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잠이 오지 않는다. 갑자기 엄마랑 안전위원회랑 가민 워치에서 벗어나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침대 머리맡으로 팔을 올려 안테나 꼬리에 든 콩알만 한 전지를 빼버린다. 사실 이건 규칙위반이다. 발각나면 엄청 벌금을 물어야한다.
‘흠, 그래도 지구랑 연결이 끊어지는 이 시간이 나는 좋다.’
기지개를 켜며 자유를 누려본다. 힐끗 유리창 밖을 본다. 천장도 벽도 까만 유리창으로 된 이층집이다. 최신형 외부 바이러스 차단주택이다.
“미야옹!”
얼른 창밖을 본다. 외할머니랑 길렀던 그리운 냥이 소리다. 헛것을 본 것 같다. 껴안으면 심장이 콩콩 뛰던, 만지면 보들보들하던, 물컹한 똥에서 퐁퐁 솟아오르던 지리던 똥 냄새. 이제는 모두 잊어버렸다. 더 이상 동물을 키우지 못한다. 
 
어느새 전기가 꺼지고 암흑이다. 행복나라도 나도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현장학습 날이다. 서둘러 AC우주복과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옛날관은 일 년에 한 번씩만 체험학습을 한다. 기와집과 초가집을 통과하니 옛날선조들의 생활이 펼쳐졌다. 전기밥솥에서 보글보글 밥이 끓었다. 집밥 냄새는 고소하면서도 생선 비린내가 났다.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흐르는 물에 야채를 씻고 있었다. 옆에는 노란 속살이 통통한 초록 야채가 수북이 쌓여있다. 
매콤하고 짭조름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아이들은 킁킁거리다 에취, 재채기를 해댔다. 교감선생님이 말했다. 
“저건 배추라는 야채지. 재채기는 고춧가루 때문이야. 우리 조상들은 그걸로 일 년치 김장을 했던 거야.” 
“윽, 김장에서 고린내가 나요!”
누군가가 소리쳤다. 모두 코를 막았다. 내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엄청 맛있거든.”
김지식이 나섰다. 
“그 냄새는 김치에서 나는 젓갈냄새야. 그건 소금에 절인 어린새우나 생선국물이지.”
교감선생님이 거들었다. 
“그래. 옛날에는 할머니들이 저렇게 온종일 음식만 하셨단다. 저 구부러진 허리 좀 봐라. 지금은 정말 좋은 세상이야.”
나는 얼른 옆방으로 들어갔다. 김지식과 함께 있는 것도, 구부러진 허리로 일만 하는 할머니도 싫어서다.
“들들들.”
그런데 그 방에서도 할머니가 쪼그리고 앉아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었다. 옆모습이 외할머니 같아 섬뜩했다.
“할머니, 뭐 하세요?” 
“응, 우리 손자들 옷을 만드는 거야.”
“할머니, 지금은 기계에서 우주복이 찍혀 나와요. 그걸 입어야 바이러스를 예방한다고요.”
할머니가 슬픈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할머니 눈에서 물방울 같은 게 흘러내렸다. 눈에서 물이 흐르는 걸 믿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말똥거리며 할머니를 쳐다보았다.
“나도 한 때 너 만한 손녀가 있었지. 아들이 죽고 가족이 흩어져 이곳 박물관에서 일하게 되었어. 그런데 구경꾼들이 원숭이 보듯 나를 바라본단다.”
할머니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큰 숨이 갑자기 내 가슴에 들어온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 한 쪽이 바늘로 찌르듯 콕콕 쑤셨다. 매운 고춧가루를 뒤집어쓴 것처럼 눈꺼풀이 화끈거렸다.
“아! 할머니!”
나도 모르게 물방울이 내 눈에서도 떨어졌다. 깜짝 놀라 손바닥으로 그걸 받았다. 
“아가야, 너 넌 눈물을 흘릴 줄 아는구나!”
내 손바닥의 눈물을 찍어 먹어보았다. 짭조름했다. 나도 몰래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놀라 속삭였다.
“아가야, 행복나라 국민은 울면 안 돼. 교장선생님이 울고 있는 걸 보면 혼내줄 거야.”
그때 왁자지껄 떠들며 아이들이 다가왔다. 김지식이 앞장선 채 말했다.
“쉿 , 조용히! 여긴 옷 만드느라 먼지 나니까 건강에 해롭지. 빨리 통과하자.”
김지식이 나를 본 순간 소리쳤다. 
“교장선생님, 이아라가 이상해요!”
자기 머리통 위를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려대다 나를 가리켰다. 나는 얼른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내 볼에 반짝이는 물을 본 아이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눈에서 웬 물이 나오는 거야?”
나는 그 애들이 눈물을 모르는 게 더 슬펐다. 가슴이 막히고 답답했다. 김지식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아라, 너 병원에 가봐야겠다.”
“뭐라고?”
“뭐가 뭐긴. 눈병이 생긴 거 아냐?”
“김지식. 너나 잘 하세요.”
“이아라. 나라에서 100% 무료로 치료해주는 행복건강센타를 만들었거든. 울 아빠가 신경을 좀 쓰긴 했지만 흐흐.”
“너나 치료받으세요!”
나는 소리치며 김지식 가방을 잡아챘다. 그리고 흔들기 시작했다. 김지식이 안 뺏기려고 안간힘을 쓰다 밀당(밀고 당기다)에 넘어가고 말았다. 툭, 김지식 가방끈이 끊어졌다. 내 가슴도 철렁 내려앉았다. 김지식이 소리쳤다. 
“야, 내 최신 우주복 방수가방이야. 바이러스 방지용인데. 빨리 물어내!”
그때 교장선생님이 어기적거리며 나타났다. 
“이아라가 제 가방을…….”
“.....”
교장선생님이 말없이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나는 콩벌레처럼 오그라들었다. 
“시, 신형가방이 생각보다 약하구나. 하, 학교가방으로 정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는데  다시 생각해봐야겠군.”
나는 가슴을 펴며 쾌재를 불렀다.
‘꼬시다. 저 따위가 최신형 방수가방이라고?’
교장 선생님이 다시 돌아섰다.
“두, 둘 다 싸우면 똑같이 교칙위반이다!” 
김지식은 계속 씨근덕거렸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박물관 철망에 얼굴을 댄 할머니가 속삭였다. 
“쯧쯧, 친구에게 사과해라! 끈이 생명인데. 끈을 놓치면 나처럼 된다.”
아이들이 몰려왔다. 나는 얼른 철망에서 뒤돌아섰다. 다행히 아이들은 할머니도 나도 본 듯 만 듯 지나쳤다. 역시 할머니를 동물원의 원숭이 보듯 했다. 
나는 기둥 뒤에 남아서 할머니를 훔쳐보았다. 자글거리는 할머니 눈에서 물이 흘러 반짝였다. 돌아선 할머니 등이 파도치듯 흔들렸다. 
현장학습이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외할머니의 재봉틀 보따리로 달려갔다. 할머니가 만들어주었던 옷을 꺼내 안고 볼에 비볐다. 눈앞이 부옇게 흐려왔다. 박물관에서 본 할머니와 외할머니의 얼굴이 자꾸 겹쳐 보였다. 
 
