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국경봉쇄.. 제도 혁신 기회 낭비 말아야”
“사업주후원 기준 연봉 8만불 상향” 제안 
모리슨 정부, 폐지 건의한 ‘투자비자’ 유지

방향 전환이 요구되는 호주 기술이민비자 제도

 

'닫힌 국경'은 호주 이민 시장을 예측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쉽게, 자주 바뀌는 이민 정책 탓에 원래부터 변동성이 심했던 분야였다. 뜻밖의 코로나-19  사태로 연방 정부가 국경을 봉쇄하자 변수가 더 늘었다. 현 정부가 이민 정책에 박하다는 평가도 있다. 이민에서 가장 비중이 큰 기술 이민의 비자 발급 할당량 자체를 줄였다. 임시 비자가 있어도 사실상 입국이 안 된다.

2019-20년 호주 인구 증가에서 이민을 통해 19만4천400명이 늘었다.  

그만큼, 이민자가 호주 사회에 기여했던 사회•경제적 공백이 커졌다. 연방 정부에 가중되는 국경 개방 압력도 거세졌다. 국경이 재개방됐을 때, 기술 이민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기대와 우려가 공존하는 이유다.

호주 입국 후 구직 어려움을 겪었던 셈 사힌(Cem Sahin)은 이제 고용주로부터 스폰서 이민 제안을 받고 있다

이런 배경에서 싱크탱크 그라탄연구소(Grattan Institute)가 최근 발표한 ‘팬데믹 이후 기술 이민 재검토’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보고서는 호주의 ‘장기적 경제 잠재력’을 높이고 ‘팬데믹 이후 경제 회복’을 견인하려면 기술 이민 제도를 정비하여 이를 확대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번 보고서의 골자는 "더 젊고, 더 숙련되고, 더 수익이 높은 이민자를 선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까다로운 과정을 통과한 숙련직 이민들이 "평생 받을 공공서비스 및 혜택보다 국가에 더 많은 세금을 내기 때문"이다. 고숙련∙고소득의 젊은 이민자 중심의 기술 이민으로 선회하면 매년 수십억 달러의 세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위해 그라탄연구소는 '독립기술이민 비자'와 '사업주후원 비자' 확대, '사업혁신∙투자 비자' 폐지, '글로벌인재 비자' 검토 및 축소를 제안했다. 하지만 스콧 모리슨 정부는 독립기술이민 비자, 사업주후원 비자의 할당은 줄였고, 사업혁신∙투자 비자와 글로벌인재 비자의 할당은 늘렸다. 그라탄연구소가 "호주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고 있다"고 비난한 이유다.

이번 보고서의 저자 중 한 명인 브렌던 코츠(Brendan Coats) 연구원은  "신규 영주권자의 유입 변화는 노동 시장에서 높은 소득을 얻는 젊은 기술자가 아니라 영어 소통 능력이 떨어지는 나이 많은 사람을 선발하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라탄 연구소 보고서 공동 저자인 브렌던 코츠 연구원

사업혁신∙투자 비자 신청자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이들은 연령대가 높고, 영어 실력과 소득은 낮은 편이다. 그라탄연구소는 일어나지 않을 사업에 자금을 대거나 호주 지역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통찰력을 제공하는 투자자는 거의 없다고 설명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글로벌인재 비자는 가치가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 2018-19년에 비자 1000개 할당으로 시작한 이 비자 카테고리는 2020-21년에 1만 1000개로 빠르게 확대됐다. 그라탄연구소는 보고서에 "이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위한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프로그램을 축소하고 평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그라탄연구소는 고용주후원 비자와 독립기술이민 비자 수를 늘리되, 부족직업군 중심의 기술 이민을 소득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렌던 코츠는 중∙장기전략기술직업군(MLTSL)은 일부 고숙련∙고임금 직종을 제외하고 다수의 저숙련∙저임금 직종이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술의 가치가 부족직업군이 아니라 임금만으로 평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라탄연구소는 "연봉이 정규직 중간소득인 8만 달러 이상의 모든 직업군의 근로자”는 고용주 후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지금 이 비자 신청에 요구되는 최저 소득 한도 연봉5만 3900달러보다 훨씬 높은 기준이다. 

애프터페이 정책팀장 데이미안 카사브기는 “애프터페이, 아틀라시안, 칸바 등 호주 기반의 IT기업들은 글로벌 인재를 필요로 하는데 코로나 억제에 성공한 호주는 인재 유치에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점수제로 운영되는 독립기술이민 비자는 ‘젊고 숙련된 근로자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점수를 재산정할 필요가 있다. 가령, 지방에서 공부하면 가산점을 주는 방식은 그라탄연구소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코츠는 주정부 후원기술이민 비자와 지방 기술이민 비자가 임금 차원에서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하지만 호주이민법무사협회의 칼라 윌셔 회장은 호주 내 100만 명의 임시 이주자를 영주 비자 후보로 살펴볼 가치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지금은 영주권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임시 이주와 영구 이민 간 연결을 구축하여 사람들이 (호주에) 평생 기여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지 검토를 시작할 때"라고 말했다.

현재 연방 의회는 알렉스 호크 이민장관의 요청으로 이민 공동상임위원회에서 기술 이민 프로그램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라탄연구소는 "코로나-19 관련 국경 폐쇄는 호주에 기술 이민을 재검토할 유일한 기회다. 이를  낭비하지 말자"고 조언했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