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무슨 내용을 읽었는지 기억이 희미합니다. 아마도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아요.
  ‘시드니로부터 죄수들이 계속 노폭섬으로 이송되어 왔다. 그로 인해서 섬의 식량사정은 더 나빠질 수밖에 없었다. 섬에 서식하는 가마우지는 물론이고 도마뱀과 나비 심지어는 큰 지네까지 잡아먹었지만 그들의 굶주림은 해결되지 않았다. 거기다 마실 물조차 없었다.'  

   하지만 저는 생각했습니다. 왜 그들이 신을 외쳐 부르지 않았는지요. 저는 답답했습니다. 제 심정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하며 처연하게 잠든 제 남자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입니다. 제 남자가 잠결에 몸을 뒤척이더니 팔을 뻗어 돛처럼 휘젓습니다. 허공에서 아무것도 잡지 못한 그가 이윽고 잔디를 잡아 뜯으며 몸을 일으킵니다. 그렇지 않아도 마른 편인 그의 얼굴은 며칠 사이에 마치 변장을 한 것처럼 낯설게 느껴집니다. 그가 잠이 덜 깬 탓인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설마하니 죽기야 하겠어?”
  그가 악령의 주술에서 풀려난 인간처럼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뱉은 겁니다. 미처 그의 말귀를 알아듣지 못했고, 무엇보다 역사책의 영향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저는 말했습니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부처와 길레이 추기경이 왜 노폭섬을 각각 두 번씩이나 다녀갔다고 생각해?”
  저의 난데없는 질문에 그는 입을 다물어버립니다. 우리는 계속 침묵을 지키며, 목책을 에둘러 둔덕을 향해 알 수 없는 힘에 끌려가듯 걷습니다. 제 남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그가 의뭉스러운 속내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겠죠. 인간은 자신을 속이는 동물이거든요. 저 또한, 얼마나 더 제 자신을 속이며 인생을 끌고 가게 될는지요? 

 석양이 비선형으로 우리의 등을 내려 쏘고 있었지만, 우리는 무겁게 침묵합니다. 골프장을 가로질러 오느라 구두에 달라붙은 티끌을 탁탁 털어내

며 묘지 주변을 배회합니다. 무엇에 짓눌렸거나 스스로를 짓누르며 긴장하고 있는 제 남자의 옆모습을 힐끔거리며 저는 바닥에 주저앉았고, 그리고 누워버렸습니다. 제 남자도 제 곁에 쓰러지듯 누웠죠. 그때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항공사에서 걸려온 전화라 믿었죠. 천가방에서 너무 성급하게 미끄러운 전화기를 꺼내려다 손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전화의 액정이 땅바닥을 긁으며 수신이 끊어졌고요. 와이파이를 구입하지 않은 것을 아프게 후회하고 있을 때, 그때 다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킁킁이가 무섭게 사나워졌어. 불독과 새퍼드를 물려고 해. 나도 가까이 갈 수 없고.” 캐롤이었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알겠다는 한 마디를 던지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날아서라도 가겠어.” 저는 아랫입술을 깨물며 낮은 탁음으로 외쳤습니다. 
  “진정해” 제 남자가 뱉은 말입니다. 
  “난 진정하고 있어.”
  “죽진 않을 거야.” 
  “죽지 않는다는 약속은 어디에도 없어.”

  제 남자가 최대한 큰 보폭으로 걷고 있는데도, 제 눈엔 그가 한 발짝을 내디딜 때마다 불만이 차곡차곡 쌓입니다. 구르듯이 땅을 디디며 걷는 저의 발걸음에도 두려움과 후회가 짓밟히고요. 시가지에 도착해서 제가 항공사 건물을 향해 서둘러 길을 뛰어 건너는데, 제 남자는 엉뚱하게도 길을 건너지 않고 가게 안으로 숨어버렸습니다. 토요일 오후라 항공사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저는 항공사 앞 콘크리트 바닥에 망연자실 앉아서, 제 남자가 비닐봉지를 흔들며 길을 재게 건너는 것을 지켜봅니다. 

  제 남자는 이곳을 떠나기 전, 닭을 푹 삶아서 파티를 할 생각이었다고 천연덕스럽게 봉지 안을 보여주었어요. 이틀을 꼬박 굶은 탓으로 닭이라도 푹 삶아서 먹어야 먼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답니다. 항공사 문이 닫힌 상황에도 실망하지 않는 제 남자의 옆얼굴을 보며 저는 입을 앙다물어야 했습니다. 

