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신은 그 곳에 부재했었을까? 
신화로 떠도는 그 섬에 가기로 했다. 

 
섬입니다. 파인추리 가지는 거친 해풍에 꺾이지 않으려고 몸부림칩니다. 허물어져 버린 지붕, 벽만 덩그러니 남은 옛 감옥은 무너진 신전 같습니다. 옛 감옥의 돌담 틈새를 빠져나온 바람이 제 모자를 날려버리는군요. 허공을 따라가는 저의 긴 시선에 한 마리 새의 실루엣이 보입니다. 이상하지요? 새는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날개를 부자연스럽게 저으며 날아간 새는 ‘화이트제비 갈매기’일까요. 그 새는 파인추리 밑둥치에다 알을 낳는다죠. 가녀린 날개로 거친 해풍과 싸우며 새끼를 부화하는 새를 상상을 하는데, 너의 심장에다 내 둥지를 틀고 싶어라, 라고 외치는 환청이 들렸습니다. 왜……? 선생님! 

제 남자가 모자를 잡으려고 달려갑니다. 그때 물거품 같은 하얀 물체가 햇살을 건드리며 휘우웅 날아오르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고 말았습니다. 그건 하얀 골프 볼이었고, 제 눈알을 맞히고야 말 것 같은 상상에 저는 주춤주춤 뒤로 물러섭니다. 해변을 면해 넓게 펼쳐진 골프장에서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듯, 사람들이 무심하게 볼을 날립니다. 역사의 베일에 숨은 눈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들은 바닷가의 골프장에서 얼마나 평온하고 아늑한 휴식을 즐기고 있는지요!    

우리, 제 남자와 저는 달려갑니다. 묘지의 출입문에는 가이드가 서 있습니다. 일행을 모두 들여보내고 뒤늦은 우리를 기다리는 그는 ‘문을 꼭 닫아주세요’ 라는 팻말을 붙잡고 있습니다. 목책으로 둘러쳐진 바닷가의 묘지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다섯 개의 손가락이 잘린 가이드의 오른손을 보고 말았습니다. 살짝 예순을 넘겼을 것 같은 가이드의 동공은 청회색입니다. 손가락 정도 잘린 것은 인생에 큰 문제가 아니란 표정으로 우직하게 웃고 있네요. 그 때부터 저는 그의 얼굴 대신 손을 쳐다보게 됩니다. 절망의 땅에서, 잔혹하게 살다간 조상의 운명을 자랑스럽고 너그럽게 어루만지고 있는 그의 손을 말입니다. 선고된 숙명을 너끈히 사랑해내는 자의 엄숙하고도 쓸쓸한 그의 표정에 저는 함몰되고 말았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역사의 내용에 저절로 빠져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제 남자가 저의 손을 꼭 잡습니다. 하지만 그의 한 손은 바지주머니에서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지작거립니다. 그 속에 무슨 보물이 있다기보다는 어떤 시간의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덤사이를 걸으며 제 남자와 저는 곧 숙연해졌고, 뜨겁고 축축해진 손을 놓았습니다. 제 남자의 한 손은 여전히 바지주머니에 갇혀 있습니다. 

“이건 교수형을 당해 돌아가신 제 증조할아버지의 묘비입니다.” 
가이드가 자갈돌 같은 몽땅한 손으로 비문이 지워져버린 머릿돌 하나를 가리킵니다. 그것은 해변이나 산기슭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흔한 돌덩이입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비문은 지워진 것이 아니라 애초부터 새겨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그 때 제 남자가 부스럭거리며 바지주머니에서 시간의 비밀을 꺼냈습니다. 체인 줄에 동전 같은 둥근 것이 매달려있네요. 그가 두 손으로 신들에게 바치는 최상의 제물인 양, 경건하게 그것을 높이 받쳐 들었고, 저를 제외한 23명의 일행이 그를 향해 우우 모였습니다.  

“러브 토큰이군요.” 가이드가 손을 내밀며 말합니다. 
“주인이 누구였죠?”
“제 증조할아버지였죠. 쌍둥이 토큰의 다른 한 개는 부자간이었던 고조할아버지께서 목에 걸고 첫 ‘죄수단’에 몸을 실었거든요.”
제 남자가 러브 토큰을 가이드의 손바닥에 넘겨주며 처연한 표정을 짓습니다. 토큰에 눈을 박고서 가이드가 설명합니다. 
“이건 영국에서 ‘뉴사우스웰즈 죄수식민지’로 선단이 출발하기 전에 죄수와 가족들 간에 나누었던 기념물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구의 반대편으로 보내면서 살아서 돌아오길 기원했던 일종의 수호부 같은 것이었죠. 레든 하트(leaden hearts)라고도 불렀던 것은 납빛의 심장을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에 이식한 것과 같은 의미였을 겁니다. 대체로 러브 코인의 표면에는 애정의 메시지나 글이 조각되어 있었고, 그 중에는 날개 돋친 화살이 사랑하는 두 사람의 이름을 관통하는 조각도 있었습니다. 그밖에……,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같은 문구가 가장 많았죠. 쌍둥이를 만들어 한 개씩 소유하기도 했고요.”  

