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역사가 언제나 그래왔듯이, 이 변화와 도전의 시대에 능동적이고 슬기롭게 대처하는 자는 살아 남을 것이고, 불평하며 이 괴로움이 어서 지나가기만을 바란다든지, 혹은 자기 계발을 게을리 한 그룹은 역사의 뒤안길로 도태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전망해 본다. 아무도 밝은 내일을 전망할 수 없는 불투명한 불안이 우리를 엄습해 오는 정황 속에서 손자병법의 한 구절과 다윗의 굴곡 많았던 삶의 여정이 오버랩되어 솟아 나는 한 줄기 교훈을 한호일보 독자들과 나누려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손자병법’의 ‘군쟁편’에 나오는 말이다. 유식한 척 한자 풀이를 해 봐야 별 소득이 없을 터이니 ‘우직지계’의 뜻을 간단히 설명하겠다. 군사가 대치하며 서로 승리하려고 으르렁 거릴 때의 승리의 비결 중 하나는 먼 길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이 직진하여 나아가는 것보다 더 유리할 수 있다는 전법이다. 적군이 오판하도록 군사를 먼 길로 돌아가게 하는 우회 전략이 어떤 때에는 직진 돌격하여 공격하는 것보다 더 효율적일 때가 있다는 것이다.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 갈 줄도 알아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잡담하는 목사님들의 모임에서 했더니 수학을 잘 하는 친구가 그런 이야기를 ‘사이클로이드의 곡선’이란 수식으로 설명해서 놀라기도 했다. “두 점을 잇는 가장 짧은 길은 직선이다”라는 논리는 2차원, 즉 평면일 때는 맞는 논리인데, 그것이 3차원, 4차원일 때에는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직선 주로가 오히려 곡선주로보다 더 늦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사이클로이드의 곡선’인데, 첨부하는 사진 한 장으로 뜻이 전달 될런지 모르겠다.
  
좌우간 인생을 살다보면 항상 지름길, 짧은 길, 직진하는 것만이 성공과 승리를 담보하는 비결이 아님을 배우게 된다. 살다보면 여러 가지 정황들 때문에 ‘돌아 가야만 하는’ 아픔을 겪을 때가 있는데, 요즘 같은 코비드 팬데믹(Covid-19 Pandemic) 정황이 그런 때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원치 않게도 쉬어야 하고, 멈추어야 하는 상황 속에서 너무 조급해 하거나, 너무 불안해 하지 마시라 하고 싶어서 드리는 말씀이다. 

이런 지혜는 성경의 인물인 다윗의 생애를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아시다시피 다윗은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무찌르고 일약 이스라엘의 스타가 되었는데, 불행하게도 당시의 왕인 ‘사울’의 질투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다가 도피하게 되고, 결국은 원수의 나라인 ‘블레셋’에게로 망명을 가서 그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는 기구한 운명을 맞게 된다. 얼마나 답답하고 길이 없었으면 원수의 나라 블레셋으로 망명을 갔을까! 좌우간 거기서 지내다가 자기의 새 주군인 블레셋의 ‘아기스’왕이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다윗을 참전시켰다. 다윗은 원치 않게도 자신의 조국과 전쟁에 참전하게 할 수 밖에 없게되었다. 그 심정이 어땠을까? 그때에 블레셋의 여러 장수들이 전략회의를 하다가 다윗을 열외시키기로 결정했다. 

지금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는데, 이스라엘에서 망명 온 저 다윗을 참전시켰다가 그가 변심하여 우리를 공격하면 우리 블레셋 군대는 포위되는 형국이 되니 아예 다윗의 군사들을 이 전장에서 제외시키자고 의결되었고, 다윗은 천우신조(?)로 조국과의 전쟁을 면제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망명지인 ‘시글락’에 돌아와보니, 남자들이 모두 전장으로 나갔던 그 마을은 이미 ‘아말렉 족속’의 공격을 받아 마을이 초토화되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로 잡혀갔던 것이다. 주군인 다윗을 믿고 망명지로 따라와 살던 부하들이 분노를 터뜨렸다. 자신들의 처 자식이 다 아말렉에게 잡혀갔던 것이다. 다윗을 향해 성난 부하들이 돌을 던지려 했다. 그 군급한 시기에 다윗은 흔들림없이 하나님 앞에 엎드린다. 그리곤 전열을 정비하여 아말렉을 치고 사로잡혔던 모든 식솔들을 구해내었다. 오히려 많은 전리품을 획득하기까지 하였다. 이런 다윗의 인생을 돌아보며 도종환 시가 생각이 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하며 이어지는 아름다운 시구이다. 믿음의 영웅 다윗이 그렇게 살았다. 국가에 충성했지만, 보상을 받기 보다는 질투를 받았고, 쫓기고 쫓기다 적국에 망명해야 하는 위기속에 그의 청춘이 가고 있었다. 그에게도 ‘직진’해서 사울을 폐위시키고 자력으로 왕권을 쟁취하는 권력쟁패의 투쟁에 나설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지켜야 할 것이 있었고, 물려 주어야 할 유산이 그 안에 있었다.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아, 하나님이 세우신 종을 그의 손으로 어찌 할 수 없어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에 맞기어야 했다. 그리고 그는 지금도 조국을 떠나 망명지를 떠도는 불안한 나날이 연속되고 있는 중이다. 현하의 우리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 망명지의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다윗은 그가 전투에서 얻은 전리품들을 안정된 조국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고있는 유다의 여러 친구들에게 ‘선물’로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무릇 선물이란 그런 것이 아니던가? 무어 힘이 있고 능력이 월등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함께 함’을 표하는 행위였기에 다윗은 망명지에서도 본국의 친우들에게 선물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꼭 돌파를 하고 직진으로! 지름 길로만 가는 것이 인생이 아니라 때로는 ‘우회’를 하고 돌아가는 길도 아름다울 수 있고,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위의 시구에 나오는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했던 것처럼, 이 이민자의 외로운 길에도 여전히 ‘그 분’이 함께 하심을 믿음으로, 나는 지금 다윗의 여유를 누리고 있는가를 자문한다. 
손자가 지적했던 ‘돌아가는 길이지만 직진보다 더 빨리 갈 수도 있다’는 지혜가 방랑과 망명의 길에 있지만, 그 길에서도 사랑과 존경을 나누는 인간됨의 미덕을 실천할 수 있었던 다윗의 믿음과 오버랩되면서 이 코비드-19의 팬데믹 상황 속에서도 ‘아! 주님께서 돌아 가라고 하시는 구나, 아! 그분께서 쉬었다 가라고 하시는구나’를 깨달으며 이 돌아오는 추석에는 조국에 계신 부모, 형제에게 조그만 선물이라도 발송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며 시드니의 봄을 맞는다, 감사하다! 

김호남 박사(PhD, USyd)
시드니 신학대학 한국신학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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