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해외동포는 대부분이 한반도를 둘러싼 4대 강국인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에 살고 있다.
한국 재외동포사회를 이해하려면 그들의 이주사를 알아보는 일이 우선이다.
한국 명지대학에서 유일하게 해외동포학을 강의한 한상대 전 시드니대 교수가 역경과 애환으로 얼룩진 한민족의 이주사를 격주로 연재한다.
중국, 러시아, 일본, 미국으로의 이민사가 흥미있는 일화와 함께 독자들을 찾아간다.
?편집자 주
본격적인 중국 이동은 병자호란...여성 50만명 강제징집??1. 환향녀 시기(1620~1670)우리나라와 중국과는 동진(東晉 317~420)시대부터 인적교류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본격적 인구이동은 1636년 병자호란부터로 보아야 한다.
조선의 인조는 청나라 청태종에게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하고 군신관계를 맺는다.
그로 인해 소현세자, 봉림대군, 삼학사 외에도 수 많은 포로가 청나라에 끌려간다.
이 때 청나라에 잡혀간 우리나라 여성의 수가 5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당시 조선의 인구는 천만 정도였다.
청나라에 평균 200량 정도의 몸 값을 지불하고 풀려나온 여성들이 귀국한다.
그러나 고향으로 돌아온 환향녀(還鄕女)에게 또 다른 수난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정절을 잃었다고 고향에서 냉대를 받고 가문에서 축출당한다.
그들은 전쟁의 포로로 끌려가 성폭력을 당하는 순간 한번 죽고 사회적인 편견으로 버림받아 두번 죽임을 당한다.
환향녀라는 말은 나중에 ‘서방질을 하는 계집’이란 뜻의 ‘화냥년’으로 바뀐다.
?그들은 고향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먼저 깨끗이 씻어야 했다이 외에도 당시 조선시대에 당쟁, 사화의 피해자들도 국경을 넘어 도주했다.
또 과중한 부역을 못 견디거나 흉년이 들어 먹을 게 없는 농민들이 농사질 땅을 찾아 국경을 넘어갔다.
?2. 불법월강(不法越江) 시기(1670~1880)1677년 강희제는 청나라 발원지인 장백산(백두산) 일대를 보존하여 봉금지구 (封禁地區)로 정하고 개간 및 거주를 금지한다.
실은 특산물(인삼, 녹용 등)을 독점하기 위해서 였다.
조선인들이 강을 건너 중국으로 가는 길이 막혔다.
조선도 4군 6진을 두어 국경을 감시한다.
그러나 후에 조선인들은 200년간 무인지대였던 봉금지구에 불법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1811년 홍경래난은 거사 5개월만에 홍경래가 관군의 총에 맞아 죽고 2,983명이 체포되어 여자와 어린이를 제외한 1,917명이 즉석에서 처형된다.
이 난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벌을 피하기 위해 중국으로 잠입해 들어간다.
홍경래난과 얽힌 얘기 한토막. 방랑시인 ‘김삿갓’으로 알려진 김병연은 당시 선천부사로 있다가 홍경래에게 항복한 김익순을 비난한 글로 20세에 장원급제를 한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조부인 것을 어머니로부터 듣고 일생을 삿갓을 쓰고 전국을 방랑하며 산다.
그가 세상을 풍자하는 시들이 지금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    홍경래 ????김익순 ????김병연(삿갓)1840, 1860년 1~2차 아편전쟁에서 중국이 패한다.
그동안 서양국가들과 중재역할을 했다는 구실로 러시아가 청나라에게 100만 평방km의 북방영토(연해주 지역)를 강제로 할양하게 만든다.
중국에 소속되었던 고려인들은 하루 아침에 국가가 바뀌어 러시아에 소속된다.
주민등록과정에서 러시아 관헌이 “성이 뭐냐?”고 물으면 “김가입니다” “최가입니다” 하고 대답을 했는데 러시아 관리가 ‘김가이’ ‘최가이’ 등으로 적어서 지금도 러시아 동포인 고려인들의 성은 ‘가이’로 끝난다.
중국은 태평천국난으로 인구, 토지, 수세수가 저하하고 난민증가, 인구감소로 봉금정책을 해제한다.
1881 연변, 1883 봉천, 길림지구가 해제된다.
한편 조선은 1861, 1863, 1866, 1870년에 거듭되는 수재, 한재, 충재, 흉년 등으로 많은 농민이 토지를 찾아 중국으로 가고 일부 관리까지 월강한다.
1861년 한 해에만 1만명 정도가 국경을 넘는다.
3. 치발역복(雉發易服)시기(1885~1910)원래 만주족인 청나라가 조선족에게 자기 민족과 같은 모양의 복장과 머리 모양을 따라하는 치발역복과 귀화를 강요한다.
이 명령에 안 응하면 토지를 몰수했다.
그러나 조선족의 대부분이 이를 따르지 않아 만주족과 한인(漢人) 지주들의 소작인이 된다.
조선인 중 20%는 치발역복을 했고 30%는 가족 중 한 사람만 치발역복을 하고 조사 나올 땐 그 사람만 집에 있는 등 그때그때 상황대처를 했고 약 50%는 상투를 틀고 한복을 입은체로 버틴다.
1920년 전반까지 전민제라는 특수 소유형은 치발역복한 조선인 명의로 토지를 구입하는 제도를 말한다 (2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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