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재 2년 연기’ 불구.. “상태 개선 장담 못해” 

대보초 상태 조사 활동

세계 최대의 산호초 지대 '그레이트 배리어 리프'(Great Barrier Reef, 이하 대보초)가 세계위험유산 등재를 기어코 피했다.

유엔 산하기구인 유네스코(UNESCO) 세계유산위원회가 지난 23일 지구 온난화의 영향으로 수차례의 대규모 산호 집단 폐사 사태를 겪은 호주의 대보초(GBR)를 위험유산에 넣어야한다는 6월 권고안 초안을 채택하지 않았다.

세계유산위원회의 움직임을 '정치화'한 호주 정부의 외교 승리가 돋보인다. 문제의 권고안이 '과학이 아닌 정치의 결과'라고 주장하던 수잔 리(Sussan Ley) 환경장관은 대보초의 위험유산 등재를 막기 위해 유럽을 방문해 로비 활동을 펼쳤다. 호주의 주요 환경단체들이 권고안 초안 지지에 나섰지만 결국 채택되지 않았다.

지난 달, 스콧 모리슨 총리와 수잔 리 환경장관은 “유네스코 권고의 배후에 중국이 있다”고 주장했다. 21개국 대표로 구성된 세계유산회의 위원장을 중국이 맡고 있다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리 환경장관이 '기후변화'라는 세계적인 문제와 결부된 이 사안을 비과학적 정치 갈등으로 전환하는데 일단은 성공했다. 호주는 대보초의 위험 유산 지정을 적어도 2년 연기했다. 대보초를 통해 수익을 내는 관광업계의 아우성도 잠시 잠재웠다.

수잔 리 연방 환경장관(왼쪽)과 백화현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호주 대보초

그린피스 호주•태평양지부의 데이비드 리터(David Ritter) 대표는 "이 결과는 근래 역사상 최고로 자기 이익만 챙기는(cynical) 로비 노력의 승리였다"고 비꼬았다.

호주의 발등에 떨어진 불도 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대보초가 현재 위험유산 등재 기준에 부합한다는 것을 '과학적 차원'에서는 인정했다. 위원회는 대보초를 위험유산으로 지정하지 않는 대신, 호주에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세계유산위원회의 공동 감독 파견단을 유치하고, 2022년 2월까지 최신 보고서를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

하지만 존 C. 데이(Jon C. Day),  스콧 F. 헤런(Scott F. Heron), 테리 휴즈(Terry Hughes) 등 제임스쿡대의 세 전문가들은 "(대보초가) 향후 12개월 내에 개선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대보초는 2015년에도 세계위험유산으로 분류되는 일을 가까스로 모면했었다. ABC는 "이것은 이번 유네스코 기준에 부합하는 여부와 관계없이, 대보초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호주해양보존협회(AMCS), 그린피스 호주・태평양지부, 세계자연기금 호주지부(WWF-Australia), 호주보존재단(ACF) 등 호주 10개 환경단체는 "대보초 일부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기후 변화로 인한 실존적인 위험을 과소평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대보초에서는 2016년, 2017년, 2020년에 대규모 백화현상(coral bleaching)이 발생했다. 백화현상은 지구온난화로 인해 수온이 평년 이상으로 상승한 해양에서 산호초가 하얗게 탈색되는 현상이다. 회복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수온이 오른 채로 지속되면 산호 집단 폐사의 원인이 된다.

호주해양과학연구소(Australian Institute of Marine Science)는 이번 달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2020-21년 동안 대보초가 회복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대형 열대성 사이클론이나 백화현상의 요인이 되는 지속적인 폭염이 없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대보초의 회복세가 오래가지 않으리라 전망했다. 예년에 비해 늘어난 산호충 덮개(coral cover)가 태풍과 백화현상에 취약한 산호로 주로 형성됐기 때문이다.

호주해양과학연구소의 폴 하디스티(Paul Hardisty) 대표는 "앞으로 대보초에 대한 가장 큰 위험 요소는 기후변화"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를  상수로 이해한다면, 대보초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고 심각하다. 이것은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환경과 과학의 문제다.

연방정부의 대보초해양공원감독청(Great Barrier Reef Marine Park Authority)은 "대보초의 장기적 미래를 개선하는 절호의 기회는 지금"이라고 선언한다.

불명예스럽게도 호주의 환경정책은 국제사회와 환경전문가들 사이에서 낙제점을 받고 있다. 일각에서는 호주가 지구 기온 상승을 섭씨 1.5도를 넘지 않게 하자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역행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지구가 1.5도만 더 더워져도 세계 산호의 70~90%가 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호주, 중국, 러시아, 브라질 등의 에너지∙환경 정책을 전 세계가 받아들이면 지구 기온이 5도나 상승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한다.

유네스코는 호주의 대보초 복원 계획이 파리협약에 부합하는 기후 대책을 포함해야 한다고 밝혔다. 더불어, 세계유산위원회의 위원국 대표들은 기후 변화로 대보초가 다른 세계문화유산에도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했다.

전 세계가 기후 대응이라는 공통의 과제를 지고 각자의 임무를 분담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지, 호주 정부의 '기후 야망'(climate ambition)은 국제 정치에서 정치적 승리를 거머쥐려 했던 그 열망만큼은 들끓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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