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근교인 성남시 대장동의 야산 땅에서 벌어진 메가톤급 개발 비리로 온 나라가 연일 들끓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인가는 보도를 봐 거의 누구나가 알고 있으므로 흥분하지 않고, 한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먼저 역사와 전통에 대하여 좀 쓰고 짧게 결론을 맺어보고자 합니다.

역사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과거의 불의나 비리를 감추느라 미래지향적이란 말을 입버릇처럼 쓰는 정치인들 말고요. 그러나 그 중요성에  대한 설명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제 설명은 현재 우리의 의식구조와 행태를 지배하는 게 전통이고,  그 전통은 역사적 사건과 경험에서 우리가 물려받은 유산이라는 게 핵심입니다.

과거 왕과 귀족과 양반, 그리고 현대에 와서는 대통령과 부자가 어떻게 했고, 우리 부모, 형제, 친구, 친척, 어른, 학교 선생님과 민중이 어떻게 반응하고 거기서 보고 배운 게  지금 우리의 생각과 행동 양식이란 말입니다. 앞 세대로부터 배운 버릇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버릇이 잘못되어 있을 때 고치기 위하여 고안해낸 수단이 법과 제도와 정책과 교육입니다. 그게  주효했다면 우리 사회는 지금과 같지 않을 것입니다. 해방 직후와는 달리 지금의 한국은 그 수단을 거의 완벽하게 갖추고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80까지 간다는 게 있고, 영어에서는 ‘Tradition dies hard’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굳어진 전통과 버릇은 여간해서 죽지 않는다,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제 고등학교 때는 이른바 '주먹’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상급생이 하급생을 때리고, 길거리에서 만만한 상대를 보면 쳐다봤다고 끌어다가 때리는 건 다반지사였습니다. 지금도 학교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건 바로 그 전통과 버릇입니다. 요즘 대선 정국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키는 데 일조를 한 정치인과 법관들을 규탄하는 세력이 늘어났습니다. 저 개인으로는 박 전 대통령을 감옥에 오래 가둬놓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서 청와대에서 자라면서 보고 배운 것 말고 그녀가 뭘 많이 알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저는 동정합니다.

그러나 돈 한 푼 개인적으로 먹은 게 없으니 무죄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됩니다. 말 한마디면 가져오는 재벌의 거금을 받아 멋대로 기구와 단체를 만들고 자기 사람을 앉혔다면 그건 위법이지요. 위법을 인정하고 장래를 위하여 그런 나쁜 전통은 없애야 한다는 국민적 합의 아래 본인과 추종자들이 참회한 후  석방되어야 할 것입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

지금 대장동 사건은 게이트, 스캔들, 떼도둑 등 뭐라고 묘사하든 놀라 자빠질 일은 아닙니다. 아직도 살아 있는 나쁜 전통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는 그런 나쁜 전통의 찌꺼기를 싹 쓸어내려는 국민적 결단이 중요합니다.

한국은 왕정정치 때는 물론, 이승만 정권 때도 그리 깨끗한 사회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비리는 공직자에게 급행료를 바치거나 밥을 사 ‘먹이고’, 높은 사람에게 취직 청탁을 하는 등 소소한 비리였습니다. 그러나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듯, 그런 조무래기 비리가 통 큰 권력형이며 조직적인 대규모 불의와 비리 덩어리로 바뀌고 거의 일상이 된 것은 된 것은 5.16 이후입니다. 누군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비리의 수혜자이거나 양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는 60년대 후반부터 고국을 떠나온 70년대 말까지 현장을 지켜봐 왔으므로 잘 압니다. 저 자신 직접 피해자의 한 사람이 된 적이 있습니다. 강남이 집중적으로 개발된다는 소문이 조용히 흘러 다니던 아마도 1971년 쯤, 거기  땅 한 평에 5, 6천원하던 때입니다. 땅을  사주겠다고 한 중앙행정부서가 가입자를 모집한 대규모 프로젝트였습니다. 피해자가 아마도 10여만명 될 테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세한 건 뒤로 미루려고 합니다.

그 때는 이 사건에 대하여 아무도 말 할 수 없었고, 신문에 짧은 기사 한 줄 나간 적이 없습니다. 이번에는 새우 싸움에 고래등 터진다고 대선을 앞두고 여야간 치열한 기 싸움 와중에 이게 터져 나왔고, 그나마 기레기라는 욕을 먹는 기자들이 현 정권 아래에서 가능한 극성스러운 보도를 해댄 덕으로 초비상의 국민적 이슈가 된 것 아닌가요.

박정희 대통령의 공과

어느 최고 통치자도 그랬듯이 박정희 대통령도 권력을 잡을 때는 잘 해보겠다는 애국충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발이 잘 못되면 시간이 가면서 일은 꼬이게 되어 있습니다. 힘으로 장악한 그는 그 집권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빠른 경제성장에 올인했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원칙보다 편의가 먼저였고, 정권의 유지와 연장을 위하여 막대한 정치자금을 필요로 했습니다.

박정희씨는 이미 고인이 되었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의  공과(功過) 시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공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그가 아니었더라면 한국은 ‘보릿고개’를 벗어나 오늘과 같은 경이적 경제 발전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찬양과 주장입니다. 그 중요한 평가를 물질만 가지고 할 것인가? 이에 대한 제 개인의 생각은 언젠가 따로 써보고자 합니다.

앞에서 이제부터는 그런 나쁜 전통의 찌꺼기를 싹 쓸어내려는 국민적 결단이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어떻게’가 관건입니다. ‘위로부터’를 의미하는 톱다운(Top Down)방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건 이미 해본 경험입니다. 이번만 해도 비리는 국민을 대신해서 입법을 하는 국회의원, 법과 정책을 집행하는 고위 행정관료, 위법자를 단죄하는 판검사, 약자를 보호하는 변호사가 주동이 된 것 아닙니까.

풀뿌리에서 출범해야 합니다. 자연에서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 물이 맑지만, 사회 현상은 그 반대일 수 있습니다. 민간인이 끼지 않은 비리는 없습니다. 이웃, 교회, 그 외 일상의 작은  모임과 교류에서 양심과 올바름을 의미하는 도의와 윤리가 1차 관심과 대화거리가 되어야 합니다. 전염병이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기듯 올바른 행동도 구성원 간에 퍼져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그런 우수한 국민이 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이번에도 ‘냄비’처럼 한 때 시끄럽다가 말아버릴까요.  

김삼오(커뮤니케이션학박사, 전 호주국립한국학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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