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와 다름없는 타운즈빌(Townsville)에서 문명 생활(?)을 끝내고 작은 해안 동네 카드웰(Cardwell)로 향한다. 세시간도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있는 동네다. 두어군데 쉬기도 하면서 여유를 부리며 운전하여 목적지에 도착했다. 바다를 앞에 두고 뒤로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싼 아담한 동네다.

작은 바닷가 마을 카드웰(Cardwell)도 개발의 붐이 일고 있다. 해변에 새로 조성된 주택단지.

야영장에 도착했다. 오래된 야영장이다. 주위가 어수선하고 시설도 오래되었다. 캐러밴을 주차하는 공간이 좁다. 나와 같은 초보자는 혼자서 주차하기가 쉽지 않다. 힘겹게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던 사람이 다가와서 도움을 준다. 나이가 지긋이 든 할아버지다. 캐러밴을 주차한 경험이 많은 사람임이 틀림없다. 운전대 돌리는 방향을 정확하게 알려준다. 덕분에 가까스로 주차할 수 있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담한 마을 카드웰

주차를 도와주었던 할아버지와 잠시 인사를 나눈다. 빅토리아주(Victoria)에서 왔다고 한다. 매년 따뜻한 이곳에서 겨울을 보낸 후 돌아간다고 한다. 집에서 이곳까지 거리는 3,000km 정도 되는데 일주일 정도 운전해서 온다고 한다. 추운 지방에 사는 은퇴자의 전형적인 삶이다. 

캐러밴 정리를 끝냈다. 바람도 쐴 겸 야영장을 천천히 둘러본다. 야영장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자동차 번호판을 보니 유난히 빅토리아주에서 온 사람이 많다. 남호주(South Australia) 번호판도 보인다. 겨울에 추운 남쪽 지방을 피해 따뜻한 북쪽에서 지내는 철새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야영장에 설치된 부엌을 지나치는데 테이블에 열댓 명이 술잔을 앞에 놓고 떠들썩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다. 조금 전 인사를 나누었던 할아버지도 있다. 나를 보더니, 손짓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얼떨결에 낯선 그룹에 끼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매년 겨울이 되면 이곳에 모여 함께 지낸다고 한다. 사는 곳은 제각각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추운 남쪽 지방에서 왔다는 점이다. 이곳 야영장에서 몇 번 만나면서 모임처럼 되었다는 것이다. 여행자끼리는 쉽게 친숙해지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다음 날 아침 폭포 구경을 하러 나섰다. 인터넷으로 알아본 가까운 곳에 있는 폭포(Murray Falls)다. 폭포를 찾아가는 도로 주변은 사탕 수수밭으로 넘쳐난다. 퀸즐랜드에 들어선 이후 사탕수수밭이 계속되었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호주 설탕의 대부분은 퀸즐랜드에서 생산하는 것 같다.  

폭포가 있는 국립공원에 들어섰다. 폭포 근처에는 야영장이 있다. 대여섯 대의 캐러밴과 텐트가 보인다. 샤워 시설을 갖춘 지방 정부(Council)에서 운영하는 캠프장이다. 유료 야영장과 비교해 불편한 점이 있다면 전기가 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밤하늘의 수많은 별을 바라보며 지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료 야영장이 있고 수영할 수 있는 계곡이 있는 곳에 있는 폭포(Murray Falls)

폭포까지 가는 산책로는 잘 조성해 놓았다. 전망대에 도착해 폭포를 사진에 담는다. 물줄기가 높지는 않지만, 수량이 많고 주위와 잘 어울리는 폭포다. 바위로 둘러싸인 곳으로 떨어지는 많은 양의 물줄기가 위험해서인지 출입은 금지하고 있다. 이곳에 야영장이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것이 아쉽다. 미리 알았다면 이곳에서 폭포 소리를 들으며 밤하늘의 별을 보는 경험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전망대를 벗어나 수영할 수 있다는 팻말을 따라 강을 내려가 본다. 수영장 사인을 보고 들어가려는데 여자 두 명이 상의를 벗은 채 앉아 책을 읽고 있다. 공공장소이지만 둘만의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다. 눈인사만 나누고 방해가 되지 않는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수영을 잘한다면 물에 들어가고 싶다. 그러나 수심이 일정하지 않은 흐르는 물이다. 수영할 자신이 없다. 허리까지만 들어가 몸을 적시며 더위를 식힌다. 

물 색깔이 유별난 스파 풀(Spa Pool),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다.

오후에는 바다로 길게 뻗은 선착장을 찾았다. 동네 한복판에 있는 선착장이다. 선착장을 걸어본다. 낚시를 많이 한 흔적이 보인다. 바닥에는 생선 비늘이 널려있다. 비늘이 무척 크다. 큰 생선을 잡았다는 증거다. 그러나 낚시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늦은 저녁 혹은 아침 일찍 오면 강태공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동네 한가운데 위치한 선착장. 강태공들이 몰리는 장소다.

