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 하는 여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하늘을 뚫고 나온 칼날 같은 빛줄기에 눈이 벨 것 같았다. 새벽 어스름이 벗겨지고 태양이 떠오른 것이었다. 나는 반쯤 눈을 감았다. 꼬랑지머리가 벌떡 일어선 건 그때였다. 날카로운 빛이 그에게로 확 쏠렸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나는 한 동안 그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여자에게 신경을 뺏긴 탓이었을까. 강한 빛을 받은 꼬랑지머리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보였다.  
  꼬랑지머리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립스틱을 바르던 여자가 동작을 멈추고 그를 향해 콤팩트를 집어던졌다. 꼬랑지머리는 다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여자와 꼬랑지머리가 한동안 옥신각신 다투기 시작했다. 지독한 슬랭을 쏟아놓는 그의 발음을 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의 표정조차 안 보이는 상태에서 여자가 지껄이는 말만 듣고서는 그들의 관계를 알 길이 막막했다. 
 도대체 꼬랑지머리는 여자의 누구인가? 재형과 나처럼 딱 1개월을 동거한 ‘엑스(x)’? 벌떡 일어나 물어보고 싶은 심정을 억눌렀다. 
  “후처의 출생에 웃을 땐 벌건 잇몸이 한 뼘이나 드러나는…….” 재형의 어머니 목소리에선 독기마저 느껴졌었다. 그녀가 우리의 극적 결말을 내리던 날을 떠올리다 나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고 말았다. 경주에서 아들의 졸업식에 참석하러 올라온 그녀에게 나는 고스란히 낭패를 당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불치병에 가까운 그녀의 독특한 기질을, 아들은 알고 있었겠지만 나는 생판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슬그머니 일어선 꼬랑지머리가 원시부족이 춤을 추는 것처럼 건들건들, 머리를 이상한 각도로 젖힌 채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나는 그가 다음 역에서 하차하리라 직감했다. 기차는 정차하려고 속도를 줄였다. 대놓고 꼬랑지머리의 면전에서 무기수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질퍽하게 화장을 고치는…… 둘의 관계가 점점 더 궁금해졌다. 하긴 이 세상에 하지 못할 사랑은 없는 법이다. 이루지 못한 사랑이 있을 뿐. 
  꼬랑지머리가 떠난 것을 확인한 여자는 머리를 숙이고 콤팩트를 찾기 시작했다. 한 파트는 여자의 좌석 밑에 한 파트는 꼬랑지머리가 앉았던 좌석 밑에 뒹굴고 있었다. 콤팩트를 집어든 여자가 뚜껑과 몸체를 끼워 맞춰보려고 애를 썼다. 포기한 여자는 주술에 걸린 듯 갈증과도 같은 집념으로 물속의 자신을 들여다보는 나르키소스처럼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
  재형이 깨어나 몸을 스트레칭 하느라 그의 손이 내 옆구리의 경락을 건드렸다. 흠칫 놀라는 순간 기차가 네 번째 터널에 머리를 집어넣었다. 그가 질문을 쏟으며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감옥의 러브레터, 아니 먼저 알렉산더 그린이란 사형집행인부터 확인해야겠는데, 칼이라고 했어 도끼라고 했어? 대체 호주 사람들 발음이 왜 이래.” 질문을 많이 하는 것은 그의 직업병인 모양이다.  
  “완전 술 중독자였데. 감옥의 담벼락에 접목한 코티지에서 살았는데, 술독에 빠져,  수천 명의 관중이 교수형 장면을 즐기려고 모여 있는데, 목사나 신부가 사형수에게 마지막 명복을 빌기도 전에 밧줄을 내려버리곤 했다지. 밧줄을 내릴 순간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늦는 바람에 사형수의 목이 제대로 안 잘리면, 술에 떡이 된 몸으로 비칠비칠 달려 내려가 칼로 사형수의 목을 단칼에 잘랐다고 해. 사무라이처럼.” 내 목을 내가 자르는 액션을 보여주었다. 
  “알렉산더란 사내가 셰익스피어 비극에나 등장하는 인물 같지?” 나는 덧붙였다.
  “사형집행인의 부주의로 교수대에서 살아나는 행운을 얻었다면 살려줘야 하는 것 아냐?” 재형이 기자답게 자신이 원하는 질문만 푸고 있다. 
  “그건 나도 몰라. 해부용으로 팔려가다 살아난 사형수나, 무덤에서 살아난 사형수 이야기는 들었지만, 사형집행인 부주의로 살아난 사형수에 관련해선 나도 아는 게 없네 뭐.” 나는 내가 아는 만큼 설명해 주려고 애를 썼다.  
  “호주문학의 아버지란 칭호로 불리는 헨리 로슨은 왜 세 번씩이나 수감 되었지?” 재형이 머리를 갸웃거린다.
