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엄마는 귀신에 홀린 듯 걸음이 빨랐다. 동생과 나는 허덕이며 엄마를 쫓아갔다. 슬리퍼가 종아리까지 진흙물을 튀겼다.
‘철벅 철벅!’
엄마가 돌아보지도 않고 소리쳤다.
“그만 집에 가... 계속 따라오면 가만 안...!”
장대비 속에서 엄마 목소리가 계속 끊어졌다. 등줄기로 서늘한 기운이 흘러내렸다.  나는 동생 손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그만 울어! 제발 집으로 돌아가자.”
울부짖던 동생이 빗속에서 떨고 있었다. 
“강리야, 우리가 돌아가야 엄마가 온다!”
동생 손을 잡아끌고 갔던 길을 돌아왔다. 뛰면서도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개울가에 멈추어선 엄마가 지하여장군처럼 서 있었다. 
집에 오니 우리는 물에 빠진 생쥐가 되었다. 어둠속에서 빨간 담뱃불이 빛났다. 아빠가 현관문 밖에 서서 중얼거렸다.
“감기 걸릴라.”
나는 말없이 동생에게 수건을 내밀었다. 동생은 젖은 머리를 털며 배고프다고 했다. 냉장고를 열었지만 빼빼 마른 빵 조각이 전부였다.
“빨리 먹기나 해.”
우리는 꾸역꾸역 식빵을 삼켰다. 그것은 마른 나뭇잎처럼 퍼석거려 목이 메었다. 곧 잠이 든 동생은 꿈속에서도 가끔씩 흐느꼈다.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데 아빠가 들어왔다. 나는 잠든 척 돌아 누었다. 술 냄새를 풍기는 아빠가 우리를 한참 내려다보았다. 
얼마가 지났는지 눈을 뜨자 장마 후 여름햇살이 눈부시다. 어젯밤 일이 꿈은 아니었다. 아빠 방에서 풍기는 시큼털털한 냄새랑 동생 얼굴에 마른 눈물자국이 그걸 말해주었다. 동생을 깨울까 하다 그냥 가방을 멨다. 그래도 우리를 지켜보던 아빠에게 동생을 미루기로 했다.
학교 가기 전 엄마가 걷던 길을 걷는다. 엄마가 있을 리 없지만 행여나 하는 마음에. 젖은 돌계단을 따라 개천으로 내려간다. 장맛비를 뒤집어쓴 시퍼런 돌들이 얼음처럼 미끄럽다. 두 번이나 넘어져 무릎에 피 먹과 풀물이 푸르죽죽하다. 시퍼런 풀숲 아래로 쏟아지는 물이 콸콸 소리를 지르며 쓸려간다. 
개울 앞 넙적 돌 위에 서니 눈앞이 부옇게 흐려진다. 엄마가 서 있던 자리다. 행여나 했지만 기적은 없다. 엄마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나는 어느새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또 지각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데 빛나가 다가왔다. 
“지지리!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네가 일등으로 오다니!
막 교실로 들어가려던 나는 엉거주춤 섰다. 빈정대는 빛나 목소리가 날카로운 가시처럼 와 박혔다. 정말 내가 어떻게 일등으로 온 건지 모르겠다. 항상 뒷자리가 내 단골자리였는데. 우리 반은 지난달부터 일찍 온 순서대로 앉기로 했었다.
내 진짜 이름은 지해리다. 언제부턴가 반 애들이 나를 놀리며 지지리로 불러댔다. 지지리 못하는 게 많다면서. 사실 내가 공부를 못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왕따 당할 정도로 못된 아이는 아닌데 말이다. 
빛나가 선생님 앞으로 팔랑거리며 나간다. 머리 위의 노란 리본이 춤을 춘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노란 나비가 앉았나? 빛나 덕에 교실이 환하네.”
예쁜 빛나는 더욱 빛나고 나는 졸은 쫄면처럼 바짝 오그라든다. 잡초에 젖은 옷에서는 쉰내까지 난다. 눈치를 보며 엉덩이를 들어 딸려 올라가는 속옷을 잡아 내렸다. 그때 ‘탕탕탕!’ 창문이 흔들렸다. 모두 놀라서 창문을 보니 수찬이었다.
“엄마아!”
유리창에 바짝 댄 수찬이 얼굴이 납작 만두가 되었다. 빛나도 그 모습에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납작 만두면 어떻고 둥글 만두면 어때. 어쨌든 난 수찬이 덕에 살았다.  선생님 외아들 수찬이는 착한 애인데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순간 선생님 얼굴이 시커먼 먹지처럼 어두워졌다. 
수찬이가 복도로 사라진 후 선생님이 다시 나를 향했다. 항상 꼴찌로 오는 지지리가 최고로 일찍 왔으니 뭔가 수상하기도 하겠지. 빛나도 자꾸 나를 힐끗거렸다. 나는 빛나에게서 되도록 멀리 의자 끝에 걸터앉았다. 
고개를 드니 코앞에 수족관이 있다. 세상에나, 그곳에 황색 금붕어가 노는 걸 처음 보다니! 나는 항상 단골 지각이라 뒷자리가 지정석인데다, 고기밥을 한 번도 주어보지 않았다.

