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역사 속에 숨은 범죄자들’이란 이벤트에서 제 남자를 처음 만났습니다. 그가 뿌리 찾기의 일환으로 그곳에 참석했던 것은 훗날 알게 되었고요. 그때 저는 ‘벤 홀’이란 부시레인저를 다룬 영화를 본 직후였는데, 주연을 맡았던 잭 매튜와 조안나 도빈의 섹스연기를 보다가 떡실신 될 뻔했답니다. 그때처럼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머니를 잃은 상실의 슬픔을 달래야 할 절박한 심정이었다고 쳐도, 장례를 치른 지 일주일도 안 된 때에, 피비린내를 부르는 영화를 보러갔던 저 자신을 아직도 이할 수 없습니다. 

 그 뒤 어쩌다 보니 이벤트까지 가게 되었고, 그가 저의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저로선 운명적인 일이었죠. 하지만 우리는 아주 느리게 가까워졌습니다. 그래서 기이한 우연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서로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니까요. 서로의 간을 보다니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맹세하건데 나이나 인종 또는 개인의 배경 같은 걸 저울질 하진 않았습니다. 제 남자도 마찬가지였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니까 그를 이벤트에서 만난 바로 다음 날이었죠. 사월이었고, 킁킁이를 모시듯 끌고 해변에 갔을 때였습니다. 그가 두 딸을 한 손에 한 명씩 붙잡고, 정오의 해를 사뿐히 머리에 이고선 저와 거리를 좁혀 오고 있었어요. 작은 기적이 제가 살고 있는 소도시에서 일어난 겁니다. 누가 먼저 작업을 걸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우리는 운명의 뒤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고, 사랑을 맹세하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2시경,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몰아치고 바다가 포효하기 시작했습니다. 해변이 살풍경하게 되어버렸죠. 그의 다급한 목소리를 처음엔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입술을 제 귀에 바짝 대고서 소리를 쳤을 때서야 그의 말을 간신히 알아들을 수 있었고요. 바람 소리가 마치 저주받은 짐승의 울부짖음 같았으니까요. 저는 그의 두 손을 와락 붙들었고,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가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섬으로 그를 보낼 수 없다는 생각에 저는 울며불며 매달리게 되었고요. 눈물이 뜨겁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는 순간이었죠. 

  킁킁이는 어머니의 분신과 같았습니다. 맑은 날이면 등대의 희고 말간 정수리를 입맞춤한 태양이 날아와 동쪽으로 난 선룸의 유리창들을 고루 핥아 주는 주택과 당신의 저축, 연금까지 킁킁이 앞으로 유언해 놓았더군요. 변호사가 유난히 입술에 힘을 주어 한 문장을 발음했었어요. “킁킁이 사후 남은 재산은 동물보호협회에 헌납해야 한다.” 그러니까 저는 하루아침에 킁킁이와 이해관계에 얽히고 말았습니다. 킁킁이는 ‘갑’, 저는 ‘을’이 된 거죠. 

  고백하건데 제 남자를 따라 나섰던 것은 호주역사에 대한 호기심에 불이 붙은 것도 아니었고, 죄수의 나라라는 호주의 뿌리엔 애시 당초 관심도 흥미도 없었습니다. 굳이 밝히자면 제 남자를 따라나선 것일 뿐입니다. 

  다시금 이곳으로 오면서 보았던 광경을 되살려봅니다. 비행기가 착륙을 하려고 플랩을 내리는데 누군가가 제 가슴에 수갑을 채운 것처럼 숨이 꽉 막혔어요. 인간의 운명이란 무엇일까, 하는 의문에 제 심장이 투옥되고 말았죠. 다시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것이란 생각이 번쩍 뇌리를 스쳐지나갔고, 최초로 노폭섬에 발바닥을 딛게 된 죄수들의 심정이 그 순간 제가 느낀 심정과 같았을 거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저는 몇 번에 걸쳐 몸을 파르르 떨었습니다. 하지만 묻고 싶어요, 선생님. 제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해도 좋다는 기분은 어쩌면 제 남자와 비행기에 나란히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포효하는 파도, 절벽을 물어뜯으며 거품을 물고 졸도하는 것 같은 섬 풍광을 기체에서 사선으로 내려다보았습니다. 형용하기 힘든 불가해한 생각 끝에 저는 그만 창문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었습니다. “저 바다가 나 하나쯤 순식간에 삼키고 말거야, 그리곤 낯을 바꾸곤 딴청을 피우겠지?” 저는 중얼거렸습니다. 제가 지나치게 감상적이라고요? 모두가 제 남자 때문입니다. 사랑의 마력에 사로잡혀버린 저의 가난한 영혼 때문입니다. 찰나, 제 가슴을 두 쪽으로 갈라서 저의 순수하고 무구한 사랑을 검증하고 싶었습니다. 