  “그야 그의 부인이 끌어다 넣은 것이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술에 미친 시인과 사형집행인이라……, 뭔가 상통하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렇지?” 나는 한 번 웃겨보겠다고 기껏 농담을 뱉었지만, 그것도 농담이냐는 식으로 그는 웃지 않는다. 하긴 그는 원래 잘 웃지 않는 남자였다. 바보와 시인의 차이는 종이 한 장밖에 안 된다는 말을 접고 대신 조금 고상한 말을 골라 덧붙였다. 
  “맑은 정신으론 독자의 영혼을 송두리째 꿈틀거리게 할 정도의 시를 쓸 수 없었나 보지 뭐, 헨리 로슨은.” 
  “러브레트 말인데, 직접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가 계속해서 내 말은 씹어버리고 자판을 두드리며 자기 질문만 한다.
  “오리지널 러브레터는, 지금은 아트스쿨이 된 그곳 감옥의 도서관에 전시되어 있어. 오늘은 토요일이어서 개관을 하지 않았고.” 나도 기자가 묻는 질문에만 대답하기로 작심했다.  
  한 동안 이야기는 별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야기 할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옛 감옥에서 굶주림을 견디다 죽어간 죄수들의 빈 위장에 감염된 것처럼 허기가 몰려왔다. 
  “래밍턴이라고 들어봤어?” 내가 재형에게 질문했다.  
  “응.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안톤 쉬거가 사용하던 산탄총이잖아.”     나는 백팩에서 종이봉투 속 래밍턴을 꺼내 재형에게 한 개를 한 개는 입에 물었다.    “말하자면 이게 호주전통 케이크야, 래밍턴. 조리법을 발명한 사람의 신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크하하하”그가 웃었다. 드디어 그를 웃겼다. 그가 하도 재미있어 하는 바람에 나는 
 레밍턴과 래밍턴에 대해 언급하지 못했다.  
  재형은 래밍턴을 우적우적 씹으며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기차가 일곱 개의 터널을 관통하기 전에 ‘감옥의 사랑’에 대한 기사를 끝낼 기세다. 나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며 아침에 일어난 사건을 생각한다. 여자는 무사할까? 기차가 몸을 흔들며 다섯 번째 터널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 나 또한 일곱 개의 터널을 관통하기 전에 아침에 보았던 사건의 기억을 지워버리고 싶다.    
*
  기차가 막 역에 정차했을 때 망막에 사물과 사람들이 헛돌아 보이기 시작했다. 햇빛을 맞받으며 출구 쪽으로 꼬랑지 머리가 나가고 몇 분 후의 일이었다. 그가 객차와 플랫폼 사이에 떨어지는 것을 내 눈이 보았다. 강렬한 아침 태양빛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반쯤 눈을 감은 상태로, 그 광경을 보고 귀신을 본 것처럼 놀랐다. 잠시 시간이 정지하는 것 같았다. 자동으로 놀라는 감정을 막을 수 없었다. 벌떡 일어난 나는 밖으로 뛰어나가려고 했지만 밀고 들어오는 승객들 때문에 한 발도 떼지 못하고 꼼짝없이 자리에 주저앉았다. 꼬랑지머리가 휘청하더니 기차와 플랫폼 사이에 푹 꼬꾸라졌다고 믿었다.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손바닥만 세차게 문질러댔다. 
  기차가 출발 했다. 꼬랑지머리가 다쳤다면 기차가 정상으로 출발하진 못할 터였다. 그때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들이켰다. 헛것을 보았나? 나는 내가 이상했다. 설마하니 내가 꼬랑지머리가 기차에 빠지길 바라진 않았을 텐데. 하지만 내가 잘 못 본 것이든, 혹은 꼬랑지머리가 빠르게 중심을 잡고 플랫폼으로 뛰어올랐든, 잘 된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여자를 떠난 것은 정말 잘 한 일이었다. 둘이 마주 앉아 있어봤자 계속 사랑싸움만 하게 될 것 같았다. 기차는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102살 중환자라고요!” 빽빽한 승객들의 밀림에서 한 여성의 외침이 들렸다. 
  “누구도 이 여인을 건드려선 안 돼! 감옥에 면회 가는 몸이야.” 꼬랑지머리였다. 나는 청신경을 곤두세웠다. 조금 전 사투리를 뒤섞어 지껄이던 그 자 특유의 발음이 틀림없었다. 믿을 수 없었다. 그가 객실에…… 한 번 떠났으면 됐지, 왜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돌아 왔는가. 
  “누구와도 함께 앉을 수 없어. 누나는…… 종신형의 애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라고.”    꼬랑지가 하이에나처럼 소리쳤다. 누나? 그럼 그렇지,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세상엔 누나라고 부르는 애인도 흔하디흔하다. 
