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동 음악회

이마리

자갈길에 덜컹거리던 봉고차가 초라한 집 앞에 섰다. 미닫이 유리문으로 된 집이다. 유리문은 시커멓게 먼지가 껴 안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엄마 어릴 때 고향이라 다시 시골로 이사를 온 거다.
“휴! 차가 분해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다!”
아빠가 이마의 땀을 닦는다. 겨울인데도 땀투성이다. 아빠는 살림도구를 다 비집고 엄마 휠체어부터 꺼낸다.
“자, 먼저 엄마를 밀고 집으로 들어가라.”
아빠는 짐을 옮기고 나는 엄마 휠체어를 민다. 하마터면 자갈밭에 엄마를 굴릴 뻔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집을 통째로 날려 보낼 듯 으르렁거린다. 귀신이 나올 듯 썰렁하다. 퀴퀴한 곰팡이 냄새에 눈이 맵다.
“윤빈아, 나를 싱크대 쪽으로 밀어주고. 밖에 가서 쌀부터 날라 올래?”
나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곧 엄마의 쌀 씻는 수돗물소리에 빈집이 술렁거렸다 시골로 이사한 첫날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밥을 먹고 우리는 이삿짐을 정리했다. 아빠는 대패랑 연장을 공방 차릴 곳에 진열했다. 엄마는 휠체어를 탄 채 작은 짐을 이쪽저쪽으로 날랐다. 
얼마 후 나는 얼룩진 천장을 보며 잠을 청했다. 우리 가족은, 아니 나는 서울생활이 무서웠다. 학교에선 아이들이 나에게 판자촌놈이라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이곳 시골 아이들은 좀 순하겠지 생각하며 잠을 청했다.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는지 엄마가 말했다.
“좀 추워도 참아라. 그래도 이 집엔 네 방이 따로 있잖아?”
비닐로 천막을 쳐놓은 서울 판자 집보다 이곳이 훨씬 찬바람이 약했다. 새우처럼 옹크려보았다. 면적을 적게 해야 덜 춥다던 아빠 말을 떠올리면서.
새 지저귀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리 추워도 새는 숲이 좋은가보다. 숲은 춥고 학교 가는 길은 멀다. 첫날이라 아빠와 함께 갔다. 담임 선생님이 나를 교실로 데리고 갔다.
“서울서 전학 온 채 유빈이다. 해룡아, 네 옆에 앉히고 잘 지내도록.”
나는 해룡이 옆자리에 앉았다. 쉬는 시간에 해룡이가 물었다.
“너 서울에서 온 거 맞아?”
아이들이 까마귀 떼처럼 달려들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시골뜨기네?”
나는 속으론 열불이 나는데도 못들은 척했다. 해룡이가 날 힐끗거리며 아이들에게 말했다.
“수업 끝나고 알지? 등나무 아래 모이는 거.”
해룡이 말에 모였던 남자애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초대한다. 채 유빈!”
그때 급식당번이 소리쳤다.
“서바이벌 흡입시간!! 일급비밀, 담임 샘은 옆 교실에서 식사 예정!”
아이들이 로봇 춤을 추며 달려 나갔다. 나는 제일 뒤에 식판을 들고 섰다. 내 차례가 오자 해룡이가 달려왔다. 그는 내 앞 아이 식판에 남은 닭볶음탕을 몽땅 부어주었다. 
“아이 이걸 어쩌나? 서울 친구에게 줄 게 없네. 이거라도 받으시지.”
밥 한 숟갈만 얹힌 식판을 들고 나는 자리로 돌아왔다. 자꾸 헛기침이 나왔다. 목에 멍울이 얹힌 듯 울컥해서다. 
“야, 밥 먹는데 재수 없게 왜 컥컥 대냐?”
해룡이 숟가락을 탁 털고 일어선다. 아이들도 모두 일어선다. 
“서울 급식하고 다르냐? 안 먹을 테면 받지를 말던가.”
해룡이가 내 식판에 퇴! 하고 침을 뱉었다. 내 두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순간 식판을 들어 해룡이 얼굴에 처박았다. 
아악! 비명과 함께 밥알이 해룡이 얼굴에 납작 달라붙었다. 꼭 곰보 탈바가지가 허우적거리는 듯했다. 그때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내가 없으면 꼭 이 모양! 음식으로 장난치는 녀석은 용서 못해. 벌로 너희 둘 오늘 수업금지. 해룡이, 유빈이 다 교무실로.”
나는 건물 끝 귀퉁이 음악실에 해룡이는 교무실에 갇혔다. 오후 내내 선생님은 나를 부르지 않았다. 배속에서는 속도 없이 자꾸 꼬르륵 소리가 났다. 눈물이 나왔다. 흐릿한 눈으로 창밖을 보았다. 들판 위에서 떨고 있는 허수아비가 좀비처럼 움직였다. 재수 없는 날이라고  투덜대며 주위를 둘러봤다. 
큰 북이 눈에 띄었다. 북채를 잡고 둥 쳐봤다.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울렸다. 다시 쳐봤다. 더 큰 소리가 났다. 두둥. 두둥둥. 두둥둥둥. 점점 소리가 커져갔다. 한참 기다려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음악실이 외따로 떨어진 게 이래서였나보다. 
이제 미친 듯 북을 두드렸다. 땀이 줄줄 흘렀다. 드르륵 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왔다.
“화가 좀 풀렸니? 참는 게 이기는 거야. 나쁜 녀석들이 신고식을 지나치게 시켰구나. 녀석들 가만두지 않을 거다.”
선생님이 내 등을 다독이며 이제 집에 가도 좋다고 했다. 집에 오니 이미 저녁밥이 챙겨져 있었다. 정신없이 밥을 퍼 넣었다. 자꾸 목이 막혔다. 아빠가 뭔가를 눈치 챈 듯 국을 밀었다.
“유빈아, 체할라. 국이랑 먹어라.”
엄마가 말했다.
“아빠는 벌써 일감이 들어왔대. 휴, 이사 온 게 얼마나 다행인지. 너도 그렇지?”
“네? 아 네.”
집에 도착했을 때 공방에서 나가던 아줌마 뒷모습이 생각났다. 그 아줌마가 손님인 것 같았다. 식사 후 설거지는 항상 내 몫이다. 아빠는 열심히 대패질을 한다. 향긋한 나무 향이 집안을 헤엄쳐 다닌다. 아빠는 벌써 <나무향기>라고 쓴 간판을 달고 있다. 엄마는 휠체어에 앉은 채 부지런히 사포질을 한다. 아빠가 만든 목공품은 모두 엄마의 손을 거쳐 완성된다. 

