שְׁמָע ישְׂרָאֵל ! (세마아 이스라엘!- 들으라 이스라엘아!)로 시작되는 구약 신명기의 언약 구문에는 두 가지 특성이 있다. 하나는 이 언약을 잘 지켜 순종하면 생명과 복을 누리리라는 것과 또 하나는 이 언약은 여기 있는 너희들 뿐 아니라 장차 태어날 너희의 후손들과도 맺는 언약이라는 특징이 있다. 언약 백성 이스라엘은 늘 이렇게 그들을 인도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억하며 전수하는 특징이 있고, 그 전통은 모세와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도 이어진다. 여호수아 역시 가는 곳마다 기념비를 세웠는데, 후세에 그의 자손들이 물으면 시청각 교육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얼마 전에 3.1절이 지났다. 여기가 한국이 아닌 호주여서 그런지 삼일절이 왔는지 가는지도 모르게 지났다. 하긴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과 광복절이니, 개천절이니 하는 국가적 기념일도 여기서는 무심하게 지나기는 별반 다르지 않으니 삼일절이 그냥 지났다고 해서 문제삼을 일도 아니긴 하다.

본 칼럼이 주로 미래 지향적 성향의 글인데 몇몇 지인들이 국가 기념일이나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독교인의 자세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조언을 따라 옛날에 썼던 글 중의 일부를 다시 다듬어 써 보기로 한다. 
예나 지금이나, 신 불신 간에 인간은 자신의 공적을 널리 자랑하고 싶어하고, 자신의 세대가 겪었던 위대한 경험들을 후손들이 길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다. 물론, 좋은 일과 귀감이 될 만한 일들이라면 당연히 그리 해야 하리라. 여호수아 장군이 요단강을 건넌 후 돌 비석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지난 80년대 한국의 문장가 중의 한 사람인 이규태씨(전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칼럼에 의하면 조선 중후반기에는 마을마다 고을마다 원님의 공적을 칭송하는 비석이 너무 많이 세워졌고, 이에 대한 후유증도 심각했다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개 꼬리 비석’, ‘수렁밭 비석’, ‘뻐꾸기 비목’ 등이 창궐(?)하여 후대에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하였는데, 그래서 영조 임금은 ‘금비령’을 발포하고 최근 30년 이내에 세운 비석은 다 파괴하라고 지시하기까지 했다 한다. 그 중에 ‘개 꼬리 비석’은 고을 원님이 새로 부임할 때 마을 사람들이 미리 그 부임하는 고을 원님의 덕성을 높이 칭송하는 ‘선정비’를 마을 입구에 세우는 것이다. 마치 얻어맞기 전에 미리 꼬리를 흔들어 주인의 비위를 맞추려는 개 꼬리 같은 마음으로 세워두는 공적비인 것이다. ‘수렁밭 비목’이란 그 지방에 암행어사가 감찰한다는 소문이 돌면 지방의 원님은 자신의 선정을 칭송하는 공적비를 세워서 그 암행하는 어사에게 보이고 싶은데, 그게 새로 급조해서 만든 것이면 속이 보이니까 비목을 새겨서는 근처의 미나리꽝 같은 물속에 잠겨 놓았다가 마치 몇 년을 비바람 맞은 비목인 것처럼 위장해서 마을 입구 근처에 몰래 세워놓는 것이 수렁밭 비목이라 한다. 또한 ‘뻐꾸기 비목’은 고을 원님이 역시 마을의 유력자와 결탁해서 세우는 자신의 공적비인데 뻐꾸기는 원래 꾀꼬리의 둥지에 자기 알을 까넣는 그런 얌체같은 새인데, 뻐꾸기 비목이 바로 그렇다는 것이다. 자기가 자기 칭찬을 해서 조정에 그 선정이 알려지도록 하기 위해 고을 유력자의 손을 빌리는 것이 마치 뻐꾸기의 꾀꼬리 둥지 침탈같다는 것이다. 

그런 웃지 못할 일화는 너무나 많다. 예를 들면 어느 고을의 유력자가 愛民善政碑’(애민선정비)를 세우면 며칠 후에 그 비문은 愛緡善丁碑(애민선정비)로 바뀌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한다. 그런데 뒤의 ‘민’자는 백성 ‘민’자가 아니고 ‘돈 꾸러미 민’자이며 ‘정’자도 ‘갈고리 정’인 것이다. 수탈하던 악덕 원님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백성들이(금일송차도/今日送此盜-오늘 도눅님께서 떠나신다)라는 비목을 세워 그 떠나는 원님을 흉보면, 떠나가던 원님은 말에서 내려 (명일래차도/ 明日來此盜-내일 도둑이 다시 올 것이다)라고 다시 고쳐 쓰고 떠났다 한다. 참 한심스런 나으리에, 불쌍한 백성들이다. 

한국이 민주화되었다하고,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진입했으며, 군사력은 7위 정도로 랭크되어있다 한다. 진보나 보수 정권이 서로 정권을 주거니 빼앗거니 하면서 지난 25년여 동안 한국은 IMF의 어려움이나 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재정난 등을 잘 극복하며 신기할 정도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왔다. 특별히 속칭 ‘한류라 하는’ 문화적 영향력은 세계 5위권 안으로 진입한 것 같아 감사하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런 빛나고 있는 조국이 서로 정권을 잡으려는 어리석은 정치 지도자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백성들을 양편으로 갈라놓는 것 같아 안타깝기 그지없고, 그 와중에 ‘공복’으로서의 의무감을 망각하고, 고급 정보로 자신의 배만 불리려는 일부, 물질과 출세에 양심을 팔아버린 공무원들로 인해 마음이 갑갑하다.  

작금의 한국 사회에서 ‘청백리’니 ‘공복’이니 ‘지조’니 하는 단어의 의미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는 말이 실감나고, 전쟁의 폐허에서 시작한 우리 사회가 그렇게 발전하면서, 지키려하고, 나누고, 누리려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하며 기도한다. 

이민자들에게 삼일절은 어떤 느낌으로 남아 있을까? 흔히들 아버지와 아들의 고향이 다른 사람을 우리는 이민자라 부른다. 하지만 고향이 달라도 우리의 정체성은 유지되고 전달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특별히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한 자기 정체성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의 그것도 존중해 주어 함께 어우러져 시너지 효과를 누리는 것이 4차 산업혁명기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과제일 것이다. 우리 사회에 존경할만한 어른이 없다거나, 신뢰할만한 지도자가 부재하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스럽기까지 하지만, 다시, 성경의 비석 세우기와 조선의 비석 세우기의 차이점을 생각하며, 마땅히 지키고 전수해야 할 가치들이 어떤 것인지 생각하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유관순 누나와 선열들을 생각하며 감사함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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