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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단상] ‘오징어 게임’
정원일 (공인회계사) | 승인 2021.09.23 13:54

추석을 전후 해 네플렉스를 보는 인구가 많아지고, 한국의 드라마 ‘ 오징어 게임’이 미주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이정재와 이병헌과 같은 스타가 등장하고 빚으로 만신창이가 된 별의별 사람들이 456억원의 상금을 차지 하기위해 다른 사람들을 죽이고 생존하는 생존 게임이다. 실제로 이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며 보다보면, 어느새 시선을 휘어 잡는 구성과 액션이 빠져들게 한다. 능력만 있으면 어느 누구든 돈을 쟁취할 수 있다는 전제로, 456명의 도전자들의 즐비한 배신과 잔혹한 살인이 똑같은 옷을 입고 먹고, 동일한 환경과 규칙에서 생존 게임을 벌이는 드라마이다. 
“아직도 사람을 믿나?” 는 주인공 이정재를 향한 질문은 이 시대에, 한 사회 속의 사람들을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저 사람을 이기면 내가 우위를 차지하고 이득을 취하는, 없어져도 무방하고 넘어지고 죽어나가도 나쁠 것없는 무정한 세태를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만약 우리 아이들이 저런 세상에서 산다면, 저런  환경에 살인과 범법으로 얼룩진 과거를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면 얼마나 참혹할까? 저 안에 등장한 사람들도 자신의 과거가 실제가 아니었으면 하고 얼마나 과거를 지우고 싶을까?   

한국 대선을 몇달 앞두고 며칠 전 맞은 추석 명절 연휴 기간이 지나면 대선 주자들이 하마평에 오르고 추석이 지나면 대체로 민심의 향방이 정해질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예측이다. 대선 후보들은 큰 소리는 치지만, 신문에서 더는 자신의 어느 과거에 대해 떠들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간절함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노심초사 진실이 드러날까봐 두려운 것도 있을 법하다. 될 수만 있다면 지우고 싶은 과거의 편린은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그것만 아니라면 대세를 잡고 큰 정치, 대권을 잡고 이름을 떨치고 역사에 업적을 남기는 인물이 되고 싶을 것이다.

 어린 시절 지우고 싶은 것이 있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공부도 잘하고 얼굴도 예쁜 짝이 있었다. 그 때 엄지 손가락에 사마귀가 있었는데, 짝에게 보여주지 않으려고 그것을 면도칼로 자르고 문지르며 없애 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없애고 싶어도 자라고 마음 대로 쉽게 없어져 주지 않아 한 동안 속이 상했었다.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도 어린 마음에 애타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10년 전 쯤 시드니를 방문한 고등학교 동창이라며 전화를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여행 중 이라면서, 왠지 양복을 갖춰 입고 나왔다. 여기저기 기름 때로 색이 매무새, 생기 없는 까칠한 얼굴, 파고에 휩쓸려 다니다 이제는 쉬고 싶은 마음이 뭍어 나는 지친 표정, 어디서 다쳤는 지 붕대를 감고 있는 손, 뭔가 다 말하지 않으려는 가려진 사연들..,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는 동문들 앨범을 스스로 대견스러운 듯 보여 주었다. 그 안엔 국회의원, 기업가, 변호사, 의사, 다양한 동문들의 얼굴들이 있었다. 많이 들고 다녔는 지 이미 닿아서 책 귀퉁이 마다 손 때가 뭍고, 꼬깃해진 책이 되었다. 마치 이 시절 만이 자신의 기쁨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연민이 그에게서 느껴졌었다. 얘기를 듣기도 전에 이미 그의 삶의 아픔과 좌절, 낙망과 실패의 자괴감이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그는 얼마나 과거와 씨름을 했을까? 지우고 싶었을까? 그는 다음 여정지로 갈거라며 티 한잔을 마시고 헤어졌다. 10년이 지났는데 요즘 불쑥 그 때 밥이라도 한끼 먹여 보내지..얘기를 잘 하도록 좀 더 따뜻하게 들어 줬어야지..하는 다시 시간을 돌릴 수 없는 후회가 든다. 

소설에서 170년 전 세상은 주훙글씨를 겉옷에 새기고, 간음한 여인의 평생을 낙인 찍었다. 가녀린 여인으로 딸을 데리고 주홍글씨를 안고 사는 것도 죽음보다 힘들텐데, 사람들은 사는 내내 그녀를 정죄하였다. 체코의 코스니스키의 원작을 영화화한 ‘페인트 칠한 새(The painted Bird)’에서 처럼, 페인트가 칠해져 있으면 떼로 모인 수많은 새들이 한번 씩 쪼아대며 결국 피를 흘리며 땅에 떨어져 죽기까지 살상에 동조한다.

우리는, ‘오징어 게임’처럼 저런 인간 하나 없어져도 눈 하나 깜짝안하고 오히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승리를 자축하는 사악한 무리들로 변해 가는 것을, 스스로 감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지 모른다. 

과거의 죄가 없는데도 예수는 죄인을 위해 대신 죽었다. 그를 믿는 사람들의 죄가 지워지도록 하기 위해서 이다. 빌라도가 “ 그에게 무슨 죄가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수많은  군중은 그를 죽이라고 소리 질렀다. 

지금도 진짜 예수를 믿는 사람은 드문 듯하다.   

정원일 (공인회계사)  wi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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