  숙소인 5층 리조트의 창문으로 보이는 서로 묶어놓은 두 척의 보트는, 마치 사랑하는 남녀가 거칠고 불길한 운명 앞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것은 거친 파도로부터 보트를 지키려고 누군가가 고안을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국도로 달려가 지나가는 오토바이를 구걸하듯 얻어 타게 되었습니다. 항공사에 갔지만 목적달성을 못했고요. 추태 작작 부려라. 그깟 개새끼 한 마리를 가지고 호들갑을 떠느냐. 미친 여자인가? 사무실 밖으로 내쫓고 싶군. 네 할아버지가 죽었다고 해도 지금은 항공권을 교환해 줄 수 없는 상황이야. 여직원의 눈이 저를 향해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읽혔어요. 그래서일까요, 불필요한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 두어 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여직원은 나가란 뜻인지 출입문을 손가락으로 겨누며 말하더군요.
  “연락을 드릴게요.”  
  묘지에 돌아왔을 때 폭발적인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가이드와 제 남자 그리고 일행이 원무를 추듯 둥글게 모여서 자아내는 웃음소리입니다. 저는 그 소리에 놀랐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소외감에 얼굴이 후끈 달아오릅니다. 제 남자는 항공권에 대해서 묻지 않고 저는 그것에 대해 침묵합니다. 

  제 남자가 저의 손을 끌며 묘지 사이로 발길을 옮깁니다. 교수형을 당한 죄수들의 무덤에는 조화 한 송이도 나뭇가지를 묶어 만든 십자가 한 개도 없습니다. 굴러다니는 돌을 땅에 박아놓고 죄수의 이름이나 고향 또는 교수형을 당한 날짜를 새겨져놓은 묘비가 곳곳에 흩어져 있네요. 일행은 가이드의 지시를 따라 목책을 빠져나갑니다. 
  목책 밖에는 길게 몸져누운 둔덕이 보입니다. 그곳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거쳐 가는 바람에 죽은 사람의 흔적은 모두 닳아 없어졌지만, 둔덕은 흡사 눈을 숨긴 채 환생할 순간을 침묵하며 기다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숴라 파도여, 솟구치는 파도여, 부숴버려라.”
  바다로부터 들려온 외침이었습니다. 그 소리는 부러진 코인의 단면처럼 거칠었습니다. 저는 화들짝 한 번 놀랐고 그 위악의 외침 틈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소리에 다시 한 번 놀라고 맙니다. 바다의 웅성거림인가 하고 시선을 해변으로 보냈지만 그것은 분명 새의 울음소리였습니다. 날면서도 또 날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새는 바르르 떨며 제 심장을 뚫고 들어올 것처럼 파닥이다, 제가 팔을 휘저으며 새의 환영을 붙잡으려는 바람에 사라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제 남자는 저를 부끄럽게 아니, 혼란에 빠뜨립니다. 그새 그는 둔덕에 무릎을 꿇고 있어요. 타오르는 눈빛으로 무덤을 삼킬 듯이 쪼아보며 그 땅을 파헤치고도 남을 기세입니다. 눈은 제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저는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열어야 했습니다.

  “휴먼 에러, 휴먼 에러. 이곳엔 교수형을 당한 12구의 시신이 묻혔습니다. 그들은 묻히지 못했고 스스로 무덤이 되었죠. 시신 위에 또 다른 시신을 그리고 시신 위에 다시 시신을 포갰고, 시신을 차곡차곡 쌓았습니다. 마치 소금에 절인 생선을 상자에 꼭꼭 눌러 쟁이듯.” 가이드가 오른손으로 가슴을 탕탕 치며 기침을 합니다. 

  “새들이 날아와 시신들의 눈을 파먹고 또 내장을 꺼내 물고 흔들었으며, 더 사나운 새의 날카로운 이빨이 시신의 머리를 쪼개어 골을 빼내서 삼켰습니다. 뼈에 응고된 먹피를 파도가 씻어냈고, 해풍이 뼈들의 갈피갈피를 건조하였으며 거기에 자갈과 모래가 굴러와 소금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한 뼈들을 덮어서 형성된 자연무덤입니다. 이 둔덕은 그 영혼들의 집입니다.” 말하는 가이드의 눈은 이상스러운 광채를 내뿜고 있습니다. 
  
  드디어 제 남자가 러브 토큰을 바지주머니에서 꺼내고 있는 것을 저는 지켜봅니다. 그 순간 그와 함께 잠들고 싶은 욕망이 솟구칩니다. 언제 한번이라도 제 마음을 제가 알 수 있었던가요. 무덤 주변엔 잔디가 폭신한 베드처럼 자라 있어 마치 초록침대 같습니다. 그 위에서 그와 함께 영원히 잠들고 싶습니다. 그와 몸을 꼭 밀착시키고 싶다는 불경스러운 갈망이 왜 하필 무덤가에서, 그것도 제 남자 고조부의 무덤 앞에서 말입니까. 저는 알 수 없는 혼미한 의문에 빠져 허우적댑니다.  