다음날은 일찍 일어나 산책로를 걸어본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6km 이상 되는 긴 산책로다. 이른 아침이지만 산책하는 사람이 많은 편이다.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듯이 열심히 걷는 사람 그리고 관광객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다정히 걷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른 아침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마시며 많이 걸었다. 몸이 상쾌하다. 

이곳에는 또 다른 폭포(Attie Creek Falls)를 비롯해 관광객을 유혹하는 관광지가 서너 개 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로 향한다. 전망대로 가는 길은 예상했던 대로 험하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산 중턱으로 올라간다. 흙먼지를 날리며 운전하여 주차장에 도착했다. 전망대까지는 650m를 걸어야 한다는 안내판이 있다. 경사가 심한 산길이다. 크게 호흡을 한 후 전망대를 향해 천천히 걷는다. 가는 길은 잘 정돈되어 있는 편이다. 큼지막한 돌덩이로 계단도 만들어 놓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힌친부룩 섬(Hinchinbrook Island)

전망대에 도착했다. 힌친부룩 섬(Hinchinbrook Island)이 눈 앞에 펼쳐진다.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산호로 이루어진 대보초 해상공원(Great Barrier Reef Marine Park)에 있는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섬 전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바로 옆에 있는 전망대로 가본다. 아담한 동네와 아침에 걸었던 산책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끝없이 펼쳐진 해안 풍경도 혼자 보기에 아쉬울 정도로 눈을 즐겁게 한다.

전망대를 내려와 폭포를 찾아 나선다. 이곳도 주차장에서 폭포까지는 많이 걸어야 한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산길을 올라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가 높지는 않다. 수량도 많지 않다. 그러나 폭포 아래 큰 웅덩이가 있다. 떨어지는 물줄기와 함께 수영하며 지내기에 좋은 곳이다. 젊은 남녀가 바위에 앉아 시원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간식을 먹고 있다. 수영복 차림이다. 물놀이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신선놀음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폭포에서 내려와 주차장에 도착했다. 나이 많은 부부가 강아지를 데리고 자동차에서 내리면서 폭포가 볼만하냐고 묻는다. 폭포가 좋긴 하지만 산책로가 험하다고 대답했다. 힘에 부쳐서일까, 걷기를 포기하고 자동차에 다시 오른다. 구경도 젊어서 해야 한다. 여행하면서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다.  

마지막 목적지 스파 풀(Spa Pool)을 찾았다. 관광지로 많이 알려진 장소 이어서일까, 젊은이들이 많다. 호주 오지에서만 볼 수 있는 흙먼지가 자동차 전체를 덮은 자동차도 있다. 스파 풀은 비취색을 띠고 있다. 안내판에는 비취색을 띠고 있는 이유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 게으름 탓일까, 전문 용어를 읽어가며 자세한 이유를 알고 싶은 생각이 없다. 물 색깔이 마음과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만져보니 따뜻하지가 않다. 스파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따뜻한 온천물로 생각했는데, 실망이다. 나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을까, 물을 만져 보는 나에게 손짓하는 사람이 있다. 물이 차지 않고 수영하기 좋다며 들어올 것을 권한다. 

퀸즐랜드에서는 사탕수수를 많이 재배하고 있다.

많이 걸었다. 덥기도 하다. 물에 들어간다. 온몸을 물에 담그고 하루의 피로를 푼다. 한 아가씨는 수영복을 준비하지 않았는지 티셔츠만 입고 들어와 가슴이 훤히 보인다. 보기에 조금 쑥스럽다. 그러나 이러한 나에게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걸어온다.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보기에 좋다. 자유로운 삶을 구가하는 모습이다.  

다시 왔던 도로를 따라 야영장으로 향한다. 오늘은 같은 산길을 오르고 내려오기를 몇 번 반복했다. 그러나 같은 길이지만 내려가면서 올라올 때 만나지 못했던 풍경과 마주치곤 했다. 어느 시인의 읊조림처럼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꽃을 내려갈 때 보기도 했다. 

삶은 되돌아가는 길이 없다. 앞으로만 가야 한다. 지나친 것은 다시 보듬을 수가 없다. 삶을 천천히 걸어야겠다고 생각해본다. 앞만 보며 열심히 걷지 말고, 가끔은 뒤돌아보기도 하면서, 지나치고 가는 것은 없는지 살펴보는 삶을…

필자: 이강진  kanglee699@gmail.com
(자유 기고가, 뉴사우스웨일즈 Hallidays Point에서 은퇴 생활)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