일행의 손과 손을 오가며 돌려보고 있는 러브 토큰이 저에겐 마치 만져서는 안 될 금단처럼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저는 몸을 비비꼬다 해찰하는 눈길을 던져 파도 넘어 풍경을 바라봅니다. 꼭 피를 흘리는 것처럼 보이는 홍토(紅土)의 필립아일랜드에 대해서는 이곳으로 오는 버스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굶주림과 노동 그리고 매질을 견디다 못한 죄수들이 작은 섬으로 탈출을 시도하다 깊고 강악한 물살에 번번이 목숨을 잃었다고 했습니다.   

해풍과 태양은 냄비속의 스튜처럼 제 그림자의 반쪽을 끓여 묘지위에 쏟아 부으려고 합니다. 죽은 자들의 강렬한 기운까지 가세하자 제 그림자가 묘지 깊숙이 녹아들어가 버릴 것 같습니다. 저는 휘청거리다 그만 이름 없는 묘비에 머리를 부딪치며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제 남자는 바지주머니에 러브 토큰을 집어넣느라 제가 넘어진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삼삼오오 흩어져 묘비를 관찰하며 작은 소리로 비명을 읽기도 하고, 호기심 가득한 대화를 나누는 일행들은 제가 자빠져 있는 것을 보고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합니다. 그 순간 제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져서 눈물이 흘렀고, 그런 꼴을 보이지 않으려고 편편한 묘지 위에 엎드렸습니다. 

제 남자가 제 등을 꾹 찔렀습니다. 얼룩진 표정을 숨기려고 저는 잔디를 잡아 뜯으며 일어납니다. 거칠어진 해풍을 의식한 저는 모자를 벗어 겨드랑이에 끼웠습니다. 그리고 전화기를 꺼내 필립아일랜드를 몇 컷 찍으려는데 벨이 울었습니다. 평소보다 몇 백 배 놀랄 수밖에 없었죠. 전화가 되지 않는 곳이라고 믿고 있었는데 벨이 울었으니까요. 어쩌면 저는 고의로 와이파이 카드를 구입하지 않았는지도 모릅니다. 와아파이가 없어도 수신만은 가능하단 것도 모르고 정신을 꾹 꺼놓고 있었으니까요. 아니 잊고 싶었다는 말이 더 정확합니다. 저는 제 남자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소유한 것 같았거든요. 

“메어리! 킁킁이가 먹지도 않고 잠도 안자.” 애완동물 돌봄이 캐롤이었습니다. 
“그럴 리가.” 
“지금 돌아오면 안 될까?” 제 정신이 불타버릴 것 같아 모자를 들고 세차게 부채질을 합니다.  
“겨우 하루가 지났어, 캐롤.” 
“킁킁이가 밤새도록 하울링 목청으로 통곡해……. 꼭 왔으면 좋겠어.” 애써 담담하게 전화를 받으려고 하지만, 피가 거꾸로 몰려 얼굴이 토마토처럼 달아올랐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갈 수가…….” 
“킁킁이가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 
“이곳에 나 혼자 온 것 아니거든.” 
“킁킁이는 오직 너를 기다려.”
“캐롤, 내말 들려? 정말 특별한 여행이란 것 알지?” 저는 단호하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전화기를 든 제 손이 후들후들 떨렸고요. 세수를 한 것처럼 얼굴과 손바닥에서도 땀이 흐릅니다. 결국 전화기를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나쁜 놈들! 킁킁이를 얼마나 괴롭혔으면…….” 저는 전화기가 떨어진 것도 모르고 중얼거립니다. 
“돌아가야겠지?” 
그새 전화기를 주워 들고 서서 결연한 표정으로 묻는 제 남자에게 고개를 끄덕입니다. 제 머릿속에서는 저먼 셰퍼드와 잉글리쉬 불독이 리트리버인 킁킁이를 괴롭히고 있는 장면이 어른거려 숨이 막힙니다. 제 남자가 손을 단단히 잡아줍니다. 그때까지도 제가 심하게 손을 떨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제 남자도 캐롤의 전화 내용을 믿지 않습니다. 그가 킁킁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죠. 그는 두 딸을 가진 한 번 갔다 온 남자이고, 한 달 후면 서른입니다. 이미 마흔을 넘긴 저는 주말이면 그와 그의 두 딸 그리고 킁킁이와 바닷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주로 그와 저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두 딸은 킁킁이와 늑골무늬 모래사장을 녹초가 될 때까지 뛰어 다녔습니다. 킁킁이는 낯가림이 없고 온순하며 붙임성이 좋은 암캐입니다.

