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영국을 방문 중이던 약관 23세 호주 아가씨 ‘도로시 멕켈라(Dorothea Mackellar)’가 조국 호주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과 자부심을 담아 두고두고 호주인들에게 사랑받고 애송되는 소위 ‘호주 찬가’같은  시 ‘My Country(나의 조국)를 지었다. 다섯 연으로 되어 있어 많은 호주의 공립학교에서 가르쳐지는 이 시는 이곳에서 공교육을 받지 못한 이민 1세대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시일 수 있다. 

그래도 호주 생활을 좀 하신 분들은 호주의 국가 ‘Advance Australia Fair’대신에 한국의 ‘아리랑’ 같은 의미의 노래로 호주의 저항정신을 담은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 Banjo Paterson,1895)’라는 노래 정도는 아는데, 이 마이 컨트리 라는 시는 약간 생소할 것이라 여기며 소개한다. 둘째 연이 너. 무나 유명하여 거기서부터 드문 드문 몇 구절을 나눌까 한다. (필요한 부분만 영문 병기, 이하 필자 역)

I love a sunburnt country/나는 햇볕에 그을린 나라를 사랑하고
광활한 평원의 대지와
구불한 산맥들과
가뭄과 홍수 조차도 사랑한다.
나는 이 땅의 아득한 지평선을 사랑하고,
이 나라의 보석 같은 바다와
조국의 아름다움과 조국이 주는 무서움조차, 그리고
나를 위해 드넓게 펼쳐진 갈색의 땅을 사랑한다
……
내 마음 한 가운데 있는 나의 조국!
황금 무지개의 땅,
홍수와 산불과 기근,
이 나라는 우리에게 이 세 가지를 주지요.
……
비록 지구에는 찬란한 곳이 많이 있겠지만,
Wherever I may die/내가 어느 곳에서 생을 마칠지라도,
I know to what brown country/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 갈색의 땅으로
My homing thoughts will fly/내 마음의 생각들이 날아오를 거예요

진한 여운을 남기며 끝나는 이 시는 필자가 알고 있는 한 호주에서 교육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랑처럼 여기는 그들의 조국에 대한 ‘시’로 여겨지고 있다. 그렇다. 호주라는 땅은 정말 광대하고, 심지어 장엄하기까지 하며 자랑할만한 많은 보물같은 지하자원을 가진 ‘찬란한 땅’임이 분명한 것 같다. 

그에 비해 우리가 나고 자랐던 조국 ‘대한민국’은 어떤 느낌으로 우리에게 남아 기억되고 있을까? 우리의 조국 한반도에는 끝없이 펼쳐지는 아득한 지평선을 보기도 힘들고, ‘울룰루(에어즈 록)’같은 거대한 바위 산(?)같은, 웅대한 그런 지형도 거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나고 자란 조국 대한민국도 호주에 못지않은 위대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나라가 아닌가! 그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단지 크고, 웅장해야만 아름다운 것이 아닐진대, 춘원 이광수, 벽초 홍명희와 함께 일제하 조선의 3대 천재라 불리웠던 육당 최남선이 지은 ‘국토 예찬인 ‘삼춘순례’라는 글은 조국의 산하에 대한 또 다른 느낌을 준다. 

“… 진실로 남다른 애모와 탄미와 무한한 궁금스러움을 이 산하 대지에 가지는 것입니다. 자갯돌 하나와 마른 나무 한 밑동도 말할 수 없는 감격과 흥미와 또 연상을 자아냅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윤동주의 연희전문 스승이었던 이양하 교수가 지은 ‘신록 예찬’ 이라는 문장 중에도 이런 섬세한 아름다움이 노래되고 있지요. 
“…그러나 이러한 때―푸른 하늘과 찬란한 태양이 있고 황홀한 신록이 모든 산 모든 언덕을 덮는 이 때 기쁨의 속삭임이 하늘과 땅, 나무와 나무, 풀잎과 풀잎 사이에 은밀히 수수되고, 그들의 기쁨의 노래가 금시에라도 우렁차게 터져 나와 산과 들을 혼들 듯한 이러한 때를 당하면, 나는 곁에 비록 친한 동무가 있고 그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다 할지라도 이러한 자연에 곁눈을 팔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의 기쁨의 노래에 귀를 기울이지 아니할 수 없게 된다….” 

그렇다! 조국 대한민국의 아름다움은 웅장함이 주는 압도적인 위세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동네 개구장이들도 능히 오를만한 동구 밖의 작은 언덕과 사시사철 졸졸거리며 작은 자갯돌들을 돌아 흐르는 실개천 벗삼아 흐드러진 버드나무 가지잎에 서리어진 정겨운 아름다움일 것이다. 
국력이 모자라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며 읊었던 김상현의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 보자 한강수야…”하는 애달픈 서러움이 묻어 있는 조국의 산하는 민중을 압도하는 고압적 아름다움이 아니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는 저잣거리 서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생동하는 삶의 아름다움이리라! 
조국의 산하는 사계가 선명하여 철철이 아름다운 옷으로 우리 눈을 즐겁게 하고, 온갖 먹거리와 삶의 터전을 제공하여 우리 삶을 이롭게 할 뿐 아니라, 연인들에게 사랑의 밀월터를 제공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에게는 금강의 일만이천봉이 주는 기이함과 풍성한 상상력도 제공하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수려한 아름다움의 땅이다. 이제는 어린 시절의 물장구치던 시골 정겨운 모습을 잃어가는 조국을 떠나 이곳, 찬란한 아름다움의 땅, 인공이 자연을 넘지 않도록 잘 조경된 삼대 미항인 시드니에 살면서도 내내 떠나온 조국의 흙냄새를 그리워하는 것은 못난 필자만의 회한일까? 

찬란한 아름다움의 땅 호주나 수려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의 조국이나 우리가 기대어 서 있는 이 땅들이 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니 어느 곳에서나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추사 김정희의 호 중에 ‘불계공졸(不計工拙)’이란 호가 있는데, 명인이 지은 작품은 잘되고 못됨을 가리지 않는다는 뜻이라 했다. 
그래, 명인 중의 명인이신 하나님께서 지으신 땅이니 그 어딘들 다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을 터! 우리가 서 있는 시간들을 주님께서 부탁하신 그 사랑함으로 반응하며 살수만 있다면 좋겠다. 

김호남목사(PhD, USyd)
시드니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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