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지 않았을 땐 귀신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객귀(客鬼) 귀신이 많이 돌아다녔다. 그들은 어두워야 활개를 치면서 이곳저곳을 마음대로 떠돌아다녔다. 공동묘지 근처를 지나가다 머리 풀어 헤친 여자 귀신과 상가(喪家)에 들렀다가 아귀(餓鬼) 귀신을 만난 사례가 그 대표적이었다. 들을 것도 볼 것도 없던 때라 저녁에 한자리에 모이면 만만한 게 귀신 얘기였다.

내가 어릴 적에 할머니 손에 이끌려 건너 집 순자네 집 상가에 다녀온 뒤 갑자기 머리가 아팠다. 저녁을 먹고, 할머니는 커다란 박 바가지에 밥과 반찬을 한데 섞은 국 같은 것과 큰 식칼을 들고 내 곁으로 다가왔다. 놀란 나는 아무 말도 않고 할머니를 쳐다보니 시키는 대로만 하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그 큰 식칼로 내 머리를 슬쩍 슬쩍 긁으면서 “객귀야 내 말을 들어 봐라, 어디 돌아다니다가 갈 곳이 없어 우리 손자한테 달려드느냐! 오늘 한 상 차려 줄 테니 잘 받아먹고 썩 나가거라! 만일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이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할 것이다"라고 말한 뒤 내게 박 바가지에 침을 3번 뱉으라고 하였다. 그걸 갖고 마당으로 나가며 칼은 담장 쪽으로 집어던진 후 물밥을 짚 꾸러미에 담아서 길 근처 나무에 걸쳐두었는데, 그것이 객귀를 달래면서 물리치는 방법이었다. 이런 귀신들을 아귀라고 칭한다. 

불교의 생명관엔 여섯 세계가 있다. 이승에서 제일 죄를 많이 지은이는 지옥에 가고 그 다음이 아귀로, 생전에 식탐이 지나치면 내생에 아귀가 된다. 아귀 신은 위장은 매우 큰데 식도는 바늘만 해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항상 배가 고픈 고통을 당하다 보니, 만만한 아기들을 아프게하여 밥 한 술 얻어먹는 객귀가 되는 것이다. 그 다음은 축생으로, 미련하면서도 남의 것을 얻어먹길 좋아한 이들이 동물의 몸을 받게 된다. 네 번째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인도(人道)인데 공덕과 선행을 많이 쌓은 힘으로 사람으로 태어난다. 다섯 번째는 아수라로 상당한 위치이긴 하나 싸움하길 좋아하는 세계이며, 마지막이 천상세계로 복을 많이 지은 사람들이 가는 제일 좋은 곳이긴 하지만 지은 만큼의 복락을 누리게 되면 또 다른 업력의 결과로 인해 축생 등 좋지 않은 세계로 끝없이 윤회해야 한다는 논리가 불교의 육도(六道) 윤회설이다. 이런 세계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선 인간의 몸을 받았을 때 선행을 많이 베풀고, 진리적 지혜를 얻어 실천하면 윤회 세계에서 해탈을 얻어 삼계의 고통에서 제외될 수가 있다고 한다.

흔히들 다툼이 심하면 ‘아귀 다툼’이라고 한다. 밥 한 그릇을 두고 허기진 많은 귀신들이 서로 먹겠다고 덤벼드는 그 분위기는 볼만할 것이다. 한국의 선거판이 바로 그와 유사해 보인다. 흔히들 선거 땐 으레 그렇다고 하지만 날이 갈수록 다툼이 교묘해지고 저질스럽다. 예전엔 ‘권력자는 국민의 공복’이란 말도 가끔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잘 쓰지 않는다. 권력의 획득이 오직 출세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여겨지면서 너도 나도 그곳에 발을 담가 보겠다고 날뛰는 현장은 아귀다툼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다 보니 상대방의 허물은 풍선처럼 부풀리고 자신의 그것은 게눈처럼 감추려 든다. 그런 패거리들이 끼리끼리 날뛰면서 통합과 복지를 운위하고,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주겠다며 길길이 설치고 있으니 굶주린 아귀들보다도 그 다툼이 더 심하지 싶다.

문제는 권력 지향적 탐욕의 속성이다. 욕심의 쟁취는 결과를 더 중시하고 그 과정은 소홀히 한다. 힘만 얻으면 과정적 허물은 덮을 수 있다는 생각이 탐욕의 본성이다. 그 과정 속에서 국민의 정신은 피폐되고 불신과 증오는 더 큰 싹으로 자라나게 되니 적이 걱정이 아닐 수가 없다. 
선거 때에 너도 나도 내 말이 제일이라고 떠들어 대는 요즈음에 문득 옛 선사의 지혜로운 한 구절의 말씀이 생각난다. “꾸미지 않은 얼굴 아는 척도 안 하더니 분 바르고 화장하니 서로 보려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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