제 남자는 검은 머리칼과 갈색 동공의 백인이죠. 서양인의 평균 키와 중간 체격,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표정, 약간 노동자 분위기를 풍기며 구조대원 잡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DNA에 사형수의 염색체가 잠재되어 있으리라곤 누구도 믿지 않을 겁니다. 

킁킁이를 맡기려고 면접을 갔을 때 거칠어 보이던 두 마리의 수캐를 무심하게 지나친 제게 잘못이 있습니다. 제 머릿속엔 오로지 제 남자와 함께 떠나는 일만 꽂혀 있었겠지요. 걱정이 되면서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저 자신을 속였고, 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두 녀석이 교대로 킁킁이의 등에 올라타는 광경을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말입니다. 만족스럽다, 라고 마치 제 고객에게 하듯 말을 뱉었으니까요. 제 남자에게 정신이 홀려서 스스로 최면을 걸었던 자신을 이제야 알겠습니다.  

“괜찮을 거야. 아니, 괜찮지 않을 수도 있어.” 
저는 손을 심하게 떨며 중얼거립니다. 뭔가 일이 잘못되어 간다는 두려움이 점점 고조됩니다. 자신을 달래며 불길한 끈을 잘라보려고 정신의 날을 세워보지만 마음의 문자는 돌아가야 한다고 읽힙니다. 이곳에 온 일을 처음으로 크게 후회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곳까지 어렵게 왔던 여정이 빛이나 소리처럼 보이고 들리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면, 통관검색대에서 와인 두 병을 빼앗기기 전까진 분명 순조로운 여행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른 새벽, 대문 앞에 서서 기차역으로 갈 택시를 기다리면서 올려다 본 하늘엔 별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 별들이 제 운명의 길을 안내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여느 날과 다르게 별이 유별나게 영롱했으니까요. 덩치 큰 승합 택시를 보는 순간 반가움을 참지 못하고, 시작이 좋다고 택시기사에게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하고 말았어요. 그래서였을까요? 기사는 응대를 하지 않더군요. 

세관공무원이 와인을 커다란 통에 던져 넣는데 제 몸 안에서 무엇이 스르륵 빠져 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아무래도 와인 두 병 정도는 들고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한 사람이 저였는지 제 남자였는지 기억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댄 머피에 갔을 때 ‘19인 범죄자’ 라벨이 붙어있는 와인을 발견한 사람은 제 남자였습니다. 와인은 마치 진열장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호들갑스럽게 발견되었죠. 제 혀가 평소 즐겨 마시는 와인이란 신호를 제 손가락에게 전달한 걸까요? 어두운 포도알과 두꺼운 껍질 그리고 씨가 많은 포도로 만든 카버네 소비뇽 두 병을 제 손가락이 알아서 집더군요. 호주 정착 초기 영국에서 건너온 범죄자들의 얼굴이 붙은 라벨의 와인을 잡는 순간, 공연히 흥분이 되더라고요. 그때 제 마음속에서 19인 가운데서 노폭섬에서 수인 생활을 한 얼굴을 꼭 찾아내고 말겠다는 각오가 일어섰고요. 섬에 도착해서 와인부터 한 잔 마시게 되면 섬에 가게 되는 진정한 이유가 숨을 쉬며 맨몸을 보여줄 것 같았거든요. 제 생애 처음으로 뭔가 위대한 것에 생각이 미치게 된 순간이었다고 고백하고 싶어요. 

언젠가 콜린 맥컬로우 소설 『모건의 길』을 흥미진지하게 읽었죠. 모건이란 사내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전 스토리말입니다. 그가 어찌어찌해서 최초 죄수선단에 몸을 싣는 운명이 되었고, 뉴사우스웰즈 죄수식민지에 도착하자마자 곧 새로운 유배지 노폭섬으로 가게 되죠. 뉴사우스웰즈 식민지의 골치 아픈 범죄자들을 골라 유배한 노폭섬은, 몇 천 년 전 폴리네시아족이 인간이 살 땅이 아니어서 떠나간 곳이기도 하다네요. 식물들만 하늘을 찌를 듯 뿌리를 박고 번성한 곳인데, 인간은 뿌리로 영양을 빨아들이며 살 수는 없죠. (계속)  *창고형 주류 판매점.

테리사 리 소설가
-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대상,
- 11회 민초문학상 대상 수상
-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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