 지는 게 이기는 거예요? 이기는 게 이기는 거지!”
 난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갔다. 아빠가 바삐 따라왔다.
 “쯧쯧. 사람이 질 줄도 알아야지. 제 성질을 못 이기니 큰일이야.”
 나는 귀를 막았다. 
 돌아오는 길가 벽보판에 공고문이 붙었다. 
 
 ‘다리미와 세탁기를 숨기는 국민은 엄벌에 처한다.’
  
 ‘쳇, 불가사리도 아닌데 누가 그런 고물을 숨긴다고 난리야?’
 엄벌이란 ‘엄청나게 무서운 벌’이다. 그걸 좀 숨긴다고 설마 그렇게나? 나라에서 하는 일이 점점 무서워진다. 에이씨, 코로나 때문이다.
 지금은 스마트폰 추적으로 모든 사람의 행동을 다 추적할 수 있다. 그러니 거짓말한 사람은 독안에 든 쥐. 추적을 피하려면 지구를 탈출하는 수밖에 없다. 나도 부자들처럼 화성 행 우주선 표를 사봤으면 좋겠다. 와, 지구탈출 대작전이다.
 ‘으윽, 우리 아빠 월급으로는 화성 행 표 근처에도 못 갈걸.’
 집에 가는 내내 나는 풀이 죽었다.
 
 며칠 후 오소리 교장선생님의 소원대로 전교생 무상급식이 실시되었다. 하루 권장 영양소를 학교에서 받아먹는다. 
 
 닭 앞가슴 가루 100 G, 
 곡물 트레일 바 1개,  
 야채 바 1개. 
 김치 플레이크 1봉지
 해독주스 1컵(당근, 토마토, 브로클리, 양상추를 삶아 즙을 낸 것.) 
  
 엄마들은 신이 났다. AC 덕분이라면서. 코로나 만세를 외쳤다. 주말에는 식탁 앞에 ‘식당 휴업’을 내걸고, 학교 급식을 저녁까지 제공하라며 촛불집회를 하던 엄마들이었다.
 “어미들이 해도 너무 한다!”
 지금도 화난 외할머니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참새가 지 새끼 입에 먹이 물어다 넣어주는 거 못 봤나? 어미가 지 새끼 음식 좀 만들어 먹이면 어데 덧나나? 온통 사 먹이고, 배급받아 먹이는 게 뭐 장땡이라고!”
 그러는 외할머니의 감자 수제비 요리는 최고였다. 할머니는 유리창을 꽁꽁 닫아걸고 조심조심 마른멸치 국물을 우렸다. 끓이는 냄새가 새어나갈까 봐 우주복 소재의 커튼까지 꼭꼭 내렸다. 그 커튼은 외부의 간섭은 물론 병균, 바이러스의 침입까지 모조리 막아주었다. 
 할머니는 뚝뚝 떼어 넣은 밀가루반죽이 포르르 끓기 시작하면 애호박과 하지감자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수제비는 쫄깃쫄깃 구수하고 개운했다. 따끈한 국물을 들이키면 콧등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할머니는 내가 사발 바닥을 다 비울 때쯤 숭늉을 내밀었다.
 “손 수, 수제비는 숭늉까지 마셔야 제격인기라.”
 “어휴, 더운데 무슨.”
 나는 어리광을 부리는 척 숭늉을 꿀꺽 들이마셨다. 그건 구수한 옥수수냄새가 났다. 
 요즘은 짭짤한 국물음식은 거의 없어졌다. 심한 냄새를 풍기면 경찰에 신고도 들어갔다. 집밥도 거의 사라져갔다. 내가 좋아하던 수제비, 떡볶이, 잔치국수를 이제는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
 그 당시 외할머니는 가끔씩 바느질이라는 걸 했다. 그건 바늘이라는 뾰족하고 가느다란 쇠막대에 실을 끼워 양말의 구멍을 깁거나, 재봉틀이라는 기계로 옷을 만드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작은 거인의 어깨 같은 재봉틀의 손잡이를 들들 돌렸다. 작은 톱니 속으로 옷감이 빨려 들어가서 뒤쪽으로 옷이 만들어져 나왔다. 그러는 외할머니는 요술쟁이 재봉사였다.
 그때쯤 코로나가 전 세계를 휩쓸고 갔다.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었다. 바이러스에 대처하는 방법을 찾던 사람들이 옛날 옷 만들기를 멈췄다. 마침내 기계로 한 번에 찍어 나오는 우주복을 발명해냈다. 그 신소재는 공기 속에 퍼져있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접촉을 막아주었다.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그때부터 AC우주복이 행복나라 국민복이 되었다.
 삽시간에 바느질 도구나 재봉틀이 박물관으로 밀려났다. 할머니는 힘들여 만든 옷들을 다락방에 꽁꽁 숨겼다. 그러는 할머니 눈에 물 같은 게 반짝였다.
 “뭐니 뭐니 해도 정성스런 옷에는 사람의 혼이 들어 있능겨. 기계로 박아낸 옷은 정이 없어.”
 나는 할머니가 만든 옷이 너무 예쁘고 자랑스러웠다. 집에서는 늘 그걸 입고 놀았다. 엄마 아빠가 퇴근할 시간이면 얼른 숨겼다. 그건 외할머니와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이제는 AC우주복을 입지 않으면 엄청난 벌금을 물어야한다. 행복을 박차는 나쁜 사람이 된다.
 식당 뿐 아니라 거리나 복도에서도 1.5미터 간격 유지, 세 시간 간격으로 손 씻기, 서로 껴안지 않기, 주먹으로 인사하기 등의 잘 짜인 규칙과 질서 속에 살아간다. 
 놀이터와 벤치가 사라진 공원에는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란도 들리지 않는다. 하늘은 푸르고 도로는 깨끗하며 먼지 한 점 없는 공기가 상쾌하다. 
 ‘행복 대박 학교, 행복 대박 어린이!’
 오소리 교장선생님의 구호다. 교장선생님은 전 대통령이 한 말을 그대로 따라 하기를 좋아한다. 우리는 점점 교장선생님의 구호에 길들여져 간다. 
 
이마리 작가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 제5회 목포문학상, 제18회 부산가톨릭문학상,  ARKO국제교류지원문학인 선정 등 다수 수상
-장편동화 <빨강양말패셔니스타><코나의여름><구다이코돌이><버니입호주원정대>중 세 권이 연속 세종우수도서로 선정
-신간(2021.2) 청소년소설<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출간
-위안부소녀와 호주원주민소녀 이야기를 다룬 동화 출간예정

삽화 출처 : 민속소식 中 신예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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