  섬에는 웃어넘기기 힘든 풍경이 펼쳐집니다. 어미닭이 앙증맞은 병아리들을 데리고 가족소풍을 나와서 숨은그림찾기 놀이를 하는 것처럼, 카페의 마당을 구석구석 파헤칩니다. 길에도 숲에도 닭들이 방랑자처럼 돌아다니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어요. 선홍색 볏에다, 그 낭만의 기억들을 소담스럽게 담고 있을 그들 중의 한 마리가, 거짓말처럼 죽어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겁니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 현관 키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키를 보관했던 그가 호주머니를 샅샅이 뒤질 동안 저는 닭이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들어 엎었습니다. 쇼핑을 한 것이라곤 닭밖에 없었거든요. 아직도 따끈따끈하게 느껴질 것 같은 닭의 심장, 허파, 간, 콩팥, 모래집, 똥집, 위 같은 내장들이 주룩 땅바닥에 쏟아졌습니다. 저는 왼손으로 닭의 목을 비틀어 잡고, 오른손을 몸통 깊숙이 넣고 샅샅이 휘저었습니다. 텅 빈 닭의 몸 안에서 뼈가 손끝에 느껴질 때마다, 섬뜩섬뜩한 쾌감을 느끼며 고개를 들었을 때, 제 남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도 없이 어디로 자꾸만 사라지는 걸까요?
  잠시 후 그가 헐레벌떡 나타나 처음으로 이곳에 온 것을 후회를 하는 표정으로 소리쳤습니다.   

  “여기가 이상한 앨리스의 나라인가? 리셉션이 굳게 닫혔어.” 
  제 남자는 이미 수십 번 털어낸 바짓가랑이를 다시 털어내고, 흔들었던 재킷을 벗어 다시 휘젓습니다. 뒤진 호주머니를 다시 뒤지고, 뒤집었던 바지주머니를 또 까뒤집는데 쨍그랑 비명을 지르며 러브 토큰이 떨어졌습니다. 저는 토큰을 재빠르게 집어 들었습니다. 러브 토큰에 숨겨져 있을 키의 암호를 풀어야 했거든요. 고백하건데 그 순간만은 진실로 간절하게 신의 존재를 믿고 그 존재에게 빌고, 그 존재를 향해 앙모할 수 있을 것 같아졌고요. 저는 우그러진 길바닥의 동전처럼 미간을 구긴 채 러브토큰의 내용을 읽었습니다. 

  “내가 죽을 때까지, 나는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설령 죽어서 내 숨이 멈춘 후에도…… 그리고 영원히!” 저는 토큰을 뒤집어 다른 면을 다급하게 훑었습니다. 한 개의 하트에 두 화살촉이 박혀있고 그 아래는 죄수선단이 항해를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 선단의 꽁무니를 무연히 따라가는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의 조각이 보입니다. 날짜가 조각되어 있었지만 그것을 저는 암호로 보긴 힘들었습니다. 키를 찾을 수 있는 어떤 암호나 단서를 발견하지 못한 러브 토큰을 제 남자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제 손바닥에 들러붙은 파삭한 지푸라기를 털어냈죠.  

  우리는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가파른 계단을 내러갑니다. 다리에 힘이 빠져 여러 번 멈춰 서서 난간을 붙잡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어요. 주차장에 도착한 저는 키를 찾느라 자동차 안과 밖을 몇 번에 걸쳐 확인했으며, 결국 거북이처럼 배를 까뒤집고서 등으로 콘크리트바닥을 닦으며 차 아래까지 기어들어갔습니다. 제 남자는 제가 미처 자동차 밑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시동을 걸었고요. 

  엑셀레이터를 밟아, 우리는 왔던 길을 되짚어 속력을 높였습니다. 항공사 앞의 콘크리트바닥에 한 바퀴 눈알을 굴리기도 했지만, 곧장 길을 가로질러 닭을 잡아 주었던 가게로 달렸습니다. 섬을 돌아다니던 닭의 목에 데바칼을 내리쳐 도살했을 토실한 닭을 제 남자의 손에 들려주었던 가게는, 이미 문을 닫은 상태였습니다. 

  허탈해진 저는 유리문에 비친 하늘을 뚫어져라 쳐다봅니다. 하늘엔 몇 가닥 구름이 엉켜 있을 뿐인데, 왜 제 마음속에선 폭풍이 불어 닥칠 것 같은 격정이 느껴졌을까요. 어제 그리고 오늘 새가 날아갔던 같은 하늘이기 때문이겠죠. 

  제 남자와 저는 내처 바닷가의 묘지에 도착했죠. 목책을 단단하게 지키고 있는 맹꽁이열쇠를 부러지기 직전까지 번갈아 힘껏 비틀어 보다 발길을 돌렸습니다. 목책을 에둘러 무덤에 닿은 제 남자는, 딱딱하게 굳은 어깨의 그림자를 길게 세우고, 긴장한 눈길로 초록색 잔디에서 조그만 키를 찾는 일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두어 시간 전 우리가 걸었었고, 앉았으며, 잠시 누웠던 잔디 위를 말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눈을 휘둥그레 뜨고 주변을 맴돌며 키를 찾았지만 모두가 헛된 희망일 뿐입니다. 