외할머니는 코로나가 한창일 때 병원에 계셨다. 아니 병원에 격리되신 거다. 가족들조차 외할머니 얼굴을 보러갈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는 안전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는 어찌나 코를 풀어대는지 티슈가 한 보따리는 되었다. 물에 사흘쯤 방치된 벌건 왕 딸기가 엄마 코에 걸린 듯했다. 코맹맹이 소리로 ‘병원에서 더 잘 돌봐줄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중얼거리기만 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 엄마는 폭발하고 말았다. 내가 밤에 화장실 가느라 나오니 엄마는  목 놓아 울고 있었다. 다음날 우리 가족은 모른 척 입을 닫았다. 말없이 밥을 먹었다. 엄마 눈치를 보며 발끝으로 조용히 움직였다. 
AC 세계는 당연히 그렇게 될 거라고들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한다고 했다. 그 모든 것이 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다.
‘사람은 늙으면 왜 죽는 걸까?’
일부러 이마에 주름을 지어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눌러보았다. 괜히 코가 맹해졌다. 이런 것을 감정이라고 하나보다. 행복나라에서는 그 용어가 사라진지 오래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슬픔을 못 느끼면 기쁨도 느끼지 못한다.’
자꾸 눈물이 났다. 외할머니를 생각하니 슬퍼서 눈물이 나고, 눈물이 나니 더 슬퍼졌다. 슬픔과 눈물은 닭과 계란 이야기 같았다. 어떤 게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앗! 이런 중요한 순간에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니! 
나는 다시 김지식이랑 가방을 잡아당기며 싸우고 있었다. 
“으드득 툭!”
가방끈 끊어지는 소리가 오랫동안 검은 유리창을 울렸다. 검은 집도 엄마도 학교도 친구도 모든 것이 사라졌다. 나는 암흑 속에 갇혔다. 끈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잡고 올라오려 해도 점점 더 어둠 속으로 빠졌다.
그 속에서 할머니 말이 들려왔다. 무서움과 외로움이 엄습했다.
“끈이 생명이다. 끈이 끊어지면…….”
나는 울부짖었다.
“내일 학교에 가면 가방 끈은 꼭 사과할게요.”
나는 머리맡을 더듬거렸다. 콩알만 한 전지를 손에 꼭 쥐었다. 휴, 이건 지구랑 연결되는 끈이다. 그걸 안테나 꽁지에 집어넣었다. 이제 안심이다. 나는 꿈속에서 더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삐삐삐’
안테나에서 건전지 접속하라는 신호가 계속 울렸다. 벌떡 잠에서 깨자마자 식탁으로 달려갔다. 엄마 아빠는 이미 공장에 나간 것 같았다. 해독주스 1인분만 식탁을 지키고 있었다.
“삐삐삐. 여3호 이아라. 지각이다.”
경고신호가 계속 울렸다. 허겁지겁 우주복을 입고 안테나를 끼웠다. 그리고 학교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에이씨, 오늘따라 AC우주복이 갑옷처럼 무거웠다. 

[중편동화 3회중 3회]
* 이마리 신간 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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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리 작가

-제3회 한우리문학상 대상, 제5회 목포문학상, 제18회 부산가톨릭문학상,  ARKO국제교류지원문학인 선정 등 다수 수상
-장편동화 <빨강양말패셔니스타><코나의여름><구다이코돌이><버니입호주원정대>중 세 권이 연속 세종우수도서로 선정
-신간(2021.2) 청소년소설<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출간
-위안부소녀와 호주원주민소녀 이야기를 다룬 동화 출간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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