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교회 NSW 주총회에 이젠 ‘한인노회’가 없어졌다. 지난 10월 31일부로 그렇게 된 것을 뒤늦게 들었다. 착잡한 심경이다. 아니 어떤 허전한 아픔을 느낀다. 2011년 뉴카슬에서 열렸던 주총회에서 한인노회 설립안이 통과되어 크게 기뻐했었다. 그것은 1990년 초부터 20여년에 걸쳐 한인노회 설립을 위한 오랜 바램과 애씀의 결과였다. 그 과정에 여러 문제와 논쟁, 반대도 있었지만 더불어 함께 선교하자는 공동의 비젼으로 출발하였다. 또한 이를 다시 번복케 된 이유도, 지난 10년동안 한인노회가 호주교회와 더불어 함께 동역하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평가 때문인 줄 안다.

‘더불어 함께’하는 것은 참 좋은 일이다. 큰 슬픔이나 상처라도 누군가 곁에 함께하면 그 반으로 줄일 수 있다. 기쁨이나 재미도 친구들과 서로 함께 하면 갑절이 된다. 두려움이나 힘든 일도 더불어 함께 하면 훨씬 더 수월하게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더불어 함께 하기를 원한다. 서로에게 필요하고 유익하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쉽지 않는 일이다. 왜 그러할까?

먼저 이는 한편에서 원하고 애쓴다고 그렇게 될 수 없다. 양쪽 모두 이를 원하고, 이것을 위해 결단하고 실천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길고 큰 다리 건설은 처음에 양쪽으로부터 시작해서 나중에 중간에서 만나 하나의 다리로 연결시켜 완성한다. 시드니 하버브릿지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전에는 바다를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기만 했던 시티 중심과 노스지역을, 이 다리가 친밀하고 가까운 이웃 생활권으로 연결되게 하였다.

또한 더불어 함께 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며, 표용하고 통합, 연계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함께 사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이라도 각자의 성격과 하는 일, 세대가치 등이 다를 수 있다. 그래서 한가족이라도 더불어 함께하기는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물며 언어와 문화, 실제적인 필요와 전통이 다른 초문화 선교 사역은 더 큰 도전이다. 힘든 포기와 희생의 댓가를 지불해야 한다. 

호주의 첫 한국 선교사인 헨리 데이비드는 1889년 10월 2일 배로 부산에 도착했다. 그날 서울로 가서 5개월동안 한국어 공부를 했다. 1890년 3월 14일부터 3주간에 걸쳐, 걸어서 전도하며 부산에 도착했다. 그러나 천연두에 걸려 도착 다음날인 4월 5일 부활절에 사망하였다. 한 선교사의 삶과 꿈이 너무 허무하게 끝난 것처럼 보였다. 실상 이는 끝이 아니라 본격적인 시작이 되었다. 더 많은 호주 선교사들이 자원했다. 부산과 경상도 지역에 일신병원, 창신학원, 장애인  직업학교 등을 세워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했다. 가족에게도 버림받은 나병환자들과 더불어 함께하며 치유와 소망을 준것도 호주 선교사들이었다. 초기 선교사 8명은 한국에서 죽어 지금도 그들의 무덤이 남아 있다.

한인노회건으로 인해 낙심이나 자책가운데 있는 사람들의 심경을 공감한다. 다만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의 쓴뿌리가 없기를 바란다. 한인노회가 없어진 것은 어느 한편의 잘못이 아니다.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 한인노회와 호주교회 모두에게 아픔과 후회, 상실감을 주었다. 또한 한인노회에 대한 주님의 뜻과 방법이 우리의 것과 다를 수도 있다. 그 것이 무엇인지 지금은 다 알 수 없다. 아마 적절한 기다림의 때가 지나면 더 분명히 드러 날 것이다. 

연합교회 NSW주총회안에  40여명의 한인 목사와 후보생이 호주교회를 목회하고 있다. 이들의 교회는 거의 모든 지역에 흩어져 있다. 최근에는 내가 사는 고스포드에서 가까운 워너베일(Warnervale)과  나라라(Narara) 연합교회에도 한인 목사가 부임하였다. 한인 목사를 청빙한 호주교회들의 형편과 사역은 모르지만 한가지 공통점을 말 할수 있겠다. 어떤 형태로든 한인 목사와 호주 교인들의 영성이 실제적으로 만나고 경험되는 ‘더불어 함께’하는 사역들이다. 나는 그러한 교회들에게서,  문득 한인노회를 통해 기대했던 것과 비슷한 ‘더불어 함께’의 사역들을 발견한다. 호주교회 목회도 어려움과 도전이 큰 줄 안다. 그러나 복음에 빚진 선교사로 파송받은 줄 알고 목회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12월이다. 이번 첫 주부터 4주간은 대강절(Advent)이다. 성탄과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대강절의 핵심은 임마누엘이다. 이는 예수님의 다른 이름으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그 분이 내게 오심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마음이 청결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화평케 하는자 등을 말 할 수는 있겠다. 그러나 동시에 내 자신이 그런 영적 수준의 사람이 아닌 것을 고백하며 가난한 심령이 된다. 그래서 다만 주님의 은혜로, 누추한 나를 먼저 찾아와 만나 주시고 함께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또한 기독교인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이나 가정, 나라와 세계속에도 더불어 함께 하시기를 간구한다. 특별히 그 분의 소망, 사랑, 기쁨, 평화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다리는 자들에게 주님의 만지심이 경험되는, 그런 대강절이 되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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