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국에서 화장품이 도착했다. 난생 처음 받아 보는 희귀한 선물이라 미소가 저절로 번져 나왔다. 내일 모레면 80 줄을 넘어다 보는 노승에게 보낸 것이니 이 어찌 신문에 내지 않을 수 있으리요. 
10 여 년 전 잠시 휴양차 한국에 머물 때 봉화에 있는 축서사라는 고찰에서 만난 그녀는 내가 호주로 돌아온 뒤에도 무슨 날이 되면 가끔씩 통화나 문자를 주고 받는 그런 사이였다. 서울에서 이런 저런 소규모의 사업을 한다는 얘기를 직간접적으로 듣고 있었는데 최근엔 화장품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며칠 전 좀처럼 없었던 페이스 톡이 왔다. 얼굴이 번질번질 윤기가 흐르고 매끈하게 보였다. 인사 겸 얼굴이 어찌 그렇게 포동포동하게 좋아졌느냐고 물었더니 기다렸다는 듯 장광설(長廣說)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마 작심하고 전화한 듯 화면도 흔들리지 않고 고정된 채로 내 얼굴은 오른쪽 상단에 손톱 크기 정도로 나오고 그이의 모습은 화면 전체를 채웠다. 
주요 내용은 자신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스님 얼굴 흉터도 반 정도는 메워질 수 있는 특효 보톡스 수술 효과를 볼 정도의 바르는 화장품이라 오래 바르게 되면 진짜 기후스님을 잃어 버리게 될까 걱정이 된다는 농담으로 한 시간이 훨씬 넘는 통화를 끝냈다. 
그로부터 10 여 일 후 화장품 한 박스가 도착하게 된 것이다. 열어 보니 화장품 케이스 마다 겉 표면에 굵은 펜으로 사용법이 크게 쓰여져 있었다. ‘ ○1번은 효소 파우더로 손바닥에 비벼서 사용하라 ○2번째 것은 금가루 로션으로 피부 진정 보습 효과가 높고 ○3은 스킨 + 에센스로  리프팅 및 미백 효과가 탁월함이라 했고 ○4는 보톡스 크림으로 살살 펴 바르세요 ○5는 3종 기능성 썬크림으로 미백, 주름 개선, 자외선 차단이라 했고 ○6은 탈모 예방 특허 제품으로 천연 샴푸, 트리트먼트라고 쓰면서 두피도 피부입니다 ’ 라고 적었다. 

글 쓰인 부분을 번호대로 세워 두고 한참을 바라다 보았다. 아마 번호 순서대로 발라야 되는 듯 한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시원찮은 얼굴이라 꾸미기를 아예 포기하고 평생을 크림 조차도 바르지 않아온 입장에서 6 가지를 덕지덕지 바르고 쓰다듬으라고 하니… 특히 반질 머리에 탈모 예방 샴푸까지 뿌리라니 나오려던 미소조차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얼굴이 잘 생겼으면 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다. 불행하게도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 태어나진 이후의 한발 늦은 희망이라 때론 부모를 원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엄격하고 냉정하게 따져보면 그건 자신의 책임이다. 누가 그렇게 태어나라고 떠민 사람이 있는가? 자업자득의 공평한 결과물이며 만고불변의 진리적 소산일 뿐이다. 

수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해운대에 있는 유명한 중국 식당에 초대된 적이 있었다. 그곳 입구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가까이 가서 보니 물이 담긴 대야처럼 생긴 그릇에 손바닥을 문지르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었다. 청동으로 만들어진 그 물건 양쪽 위엔 ㄷ 자 모양의 볼록 나온 부분이 있는데 그곳을 두  손바닥으로 한참을 문지르니 대야 물에서 아주 작은 물방울이 수없이 튀어 올랐다. 그 때에 얼굴을 갖다 대고 그 물방울로 세수를 하고는 닦지 않고 그냥 두게 되면 피부가 매우 예뻐진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양귀비 세수법이며 이 그릇이 양귀비가 썼던 그 세수 대야라고 하였다. 문제는 물방울이 많이 높게 튀어 올라야 만족한 세수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떤 이는 아예 올라 오지도  않고 또 다른 이는 쪼금 올라오다가 끝나는 것이었다. 많이 올라오게 할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기도하는 자세로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고 너무 급하게도 느리게도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이었다. 물이 출렁거리지도 않으면서 열이 잘 전달되어야 많은 물방울이 높이 올라오게 되어 있다. 미남, 미녀가 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많았던지 두개의 손잡이가 반질반질 윤이 나서 방금 닦아 놓은 놋쇠 그릇처럼 번쩍번쩍 빛이 났다. 그 그릇의 이름을 용세안(龍洗顏)이라고 했다. 귀한 사람의 세수 대야라는 뜻이리라. 그 뒤에 그 그릇에 흥미가 있어서 중국과 인연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구할 수 있는 길을 몇몇 사람들에게 부탁을 해 보았는데 구할 수가 없었다. 

봉화에서 지낼 때 어떤 이가 영주에 중국 물품을 전문으로 수입하는 곳이 있다해서 그이와 함께 갔다. 허름한 큰 창고에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구하려는 물품을 자세히 설명했더니 한참 후에 그와 비슷한 것을 갖고 나왔다. 참으로 반가워서 5 개를 몽땅 샀다. 사찰에 오자마자 물을 담아 놓고 두 손바닥으로 문질러 보았다. 갖가지 방법으로 몇 번을 해봐도 물방울은 보이지 않았다. 가짜였다. 아마 철과 구리 등등의 비율이 적당해서 열 전도가 잘 되어야 되는 듯 한데 이것은 두들겨 보니 양철 소리만 땡땡 날 뿐이었다. 

보톡스 크림도, 양귀비 대야도 빌리지 않고 참 미인이 될 수 있는 길은 정녕 없는 것일까? 본인은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그것은 마음씨를 잘 심고 정성을 다해 가꾸는 일이다. 마음의 세력은 온갖 것을 뜻대로 이뤄지게 하는 위대한 에너지이다. 그것을 굳게 믿고 일상에 꾸준하게 실천하면 미남, 미녀의 좋은 기운이 얼굴에서 저절로 배어 나온다.

 잘 익은 마음씨를 심고 때에 따라 물을 주면서 잡초를 제거하고 비료를 잘 주면 그 열매는 속이 차면서 잘 익어간다. 마음씨는 우선은 착해야 되며 그 속에 자비와 사랑의 따뜻한 손길이 스며 있어야 한다. 밝음과 맑음의 마음씨로 서로를 북돋우며 희망과 용기의 떡 잎을 키워 나갈 때 우리 모두는 잘난 사람으로 가없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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