날쌘돌이 아빠와 배불뚝이 엄마 금붕어가 껴안은 채 바위 밑으로 들어간다. 주위를 맴돌던 새끼들도 꼬리를 물고 따라 들어간다. 새끼들은 엄마를 놓칠까봐 안절부절 못한다. 앗! 엄마 아빠 붕어가 사라졌다. 허둥대던 새끼들마저 없다. 건달 물풀만 김샌 듯 혼자서 흐느적거린다. 

시퍼런 물풀 아래 조약돌들이 강가에 있던 그 미끄러운 이끼돌처럼 푸르죽죽하다. 그때 빛나가 코를 막으며 소리쳤다.
“선생님, 냄새 나요!”
나는 얼음놀이 때처럼 숨을 참고 정지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쉰내가 퍼져나갈 것만 같다. 
“그렇지, 이끼 때문이야.”
휴, 이번엔 선생님이 나를 살렸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선생님이 말했다.
“이끼가 끼면 고기가 죽어.”
“네, 선생님. 내일이 수족관 물청소 날이에요.”
“잊지 않았구나. 내일 방과 후 실시한다. 시간 되는 친구들 함께 참여하도록.”
앗, 그러고 보니 엄마 얼굴에도 이끼가 끼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 라며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깔깔대는 소리가 크게 다가왔다. 빛나가 국어책을 두드리며 종알거렸다. 
“지지리, 뭐해? 선생님이 너 이 동시 읽으라 하시잖아.”
수십 개의 눈동자랑 선생님 얼굴이 확대되어 다가왔다.
“해리, 점심시간에 교무실로 와!”
따르릉 첫 교시 끝나는 종이 울린다. 아이들이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한다. 나는 멍하니 수족관만 바라본다.
 
앗, 엄마 금붕어가 나타났다. 배를 내밀고 으스대면서. 아빠 금붕어가 꼬리로 엄마 배를 다독인다. 새끼 금붕어들이 엄마 주위를 빙빙 돌며 황홀한 율동을 한다. 

