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의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팬데믹 기간에 볼거리로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너무나도 끔찍한 폭력과 술수와 배신과 살인이 즐비한 잔인함과 비정함이 담긴 호러 드라마이다. 그만큼 세상이 잔인하다는 것과 무정한 것을 대변하고 있다는 말 이기도 하다. 

요즘 시대의 윤리는 내가 남에게 피해 주지 않는 한 자유롭다 라고 여기는 추세다. 그래서 현대의 도덕 관념은 진리로 인한 것이기 보다는 선택에 관한 것이다라고 현대 철학자들은 말한다. 따라서 “ 존재가 의무로 자리잡고, 서술이 처방으로 해석되거나, 또는 사실이 가치로 격상하고, 과학이 도덕으로 변화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로 대변하기도 한다. 이 말은 근대 니체가  ‘신은 죽었다’ 그리고 ‘윤리도 버려졌다’고 그 시대에 던져놓은 명제 이후로, 철학자들에게는  수세기 동안 지혜로 간주되는 구절로 인식되어 왔다. 신은 죽었기 때문에 현상은 그 이상의 의미로 이해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현대를 주도하는 몇몇 유대인 랍비와 철학자들은, 이 시대는 더 나아가 두 가지 면에서 새로운 시대적 도전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신다윈주의’라고 불리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게임 이론’ 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오징어 게임’처럼 , 존 본 뉴먼과 같은 사람은 “수학적 모델이 현대 경제에 사용된 것은 비현실적이고 실제 현실에는 맞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의 게임이론은 후에 ‘죄수의 고민’ 이라는 명제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는데 두 명의 친구가 범죄로 5년형을 받게 되었는데, 이 때 따로 떼어 심문을 받을 때, 네가 사실대로 진술하면 서로가, 자신은 자유가 되고 상대는 10년형을 살게 될 것이라고 제시 하고, 둘다 진술을 하지 않을 때는 증거 불충분으로 1년형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제시했을 때 결과는 두 사람 다 상대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10년 형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 결과적으로 둘다, 친구를 파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것이 현대인의 마음 밑바닥에 존재하는 선택의 결과이며 세태라고 설명한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신의 용서

또 생명공학자들은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비의 유약함을 완전히 배제한 냉철하고 잔인한 유전자를 가진 강한 자가 살아남고 그것은 다음 세대로 계승되어진다고 주장한다. 마치 현대의 ‘오징어 게임’처럼 강하고 무정한 자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 방식인 것이다. 이러한 이론은 역사 속에 이타적인 사람들의 희생으로 세워 온 사회의 가치 기준과는 상당한 대비를 보여준다. 1970년대 후반에, 자신과 경쟁자에 대한 반복되는 ‘죄수의 고민’에 대한 프로그햄 개발의 공모가 발표됐는데, 캐나다의 래퍼포드라는 사람이 개발한 Tit-for-Tat이라는 컴퓨터 게임이 과거의 패러다임과 달리, 최초로  죄수들이 서로 협력하는 모델로, 최종 수상하게 되는 의외의 반전이 도출되었다.     

이에 대해 토라의 시작인 창세기는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세기 9:6).”라고 이를 탈무드에서는 ‘눈에는 눈, 또는 보복적 정의’ 라고 부르는 ‘네가 한 만큼 똑같이 갚아 준다’는 것인데 이는 복수에 최종 방점이 있기 보다, 한  사람의 생명이 신의 형상을 덧입은 존재인만큼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서로 협력하여 평화를 이루어가야 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노아와의 언약과 무지개

그리고 10여년 후에는 노왁(Nowak) 이라는 폴란드 수학자가 후에 ‘Generous(자비)’ 라는 게임으로 Tit-for -Tat을 능가하는 게임을 개발해 수상했는데, 이 게임의 특성은 경쟁 상대의 마지막 행동을 기계적으로 기억하지 못하는 장치를 두어 서로의 관계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Nowak이 시도하려고 했던 것은 컴퓨터가 생산해 내는 ‘용서’의 모델이다.
탈무드는 이 ‘세상의 윤리’의 의미를 ‘용서’라는 주제를 통해 토라의 ‘노아 스토리’에서 끄집어내 설명한다. 이는 노아와 하나님이 인류와 맺은 언약에 관한 것이다. 홍수 이후 하나님이 사람들을 향해 머리를 숙이며 이렇게 언약을 맺었다.

협력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창세기8:21)”하고, 비록 인간이 계속 악하지만 하나님은 벌하지 않겠다는 용서의 다짐을 표현하고 있다. 이것이 ‘신적인 용서의 원리’라고 탈무드는 조언한다. 

이러한 신적 원리가 컴퓨터에 의해 처음 소개된 것이 ‘Generous’ 게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토라의 ‘신적 윤리’의 기반에는 ‘정의’와 ‘용서’라는 두 원리가 자리잡고 있다고 랍비들은 강조 한다. 이것이 없이는 어느 사회든 생존하고 존속할 수 없다고 조언하는 것이다. 

화해와 용서

10세기 초의 저명한 랍비, R.Saadia Gaon 은 “토라의 진리는 원인(이유)에 의해서 세워진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리 오랜 역사 동안 신의 계시가 필요하고 진정 진리는 세워지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진리에는 분명한 목적과 이유가 있지만, 인간이  깨닫기에 넘어지고 빠지는 것을 반복하며 거기에 더디게 도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탈무드는 인간의 경쟁 사회 속에서도 윤리는, 노아 시대에 보여 준 ‘신의 인간에 대한 용서의 원리’ 안에서만 세워질 수 있다고 조언한다. 사회 속에서도 경쟁이 있는만큼 서로의 협력해야 하고, 협력은 신뢰의 기반 위에 세워지고 그 신뢰는 ‘정의’를 요구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정의’ 그 자체는 ‘용서’가 없이는 단독적으로 완성 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죄수의 딜레마

자칫 능력과 근성만 있으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 착각할 수 있는 ‘오징어 게임’의 시대에 토라는 여전히 하나님의 ‘용서’를 윤리의 근간으로 가르치고 있다. 샬롬!        

정원일 호주이스라엘 연구소장
문화교류학박사(Grace Theological Seminary) 
이스라엘 & 크리스챤 투데이 신문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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