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일 전 유튜브 공간에서 어느 인사가 차기 한국의 지도자는 누구여야 하느냐를 놓고 열띤 연설을 했다. 다가오는  제20대 (한국) 대통령 선거를 바라보며 그 자리에 나설 후보감을 놓고 온 나라가 들떠있으니 매우 적절한 연설 제목이다.
 
그러나 나는 이에 대하여 생각이 좀 달라 여기에 써보고자 한다. 한국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하여 유난히 지도자론이 많다는 사실이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잘 못 되어 가는 정치와 사회의 책임은 지도자(leaders)에게만 돌리고 거기에서 추종자(followers)는 빼는 어찌 보면 오래 쌓인 ‘노예 근성’ 때문이 아닌가 싶다.
 
왕실정치나 피식민지 시절이라면 모르겠다. 3권 분립, 막강한 언론, 그 많은 종합 대학, 시민 단체와 자율 단체, 더 넓게는 국민이 주인이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통치자 혼자 사회를 개혁하거나 개선해나갈 수는 없다.
 
정치인, 관리, 법관, 언론인이 잘 못한다면 그들에게 가세하는 가족, 친척, 친지와 주변 세력들이 많으니 그런 것 아닌가. 그들은 국민이고 팔로워이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의 지도자론은 지도자 개인의 덕목과 자질만이 아니라 국민과의 관계 속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믿는다. 지도자론과 함께 국민행태론이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다. 한국에서 지도자의 덕목으로 크게 치는 것 하나가 지조다. 역사적으로 지도자들이 얼마나 지조를 헌신짝처럼 버렸으면 그렇게 됐을까 생각해본다. 그런데 과거 그들이 그렇게 된 상황을 잘 분석해 본다면 거기에서 국민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사에서 지조를 살려 원칙을 고수하려고 애쓴 지도자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오래 가지 못했다면 그런 소신있는 지도자를 아껴주고 받들어주는 사람들이 없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 아닌가. 지조와 원칙을 고집하는 사람을 리더쉽이 없다고, 주변머리가 없다고, 돈 잘 안 쓴다고 하나 둘씩 모두 떠나가버린다면 그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관운이란 무엇인가
 
5.16 쿠데타로 집권한 불법, 부당한 군사 정부는 대학 교수들의 참여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했었다. 나의 한 대학 은사는 청렴한 학자라 정부로부터 달콤한 유혹을 받았지만 처음 대단히 비협조적이었다. 그리고 나를 만날 때마다 ‘에이, 망할 놈들’하고 욕을 했었다.
 
그런데 동료와 후진들이 하나 둘씩 장관, 국회의원, 무슨 총재 등 고위직으로 등용되고, 주변 사람들이 그들을 관운(官運)이 좋다고 부러워하며 모두 한 자리 하려고 동분서주하니 더 견디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결국 공화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고 대사도 지냈다. 국민 대다수가 독재정권에 영합하는 것을 출세가 아니라 변절이라고 지탄하는 사회 분위기라면 그렇게 됐을까? 그런 상황은 5.18후 신군부 정권과 그 뒤를 이은 정권은 물론, 거기에서 벗어났다는 현 정권 아래에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 

반세기도 더 지난 지금도 친일파 논쟁이 한창이다. 그런데 이들이 친일 부역을 하게 된 과정도 그랬을 것 같다. 처음에는 주저하다가 하나 둘씩 총독부에 의하여 고관대작으로 등용되고 그것이 세인으로부터 수치가 아니고 관운이며 명예로 인정되니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과거 어느 정권이든 예외 없이  서정쇄신의 이름으로  비리를 척결하고 사회기강을 바로 세우려는 여러 프로그램을 내놓았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요즘 대선을 앞두고 패거리끼리 라이벌 후보와 그 진영의 대어급 불의와 비리를 폭로하는 걸 보면 아연실질색을 하게 된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지 여기에 앉아 판단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어떤 지도자를 내세우든 국민이 지금과 같다면 나라는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해외 한인의 대부분은 국적상 한국인이 아니다. 그러나 서방 지역의 한인들은 행태와 정신면에서 고국 사회의 영향권에서 산다. 이들도 우리 민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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