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스코 성인

돈 보스코 성인(St. Don(John) Bosco: 1815-1888)은 청소년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살레시오 수도원을 창설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일하고, 즐겁게 놀며, 그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이 그의 교육원리입니다. 그들이 기쁘고 재미있게 일을 할 때, 죄의식과 불신 그리고 미움과 질투라는 죄를 지을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랍니다. 

이 원리를 자신에게도 적용해보세요. 좋은 일과 기쁜 놀이에 집중할 때, 좋지 않은 생각을 하는 시간을 갖지 않게 됩니다.‘꿀 한 수레주고 형제적 충고를 하라'는 돈 보스코의 말은 아무리 크고 넓은 사랑이라도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상대방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라는 뜻이지요.

어느 동네에 노친께서 자식들에게 말씀하였습니다. 
"내가 나이 들어 음식을 흘리면 너희가 나를 이해해 달라! 너희도 어렸을 때 그랬단다. 혹시 같은 말을 계속하고, 또 자주 넘어지더라도, 이해해주고 일으켜다오! 너희들도 그랬단다.” 
상대방을 사랑하는 길은 자신을 재발견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상대방을 위한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지요. 
누구나 약점, 아킬레스건을 가지고 삽니다. 살면서 그걸 발견하고 끄집어내지 않는 것이 지혜롭게 사는 길이기도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가끔 그걸 끄집어 당기기도 합니다. 그럴 때 그것을 회피하지 말고, 알아차리고 그런 자신을 바라보세요. 자아가 약할수록 약점을 잊고 회피하는 것이 지혜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바라보고 알아 가면 견디어내는 힘이 생깁니다. 생각의 합리화, 인내로 포장한 억압은 오히려 견디어내는 힘을 약하게 할 뿐입니다. 죄의식과 불안이 약점을 건드리고 그것이 나를 또 아프게 합니다. 하지만 불안과 죄의식 속에 있지는 말아야 합니다. 내 안의 불안과 타자의 불신에서 자신을 불러내면 됩니다. 완벽하지 않지만 이처럼 먼저 자신을 바라보고 알아갈 때, 다른 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여기 호주인들 곧 서양인들은 사회에 나가면 대우받고 친절함을 받지만, 우리 아시아인, 한국인들은 차별 아닌 차별을 받고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우리끼리 더욱 존중하고 돕고 아껴주어야 합니다. 내가 몸이 아플 때 어디가 아픈지, 아프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나에게 어떤 음식이 맞는지, 내가 뭐를 해야 에너지를 받는지, 내 몸의 중심을 잡기 어려워 몰라서 골반도 틀어지고, 바른 길을 잘 못 찾는데, 우리끼리 약점을 잡고, 설교하고, 비평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코로나의 시기가 참으로 자신을 만나고 상대를 존중해주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참으로 기도합니다. 

사람 없는 문학 없고, 인생이 빠진 소설이 없는 것처럼 사람은 타인 없이 자기를 스스로 올바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기와 타인을 이해하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을 만나 보세요. 말씀의 뜻을 알게 되는 것과 그 은혜 속에 사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내가 말씀을 장악하고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이끌려 말씀을 배우고 따라가 보세요. 말씀에 참여할 때, 그것을 닮는 온전한 존재가 됩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아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오히려 하느님이 나와 똑같은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인격이 실현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됩니다.

결국 하느님과 인간은 각각의 존엄성을 동일하게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다양한 모습들을‘틀린 것’으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그냥 다를 뿐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다름이 자신을 위한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서로 배우며 살아가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We are learning one another.

곽승룡 비오 신부 (시드니대교구 한인성당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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