  해풍이 불어와 그의 등과 허리를 쓸어내립니다. 다가가서 그의 등을 꾹 찔러 일어나게 해야 할까요? 가이드와 일행은 오늘의 일정을 끝내고 슬슬 돌아갈 낌새를 보입니다. 제 남자는 앉은 채로 잠든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미동도 없이 마치 꿈꾸듯이 뭐라고 중얼거립니다. 하지만 저는 킁킁이 생각뿐입니다, 선생님, 설마 킁킁이가 죽어버리는 것은 아니겠죠? 견디다 못한 제 가슴에서 뜨거운 불길이 타올라 통닭이라도 삶아 낼 것 같습니다. 

  “오늘은 이만 일행과 함께 돌아가야겠지?” 
  마치 제 마음을 스캔한 것처럼 제 남자가 일어서며 말합니다. 숙소로 돌아온 저는 짐부터 꾸리기 시작했습니다. 항공사에서 언제 전화가 올지 모르니까요. 저는 짐을 꾸리면서 간간히 제 남자를 쳐다봅니다. 그는 손과 머리를 끊임없이 움직이며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오늘따라 그의 제스처는 그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것이 제 힘에 부칠 정돕니다. “한 덩이의 빵을 훔치고 그리고 7년의 형량을 받고 이곳으로 유배된 나의 고조부는 형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갈 날을 하루도 빠짐없이 기도 했을 거야. 쌍둥이 러브 토큰의 다른 한 개는 무덤 속에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어. 할아버지의 목이 매달릴 때도 러브 토큰이……” 뭐 그런 이야기를 밑도 끝도 없이 지껄여 댑니다. 그가 정말 무슨 말을 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말을 쉬지 않고 지껄이는 걸까요? 젖은 솜 같은 무직한 피로가 제 전신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저는 곧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꿈에 킁킁이를 보았습니다. 너무 놀라서 잠이 깨는 바람에 킁킁이가 어떤 모습으로 꿈에 나타났는지 금방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답니다. 
  
  제 남자와 저는 다시 묘지입니다. 오전엔 엘리자베스 여왕이 두 차례나 묵은 적이 있다는 콜린 매컬로 작가의 자택을 방문했었죠. 『가시나무새』 작가 말예요. 작가의 친구인 화가로부터 결혼선물로 받은 여자의 불두덩 그림을 보는데 작가의 묘지가 궁금해졌습니다. 얼추 80호짜리나 될 듯 보이는 화폭에 여자의 검은 불두덩만을 스케치 하듯 달랑 그려놓은 것이 어떻게 예술적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작가의 묘비가 보이지 않습니다. 누군가 해찰이라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이지도 않는 묘지를 억지로 찾지 말라는 무언의 핀잔이 담긴 제 남자의 옆얼굴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할 수 없어요. 

 맙소사, 두 시간을 넘게 헤맨 끝에 찾은 작가의 묘비 앞에서 김이 빠집니다. 그녀의 묘비를 수십 번 지나치고도 알아보지 못한 겁니다. 망령되이 제 머릿속에서 상상한 묘비를 헛되이 찾아 헤맸던 겁니다. 그런 묘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는데 말이죠. 인간은 아는 것만큼 행동하고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죠? 화려한 묘비라뇨. 작가의 묘비는 소박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간략한 비문을 읽으면서 가볍게 목을 숙였습니다. 주변의 크고 우람한 묘비와 요란한 명구들이 저를 노려보더군요.

  허탈해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가의 묘비에 머리를 찧을 듯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창자에서 신물이 올라옵니다. 이틀 동안 우리는 물밖에 먹은 것이 없습니다. 제 남자는 손깍지를 끼어 가슴에 올린 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저는 킁킁이 걱정에 먹지도 마시지도 잠을 잘 수도 없습니다. 숨쉬기도 벅찹니다. 저는 제 남자 옆에 앉아서 몸을 외로 꼬다가 천가방 속에서 책을 꺼냈습니다. 작가의 저택에서 구입한 역사책의 12쪽을 펼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네요. 

  ‘매뉴얼도 없는 빈손으로 노폭섬에 첫발을 디딘 죄수 15명과 책임자 7명은 끝내 신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섬의 사정은 하루가 다르게 추락했다. 캡틴 쿡, 그가 발견한 천국처럼 보였던 섬에서 굶주림에 지친 죄수들이 자주 졸도했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임무를 맡은 간수들까지 점점 타락을 일삼고 퇴폐하기 시작했다. 설상가상으로 첫 해부터 흉년이 닥쳤고 섬의 상황은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처참해졌다. (계속)

 

테리사 리 소설가
-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소설대상,
- 11회 민초문학상 대상 수상
- 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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