새끼 금붕어들은 참 좋겠다. 엄마가 절대 수족관 밖으로 못 나갈 테니까. 갑자기 주황색 금붕어가 부옇게 보인다. 눈에 티끌이 들어간 것도 아니면서. 개천으로 급히 내려가던 엄마의 모습도 그랬다. 그때가 엄마와 아빠가 큰 소리로 싸운 후였다. 베게가 날아다니고 TV 리모컨이 깨졌다. 엄마 아빠가 다툴 때면 돈, 학원비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빠는 술 담배를 많이 하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두었다. 아니 회사를 그만두어서 술 담배를 많이 한 건지도 모르겠다. 
오전 수업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꼬르륵거리는 배꼽시계를 얼른 움켜쥔다. 나는 나쁜 딸이다. 엄마가 가출을 했는데도 배가 고프다니. 교무실 밖에서 눈치를 보는데 선생님이 손짓을 했다. 선생님 옆에 앉았다. 
“해리야. 집에 힘든 일이 있는 거 내가 다 알아. 요즘 많은 회사들이 경제 위기를 겪고 있지. 빨리 경제가 좋아져야 할 텐데.”
선생님이 내 무릎의 풀물을 보고도 못 본 척했다. 그것이 창피하고 더 슬펐다. 참았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해리야, 나랑 수찬이를 봐라. 세상에 걱정 없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잘 견뎌내야만 환한 미래가 있어.”
그때 교무실 창문이 쾅쾅거렸다. 수찬이가 하회탈처럼 너털웃음을 짓자, 선생님이 다가갔다. 엄마 품에 안긴 수찬이는 온 몸을 흔들며 팔을 꼬았다.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환히 웃었다.  
“수찬이가 방과 후에 또 달리기를 하겠대. 패럴림픽에 나간다고. 기적이야, 기적.”
수찬이는 걷는 것조차 싫어했었다. 그러던 수찬이가 캐나다 패럴림픽 중계를 보며 달리기를 시작했고, 노력을 거듭하다 대표로 뽑혔다. 
”해리야, 너 수업 내내 수족관만 들여다보던데. 이끼 보았지? 돌멩이가 좁은데 갇혀서 멈춰 있으니 이끼가 끼는 거다.” 
“네∼”
“그런데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낄 수 없단다. 돌이 구르면서 때로는 쪼개져 제 몸을 깎아내리고 거센 물살과 폭풍을 만나기도 해. 그렇게 힘든 아픔을 참아내는 돌엔 이끼가 끼지 못해. 그건 기적이지. 기적은 저절로 생기지 않아. 스스로 노력해 만들어 가는 거야.”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고개를 끄덕였다. 
“해리야, 목표를 정하고 네 자신을 돌처럼 굴려보는 거야. 네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그게 힘든 부모님을 돕는 일이지.”
얼마 후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다. 내 맘속에 엄마가 들어와 앉았다. 나는 귀를 쫑긋하고 선생님 설명을 열심히 들었다. 빛나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지해리, 너 오늘 뭐 잘못 먹었어? 웬 일?”
이번에는 지지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수업 후 다가왔다.
“너 혹시 이 문제집 가질래? 두 권이나 있어서.”
그걸 받아 가방에 넣었다. 빛나가 내 마음을 읽은 걸까. 운동장을 나오는데 수찬이가 트랙을 달리고 있었다. 결승선 쪽에서 선생님이 두 팔 높이 초시계를 들어올렸다. 수찬이를 안을 듯 양팔을 벌린 엄마와 땀투성이 아들의 모습이 마치 영화 같았다. 가슴이 뭉클해져 나도 교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가슴이 쿵쾅거렸다. 엄마, 라고 외치며 무작정 안방으로 달려갔다. 역시나 엄마는 없었다. 눈물이 쿡 솟구쳐 앞 이를 꽉 물었다. 아빠가 빠져나온 애벌레 껍질 모양의 이불에서는 구린 냄새가 지독했다. 코를 막은 채 창문을 활짝 열고 커튼을 젖혔다. 장마 후 따가운 햇살이 살 속으로 콕콕 파고들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엄마가 동생 강리랑 외갓집에 있단다. 아빠가 동생을 데리고 엄마를 찾아갔던 거다. 전화를 끊고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울 엄마가 온다!”
갑자기 삼손처럼 힘이 솟았다. 퀴퀴한 이불을 불끈 들어 쨍한 햇볕에 널었다. 책상과 방바닥에 빠득빠득 걸레질을 했다. 물을 틀어 설거지도 쏴쏴 했다. 그리고 책상 위에 빛나가 준 문제집과 책을 가지런히 펼쳤다. 집중이 잘 되는 게 기적이다. 가슴이 덜컹덜컹 설렌다. 엄마가 빨리 오면 좋겠다. 어느새 방싯 웃는 엄마 얼굴이 보인다. 
내일 학교에 일찍 가고, 수족관 물청소도 도울 거다. 이끼가 끼면 고기가 죽는다.


제3회 한우리문학상 등단으로 동화쓰기 시작해 <코나의 여름> <구다이 코돌이><버니입호주 원정대>등의 장편동화 출간과  현재 <캥거루소녀>출간을 앞두고 있슴.

최근 청소년역사소설 <대장간소녀와 수상한 추격자들>(2021.2)의 속편 <동학소년과 녹두꽃> (2021.7)을 출간하였으며 시리즈로 계속 집필 중임.

이마리 전자우편  leemalhya.yahoo@gmail.com으로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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