날씨가 얼음장 같다. 학교 가는 숲길에 나무들이 죽은 듯 서 있다. 저 나무에 언제쯤 새순이 날까? 보송한 솜털로 싸인 볼록한 곳에 더운 입김을 불어주었다. 학교에 도착해 가만히 교실 문을 열었다. 앗, 해룡이가 문 뒤에서 귀신처럼 나타나 쏘아붙였다.
“야! 너 어제 노예놀이 하러오라니까 왜 그냥 갔는데?”
“........”
“너 같은 신참이 노예 해야 했어. 네 덕분에 내가 노예 했잖아?”
다른 녀석이 소리쳤다.
“어쨌든 채 유빈, 넌 이 시간부터 노예다.”
나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뭐해? 이 가방 들고 내 옆자리에 앉아!”
나는 말없이 가방을 들었다.
“야, 그 노예 쓸 만하다.”
내가 앉자 애들 눈이 나를 좇았다.
“야, 노예가 어디 주인이랑 함께 앉으려고? 넌 바닥에 앉아.”
둘러선 녀석들이 나를 한 방씩 먹였다. 주먹을 피해 쓰러지려는 내 몸을 해룡이가 잡았다.
“인마, 노예가 어디서 맘대로 쓰러져?”
해룡이가 다시 명령했다.
“이제 쓰러져. 어서!!”
여자애가 소리쳤다. 
“야, 너무 심한 거 아냐?”
“너, 까불면 알지? 선생님한테 이르기만 해봐라.”
누군가가 소리쳤다.
“선생님 납시오!”
삽시간에 아이들이 자리에 앉았다. 휴! 담임이 나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나는 아픈 볼만 어루만졌다.
“방학 동안에 국악반에 가입할 사람은 신청해라. 초보자도 대환영. 석 달 후엔 군청에서 열리는 대회가 있다. 상금도 걸려 있고.”
수업 내내 북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수업 후 음악실로 달려갔다. 문을 여는데 누군가가 내 어깨를 잡았다. 
“노예께서 북을 쳐 보시겠다?”
돌아보나마나 해룡이가 틀림없었다.
“이 노예야. 말 좀 해봐. 너 혹시 벙어리는 아니지?”
“에이씨.”
“에이씨? 언어순화 좀 시켜줘야겠군. 너 이리 따라와.”
내가 끌려간 곳은 급식관 모퉁이였다. 이미 모여 있던 남자애들이 나를 가운데 놓고 돌아가며 한 대씩 때렸다. 나중엔 내 가방을 마구 밟았다. 나는 콩 벌레가 되었다.
“헐,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그때 슬리퍼 끄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담임이다! 토껴!”
아이들이 삽시간에 흩어졌다. 찬 시멘트 바닥에 코피 몇 방울이 떨어졌다. 골이 띵 했다.
“유빈아! 일어나라!”
겨우 눈을 들었다. 
“나쁜 녀석들. 이제 그만 둘 때도 되었는데. 그렇게 말했는데 또.” 
나는 선생님을 따라 음악실로 들어갔다. 선생님은 말라빠진 코피를 물휴지로 닦아주었다. 돌처럼 굳은 내 손을 한참 녹이더니 북채를 꼭 쥐어주었다. 
“자, 마음껏 쳐라. 이 북이 죽이고 싶도록 미운 놈이라고 생각하면서.”
둥, 둥둥, 두둥둥 북소리가 커졌다. 맘껏 두들기고 나니 눈물이 쏟아졌다. 북을 치며 울다 웃다가 소리도 질렀다. 
“나쁜 녀석들!”
한참 후 선생님이 들어왔다.
“유빈아, 북을 치면 정신 건강에 아주 좋단다.”
“아, 네.”
“국악반 악동들을 훈련시켜 많이 나아졌는데 아직 갈 길이 멀어. 너도 신고식을 치렀으니 이제 친구가 될 거야.”
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네 북소리는 힘이 있어. 아주 소질이 있어 보여.”
가슴이 막 뛰었다. 곧 선생님이 악보를 들고 왔다.
“자, 여기 세모와 동그라미가 있지. 세모는 북 모서리를, 동그라미는 북 가운데를 울려 진동시키는 거야.”
“네.”