  키는 어디로 간 것일까요, 선생님. 저는 피빛으로 물들고 있는 묘지를 향해, 석류가 알을 터뜨릴 때처럼 붉고 투명한 제스처를 취해 보다가, 그만 강한 빛에 눈두덩을 석류꼭지처럼 오므리며 털썩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에너지가 바닥나 입술을 움직이기도 힘듭니다. 제 남자는 입술의 남을 기운을 모아 간신히 지껄입니다.   

 “반란이 일어난 결정적인 동기는 밥그릇과 숟가락, 포커까지 빼앗고 음식을 극도로 줄였기 때문이었다고 해. 죄수들은 아침을 굶은 채 채찍을 맞으며 형벌노역을 하러 가는 일이 허다했고. 그 날도 파인추리를 자르는 도끼를 들고 있는 무리에게 심한 욕설과 채찍이 날아왔다지. 순식간에 반란자 하나가 달려가 욕설을 퍼붓는 간수의 목을 쳤고. 마치 파인추리를 자르듯. 한번 용솟음친 울분은 무서운 기세로 폭발했고, 그날 도끼에 목이 잘린 간수들은 고문과 태형을 일삼던 자들이었다고 했어. 피의 맛을 본 도끼는 광란을 추며 세 명의 간수들 목을 연달아 잘랐다지.” 

  “그때 반란자들의 몸은 오직 뼈와 껍질밖에 없었고, 굶주린 그들의 눈은 짐승의 눈처럼 번득였다고 했어. 결국 관리들에게 붙들려 살인극은 중단되었고.” 

 “그 중 몇몇은 형벌노역을 하러 가던 무고한 죄수들이었던 거지. 거기에 고조부가 끼어있었던 거고. 그 사건현장에 존재했다는 이유 하나로 그들도 반란자들과 함께 교수형을 당한 거라고 했어. 길로이 추기경과 엘리자베스 여왕 부처가 각각 두 번씩 노폭섬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일도……” 저는 그 많은 설명에도 침묵을 지키며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다가 한 마디 톡 뱉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까 신을 불러오기 위해 바쳐지는 제물처럼 12명의 목을 달아버린 것이군.” 
 그렇습니다, 선생님. 저는 제 남자와 생각이 많이 달랐습니다. 서로 다른 색채와 결 그리고 감정을 가진 인간들이 섬에서 일으켰던 ‘휴먼 에러’는 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고, 의사결정이었으며, 무엇보다 예측불가능 했었다는, ‘역사의 변명’ 모두가 신의 부재가 불러온 일이었던 겁니다.  

  더 이상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제 남자는 입을 닫고, 생명 빠져나간 짐승처럼 웅크리고 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저의 상상은 멈출 줄 모르고 무규칙하게 계속 뻗어나갑니다. 그들의 목을 매다는 순간, 신을 대행했던 초인의 바다는 얼마나 애통하게 울부짖었을까요. 신에게 제의를 드리기 위해 그때 바다가 연주하던 레퀴엠의 선율이 제 귀에 환청처럼 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보이네요, 무덤에서 불려나온 영혼이 새의 몸속에 깃드는 환영 말입니다. 정말 보았어요. 그런데 그 영혼은 도대체 누구의 것일까요? 

  해는 지고, 몸은 물먹은 솜처럼 지치고 피곤했으며, 제 창자가 허기를 호소했습니다. 멀리서 누가 쭉 지켜봤다면 바닷가의 묘지를 무대삼아 한 쌍의 남녀가 무언극을 하고 있는 것 같았을 겁니다. 곧 뭉개어진 어둠이 묘지 위에 내려앉았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남은 기운을 다해 제 남자의 따뜻한 등을 문질러 주는 일일 뿐입니다. 눈이 감겨 왔어요.

  분명 묘지였지만 초록색 침대 위에 제 남자와 저는 다정하게 누워있었어요. 제 남자의 손길이 제 육체에 닿는 순간 바다는 교란이 일어났습니다. 해저의 생명이 소스라쳐 깨어 일어나자 파동이 몸을 풀며 파장이 가팔라졌습니다. 고조된 파고는 원초의 에너지를 생성하느라 격동했습니다. 팽팽히 당겨진 활시위처럼 두 육체가 휘어지다 펴지고, 밀물과 썰물이 극한점에 닿는 순간 화살은 명중했습니다. 화살이 제 심장에 박히는 그 충격으로 저는 미지의 세계에 닿았습니다. 한 실루엣이 제 자궁에 둥지를 틀고 들어왔어요. 피를 흘리며 날아가던 화이트제비 갈매기였습니다.  

  꿈인지 현실인지 새의 울음소리처럼 전화벨이 울었습니다. 저는 절반쯤 뜬 눈으로 전화기의 액정을 밀어야 했습니다. 
  “은주, 큰일 났어. 킁킁이가!” 
  “킁킁이가 죽었다고?”
  “불독과 세퍼트를…… 줄을 끊고, 세퍼트와 불독을 물어놓고선 달아났어.” 

테리사 리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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