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세상은 요지경 세상>’이란 제목의 글은 5행시도 코미디도 아닌 시사 풍자라고나 할까? 카톡에 날라 들어온 이 글을 여기에 소개하는 이유는 재미 때문이 아니다. 또 글에 언급된 지적을 모두를 받아들여서도 아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는 격이 될지. 이걸 소재로 한국의 인재 발탁의 실상을 한번 더 짚어보고 싶어서다. 이게 고국의 정치와 사회, 그 연장선에 있는 해외 한인사회에도 당연히 심대한 영향을 끼쳐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지만 그 부분은 여기에서 논외다.  높은 연봉과 연구비를 받는 인문학자들이 해야 할 실용적 연구과제지만 그런 리서치가 있을 것 같지 않다.  

<요지경 세상> 
9급 공무원 수험생 만큼의 지식도 없는 김제동이 헌법을 강의하고!/20년간 주부로 지내던 최윤희가 문체부 차관을 하고!/저속한 개그나 하던 김미화가 안산문화재단 대표이사장하고!/통역사하던 강경화가 외무고시 출신들을 지휘하는 외무장관하고!/사시패스도 못한 조국이 법무장관 하고!/하기사! 조국ᆞ추미애가 법무장관 하는 세상인데! 김미화가 못할 것도 없지!/김제동을 헌법재판관에 임명하라!/참 능력 오지게 없는 사람이 대통령 되니 나라가 개판이네!!!

지면상 세 가지다. 
(1) 사법, 행정, 외무 어느 거든 고시합격 하나로 평생 파격적인 인재 대접을 받거나 그걸 당연하게 보는 일반의 시각은 매우 전근대적이다. 어떤 시험이든 시험은 무엇을 테스트(test or measure)하느냐가 관건이다. 이 국가 고시는 과목 당 뭐뭐를 논하라는 출제에 대하여 1시간 내에 해답을 써내야 하는 주관식 필기 시험이다.
이 시험을 몇 년에 걸쳐, 때로는 청춘을 바쳐 준비하는 응시자 치고 해당 지식을 잘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모두 거기서 거기다. 따라서 이 시험의 점수 차이는 제한된 시간 내에 얼마나 빨리 답안을 써내느냐에 있다. 결국 기억력 좋고 펜을 빨리 굴리는 자가 합격하게 되어 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동량재(棟梁材)를 불과 몇 가지 과목에 대한 이와 같은 교과서 지식과 순발력 테스트로 결정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조선조 때의 과거시험과 왜정 때의 고등문관시험을  답습한 건데 이게 얼마나 나라에 누를 끼쳤는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한문 실력 하나를 보는 건 물론이고, 상상력, 자유주의 사상, 인품과 같은 정말 중요한 인적 요소는 도외시한 과거 일본의 등용제도가 말 잘 듣고 튼튼한 행정관료, 기술관료와 군벌 집단을 만든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획일성 때문에 미국을 상대로 무모한 전쟁을 일으킬 때까지 어느 누구 하나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없어 나라가 잿더미가 되는 비극을 맞지 않았는가. 

거수기 장관
(2) 자유민주의 국가에서는 주요 기관과 단체의 의사결정은 합의체를 거쳐 하게 되어있다. 대통령책임제 아래도 15-20명의 장관으로 구성되는 되는 내각(또는 국무회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승만 초대 대통령 시절부터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나 정책에 토를 달 수 있는 장관이 하나라도 있었나? 이건 보수와 진보 또는 좌와 우 어느 성향의 정부 모두 마찬가지였다. 
역대 어느 대통령도 거수기가 아닌 인물을 장관직에 발탁하지 않았다. 이때 가장 우선적인 덕목은 충성심이다. 무슨 불의의 지시에도 마다하지 않는 하수인 말이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이 대통령 시절에는 국무위원 중 다소 할 말을 하는 인물이 더러 있었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의 탁월한 재능으로 칭송을 받던 이런 용인술을 따라  매 정권마다 팔자에 없는 장차관, 국회의원, 기관장을  지낸 사람은 무지기수로 많았다.  
강경화, 최윤희씨의 경력을 나는 자세히 모른다. 그러나 통역사가 어때서? 미군정시절은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도 통역관은 아무나 하는 직업이 아니었다. 그리고 강씨가 통역일 만 했을까. 통역에다가 대학교수를 했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중요하지 않다. 석학으로 알려진 대학교수, 판검사에다가 3선,4선 국회의원을 자랑하는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이른바 중진급 인사가 입각을 하여 소신대로 일하여 나라에 크게 기여한 사례가 있었나. 
그러니 무식하거나 전문성이 떨어져도 말 잘 듣고 때깔 좋으면 충분하다. 정부 정책이 틀렸다고 생각하면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내려 앉는 용기만이라도 있으면 진짜 인재로 쳐주어야 한다. 
장관은 국무위원 말고도 소관 행정부서를 관장하고 수백명 부하를 지휘, 통솔한다. 요즘 한국의 정부는 얼마나 비대해졌는지, 장관 밑에  차관, 제1차관, 2차관, 국장 등 수십 명의 참모를 두고 있으니 장관은 전문성은 없어도 된다. 충성 경쟁을 하는 부하들만 잘 다스리면 되니까.  

(3) 정치를 논하면서 정치사회문화란 말을 빼놓을 수 없다. 정치는 통치자와 정권 홀로가 아니라 피통치자인 국민과 함께 하게 되니 그런 것이다. 국민의 힘이란 이름의 야당도 이미 생겼지만, 정권에 대한 여론지지도에 목을 매는 요즘 정치를 보면 이게 더 뚜렷해졌다. 이 때는 국민 수준을 말하는 국민 행태, 즉 민도가 관건이다. 

지도자 복이 없는 나라를 한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좋은 지도자를 키울 수 있는 민족인가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힘으로 집권한 박 대통령은 그 정통성 없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강한 충성심을 보고 하는 인선이 절대 필요했다. 그런데 선거를 거쳐 정당하게 집권한 다른 정부에서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그 관행은 그대로인 건 왜일까? 이에 대한 해답을 찾자면 역시 정치사회 풍토라고도 불리는 우리의 정치사회문화 속을 깊이 들어다 봐야 한다. 지금의 대학 교수, 법관, 대부분 고위직을 지낸 전문인들은 퇴임 후 먹고 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데 왜 초연한 원로로서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정치판을 배회하는 자가 그리 많은가. 그게 정치사회문화다.  

고국에 대하여 훈수와 비판을 아끼지 않는 해외 한인들도 생각해 볼 수 있기 바란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skim193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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