  “애인? 그 알량한 몸이 소중하다면 출구의 대기구역, 아니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대차공간에라도 나가 무기수인지 뭔지를 오매불망 그리워하면 되잖아!” 여자 승객이 쌀쌀맞게 소리쳤다.   
  “몇 번을 말해야 해. 안된다고 했어.” 꼬랑지머리가 딩고처럼 으르렁댔다.  
  사람들이 일어선 것 그때였다. 검지를 곧추세워 흔들어대며 여자와 꼬랑지를 향해 메뚜기처럼 떼를 지어 몰려갔다. 덤빌 테면 덤비라는 식으로 앉아 있는 여자의 얼굴이 승객들의 다리 사이로 삐뚤삐뚤 보였다. 
  여자는 꼼짝하지 않고 자리에 앉아서, 거울만 깨져라 들여다보고 있었다. 여자에게 그들의 존재는 그리 중요하게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어떤 특별한 목표에 정신이 꽂혀버려, 외부적인 모든 일들이 상대적으로 그 힘을 잃어버린 의식상태라고나 할까.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한 번 뱉어냈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다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날마다 일어나는 크고 작은 사건에 물든 관성 탓이야. 스스로를 달랬지만 한 번 떠들린 패닉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저 여자와 남자를 끌어내야 한다.”누군가 날카롭게 외쳤다. 몇몇 승객이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여자와 꼬랑지머리는 눈도 깜짝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들은 정말 여자를 밖으로 끌어내릴까. 멀리 희미하게 다음 정차할 역의 입간판이 보였다. 하차하려는 승객들은 가방을 들고 힘겹게 출구로 빠져나가면서도 여자를 흘끔거리는 것만은 놓치지 않았다.  
  “경찰이다.” 여러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경찰이 얼굴을 내밀자 순식간에 객차의 분위기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빼빼마른 승객이 자신이 신고를 했다며 밀림을 헤치고 나가 경찰에게 접근했다. 그가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그 동안의 일을 설명했다. 남자와 여자 경찰은 빼빼마른 승객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여자와 꼬랑지머리 앞에 버티고 섰다. 그때서야 여자와 꼬랑지머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빠른 동작으로 여자와 꼬랑지머리가 앉았던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조금 전 102살 환자에게 자리를 양보한 승객까지 포함해서 모두 다섯 명이었다. 
  꼬랑지머리와 여자를 앞세우고 출구로 나가는 경찰의 뒷모습을 승객들은 복잡한 눈길로 지켜보았다. 경찰은 다음 역에서 꼬랑지머리와 여자를 하차시킬 모양이었다. 오래 되어 낡고 허름한 기차는 심하게 몸체를 덜컹거리며 달리고 있었다. 
  기차의 엔진 소리가 몸서리치는 금속성을 질렀다. 바퀴의 마찰음이 고막을 찢으며 급정거 했다. 불시착이었다. 금속이 타는 냄새가 진동하고 연기가 솟구쳤다. 앉아 있던 승객들이 파도처럼 일어섰다. 
  꼬랑지머리의 절규가 들렸다. 사람이 다쳤으니 가만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라는 경찰의 경고가 승객들을 제압했다. 기차 아래 여자가 떨어졌다고 누군가 입가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어떻게? 굳게 문을 닫고 달리는 기차에서 어떻게? 그렇다면 차량과 차량의 연결 고리 사이의 아득한 틈새에?
  잠시 후 하늘 저 편에서 헬리콥터소리가 가늘게 들려왔다. 나는 숨을 죽이고 째깍째깍 시간의 흐름을 가늠했다. 플랫폼에 내려앉은 헬리콥터의 날개 회전하는 소리가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나는 구조대가 여자를 들것에 태우는 광경을 손바닥으로 햇볕을 가리고 쳐다보았다. 승객들도 손가락을 바퀴벌레 다리처럼 차창에 붙이고 쳐다보고 있었다. 하늘색 담요를 덮고 누워 있는 여자에게 인공호흡을 시도하진 않았다. 생명에 지장이 없거나, 또는 아예 숨을 멈췄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밀폐된 차창으로 바라볼 순 있었지만,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곧이어 헬리콥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동시에 기차도 출발했다. 낡은 기차의  엔진 소리는 한 동안 헬리콥터 날개소리와 뒤섞였다. 기차는 시드니를 향해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자가 떠난 객차의 ‘조용한 칸’은 죽음처럼 고즈넉했다. 나는 충격 받은 감각기관들을 추스르며 잠시 완벽한 침묵 속에 앉아 있었다. 아담을 만나러 가던 이브가 떠난 객차에서 나는 한자도 읽을 수 없었다. (끝)
 
테리사 리 소설가 
15회 재외동포 문학상 대상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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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비단뱀 쿠니야의 비밀> <어제 오늘 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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