“첫날 네 북소리를 들었지. 네가 북하고 인연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갔어. 잘 참아내는 사람이 북도 끝까지 잘 치거든. 악동들도 북, 장구, 징을 두드리며 마음이 많이 열려가고 있어. 혹독하게 연습하며 애들이 성장하지. 해룡이 녀석 부모 문제로 잠깐 비뚤어지긴 했는데 맘은 여린 놈이지.”
“.....”
‘그래도 나쁜 녀석이에요.’라는 말이 내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악동들이 연주하면서 마음이 하나가 되더라. 목표를 세우고 함께 가다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친구가 되지.”
선생님 말에 얼었던 마음이 봄눈처럼 녹고 있었다.
“집에서 북채만 가지고 와. 아버지께 한 개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리지?”
담임은 벌써 아버지가 공방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 내일부터 열심히 연습하자.”
선생님과 헤어져 숲속을 걸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숲길은 그다지 춥지 않았다. 희한하게도 아이들한테 맞은 일도 이미 잊었다. 저녁을 먹으며 아빠를 보았다.
“아빠, 저 북채 하나 만들어주세요.”
아빠가 놀라 고개를 들었다.
“와, 우리 유빈이도? 북 채 주문을 30개 받았는데. 이제 31개네?”
“유빈아, 엄마 어릴 때 친한 친구가 여태 이곳에 살고 있더라. 그 아줌마가 북 채를 주문한 거야. 그 집 아들도 국악반이라던데.” 
‘누굴까?’
그때 아빠가 긴 나무 조각을 내밀었다.
“우리 유빈이 북채는 제일 단단한 박달나무가 어떨까?”
“아빠, 이런 얼룩무늬는 싫어요. 깨끗한 걸로요!”
“이 얼룩무늬는 착한 옹이야.”
“옹이가 뭐예요?”
아빠는 내일 뒷산에서 옹이를 보여주겠다고 했다. 시골에 와 처음 맞는 주말이기 때문이다. 아빠는 일을 쉬고 엄마를 엄마가 좋아하는 절에 데리고 가기로 했다. 
숲속으로 난 낙엽 위로 엄마 휠체어를 천천히 밀어주었다. 햇살이 일렁이며 엄마 얼굴 위로 번져갔다. 엄마 얼굴이 환해졌다. 아빠도 싱글벙글 난리다. 아빠가 나무를 가리키며 목소리를 높였다.
“유빈 학생, 이 혹 같은 거 보이지요? 이걸 톱으로 켜면 얼룩처럼 보이는 겁니다. 이게 뭘까요? 옹이라는 겁니다.”
“선생님, 옹이는 왜 생길까요?”
“에헴. 나뭇가지가 바람에 꺾이거나 사람들이 자르면 그 자리에 상처가 생겨요. 나무도 힘들 때는 사람처럼 눈물을 흘리거든요. 그 눈물을 삼키며 참고 노력하면 착한 옹이가 되죠. 나무와 한 몸이 되는 겁니다. 그러나 견디어내지 못하면 나무 살에서 떨어져 나와 죽은옹이가 되는 겁니다.” 
엄마가 유빈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리 유빈이 옹이는 어떻게 생겼을까요?”
나는 생각에 잠겼다. 엄마가 웃으며 말했다.
“아들, 나무에 옹이가 있듯 사람들의 가슴에 사람들 각자의 옹이가 있단다. 착한 옹이가 생기면 그만큼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엄마의 옹이를 생각하니 가슴이 싸했다. 나와 해룡이의 가슴속 옹이는 어떤 모양일지 궁금했다. 그 후 북치는 일이 공부보다 더 재미있었다. 내가 늦게 시작했다는 생각에 다른 아이들보다 더 열심히 북을 쳤다. 아빠가 만들어준 옹이가 든 북채를 들면 마음이 넉넉해졌다. 악동들도 열심히 북을 쳤다.
 해룡이가 한 번씩 내 손을 잡고 북 치는 걸 가르쳐주었다. 나는 말없이 따라했다. 천방지축 악동들이 야무지고 단단한 국악 악동들이 되어갔다. 

