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주의 의회정책 고수” 비난 확산
베트남계 투 리 변호사 “지역사회 대변 기회 상실” 
 
NSW 주총리를 역임한 크리스티나 키닐리(Kristina Keneally) 연방 상원의원이 시드니 남서부 파울러(Fowler) 연방 지역구의 노동당 후보로 공천을 받아 하원에 진출하려는 계획이 노동당 안팎에서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이 논란의 핵심은 일종의 ‘낙하산 공천(parachute candidate)’에 대한 반발이다. 키닐리 상원의원은 시드니 노던비치에서 살고 있으며 남서부 지역인 파울러 선거구와는 연관이 거의 없다. 전통적으로 노동당 후보가 강세였던 ‘텃밭’이란 점 때문에 이 지역구를 선택했다.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많은 파울러 지역구에서 문화, 인종적 다양성을 무시한 노동당 지도부의 처사가 공격을 받고 있다.

키닐리 상원의원 하원 진출 배경은?
 
키닐리 전 NSW 주총리는 지난 2017년 시드니 북서부 한인 밀집 지역(이스트우드, 에핑, 라이드 등)인 베네롱 보궐선거(Bennelong byelection)에서 노동당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그 후 노동당의 샘 다스티야리(Sam Dastyari) 상원의원이 중국의 이익을 대변했다는 이유로 정치권에서 파문을 초래하면서 상원의원직에서 전격 퇴출됐다. 이 와중에 노동당내 우파 계보(right faction)인 키닐리가 다스티야리의 상원의원직을 계승했다.

크리스티나 키닐리 연방 상원의원(노동당)

2019년 총선 후 재선된 키닐리 상원의원은 야당 상원 원내 부대표로 승진했다. 노동당 당내 서열 4번이 된 키닐리 상원의원은 야당 내무부 담당으로 피터 더튼 당시 내무장관과 의회에서 치열한 공방전을 전개해 당 안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노동당 여성 의원들 중 중진급인 키닐리 상원의원과 데브 오닐(Deb O’Neill) 상원의원이 노동당 우파 계보 소속이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NSW 노동당 상원 공천 1순위를 놓고 경합을 벌였다는 점이다. 키닐리 의원이 노조의 강력 지지를 받는 오닐 상원의원에게 밀려 오닐 의원이 우파의 1순위, 키닐리 의원이 우파의 2순위가 됐다. 노동당 공천에서 우파의 1순위가 1번, 좌파의 1순위  후보가 2번을 받게되고 키닐리 의원은 당선 안정권이 아닌 3번을 배정받는 상황에 처한 것.

이에 노동당 우파는 계보 안에서 일종의 정리 작업으로 키닐리 상원의원의 하원 출마를 결정했고 크리스 헤이즈 의원(MP Chris Hayes)이 정계를 은퇴하는 시드니 남서부의 파울러 지역구를 선택했다. 

지난 주 우파는 계보 미팅에서 키닐리의 파울러 공천을 승인했다. 파울러에서는 우파 계보가 후보를 선정하면 지역구(지구당)에서 추인하는 톱-다운 공천  관행이 계속돼 왔다.
   
키닐리 상원의원은 “나는 사퇴한 다스티야리 후임으로 우연히 상원의원(accidental senator)이 됐다”라고 주장하며 하원으로 옮기는 것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파울러의 현역 의원인 헤이즈는 그의 후임으로 베트남 난민(보트피플)의 후손인 투 리(Tu Le) 변호사를 적극 추천했었다. 그는 “젊은 여성인 투 리 변호사는 매우 능력 있고 지역사회의 열정적인 활동가로서 노동당 가치에 적합한 후보”라고 지지했다.

우파 계보가 시드니 노던비치에 거주하는 키닐리 상원의원을 시드니 남서부 파울러 지역구의 차기 후보로 승인하자 “낙하산 공천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인정받은 예비 후보가 소외됐다(sidelined)”는 점이 부각되면서 노동당 안팎에서 비난이 커지고 있다.

앤소니 알바니즈 연방 야당 대표(왼쪽)와 투 리 변호사

투 리 변호사는 “지역사회 주민들이 좌절하며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유권자 중 이민자와 난민 출신이 4분의 3을 점유하는 상황에서 다문화 배경을 가진 후보의 공천이 타당하고 합리적인 결정이다. 노동당은 공천에서 지역사회를 더 잘 대변해야할 필요가 있다. 그럴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일침을 놓았다.

노동당에서 유일한 이슬람계 여성 의원인 앤 알리 의원(MP Anne Aly)은 “노동당이 다문화 정신을 훼손하면서 다양성과 포용성에서 위선을 드러냈다. 립서비스만 했을 뿐”이라고 강력한 어조로 비난했다.  

파울러 연방 지역구는 어떤 곳?
 

시드니 남서부의 파울러 연방 선거구는 호주에서 비영어권 이민자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는 지역구 중 하나로 문화, 인종적으로 다양한 연방 선거구다. 카브라마타, 캔리베일, 리버풀, 란스베일, 워윅팜 등을 포함한다. 

카브라마타는 호주 최대 베트남 커뮤니티가 몰려있는 지역으로 베트남계인 투 리 변호사가 노동당 공천을 받기위해 상당한 노력을 경주해왔고 현역 의원의 지지까지 받았지만 일종의 낙하산 공천으로 후보 자리에서 밀려나간 모양새가 됐다.

파문이 커지자 앤소니 알바니즈 야당 대표가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는 미국 출생인 크리스티나 키닐리 전 주총리를 ‘이민자 성공사례(a migrant success story)’라고 추켜세우고 “노동당은 다문화주의 정당(party of multiculturalism)”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천 경쟁자인 투 리 변호사에게는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하며 “계속 지역사회에서 활동해달라”고 당부했다.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보다 ‘정치적 다양성’ 낙후
 
호주는 영국, 캐나다, 뉴질랜드와 문화적으로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네 나라의 정계를 비교하면 의원들의 문화, 인종적 다양성에서 호주가 가장 뒤처진다. 

호주 인구 중 비유럽계(21%)와 원주민(3%)이 전체의 24%를 점유한다. 2018년 인권위원회(Human Rights Commission) 조사에 따르면 연방 의원의 4.1%가 비유럽계이며 원주민계는 1.5%에 그쳤다. NSW와 빅토리아주 의회에서는 의원의 9%와 10%가 비유럽계 및 원주민계다. 파울러 지역구의 유권자 중 16%만 호주 또는 영국계(Australian or English)다.  

백인 일색인 호주 정치권이 ‘백호주의 의회정책(white Australian Parliament policy)’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영국 내각에는 리쉬 수낙(Rishi Sunak) 재무장관(Chancellor of the Exchequer), 프리티 파텔(Priti Patel) 내무장관(Home Secretary) 등 이민자 배경의 정치인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베트남계가 많은 파울러 연방 지역구에서 비영어권 이민자 출신 정치인이 주요 정당의 공천을 받기까지 호주 의회는 여전히 ‘유럽계 백인들만의 리그’로 머물 것이다. 크리스티나 키닐리 상원의원의 낙하산 공천은 시대를 역행하는 파행으로 비난 받아야 한다. 또 노동당은 이런 구시대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할 경우, 집권당의 꿈이 요원하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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