드디어 공연 날이 다가왔다. 무대에서 우리 악동들은 하나가 되었다. 연주가 끝난 후 모두가 땀이 질퍽했다. 사람들은 계속 앙코르를 외쳤다. 학부모 한 명과 담임이 무대 위로 나왔다. 담임이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들, 우리 귀여운 악동들을 믿고 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디어 하나로! 라는 우리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이번엔 학부모가 마이크를 받았다.
“선생님, 우리 말썽꾸러기들을 지도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훌륭한 연주를 하도록 북채를 만들어준 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떠나갈 듯 박수소리가 들렸다. 아! 무대 옆에서 엄마의 휠체어가 다가오고 있었다. 
“바로 제 고향친구 채 유빈 엄마를 소개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일어서서 환호했다. 
“유빈아, 너희 엄마하고 우리 엄마다!”
아, 집에 왔던 그 아줌마였다. 해룡이가 속삭이며 내 손을 쥐었다. 땀으로 끈끈했지만 나는 그 손을 빼지 않았다. 엄마 눈에서 눈물이 반짝였다. 악동들이 북채를 두드리며 우우 환호했다. 눈을 감으니 기쁨에 찬 옹이들의 춤사위가 보이는 듯했다. 북소리에 맞추어 공연장에 모인 모두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덩더꿍 덩더꿍”
 “얼씨구 절씨구”
 악동들과 온 동네가 한마음이 되었다. 북소리의 뜨거운 열기가 그치질 않았다. 차가운 겨울이 저만치 물러나 앉았다.
<목포신인문학상 수상작> 기고글

제3회 한우리문학상 등단으로 동화쓰기 시작해 <코나의 여름> <구다이 코돌이><버니입호주 원정대>등의 장편동화 출간과  현재 <캥거루소녀>출간을 앞두고 있슴.

최근 청소년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2021.2)의 속편 <동학소년과 녹두꽃> (2021.7)을 출간하였으며 시리즈로 계속 집필 중임.

이마리 전자우편  leemalhya.yahoo@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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