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두 용참사랑은혜교회 담임목사유럽 제국 중 맏형이라 할 영국, 산업혁명 이후 서구문명의 중심지가 되어왔던 런던의 상가들이 불타던 날 나는 6년 전 꼭 같은 모습으로 불타던 파리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런던 폭동은 경찰에 의해 피살된 한 유색인 청년이 도화선이 되었고 파리 폭동 역시 절도 혐의로 경찰의 추격을 받던 두 명의 아프리칸 틴에이저가 사망함으로써 시작되었다.
사건의 발단과 사회적 배경이 매우 닮아 있다.
런던 폭동은 처음에는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마크 더간’이라는 한 청년이 경찰의 과잉대응으로 사망하자 이에 격분한 청년들이 빅토리아 여왕 때 지은 140년 전통의 유서 깊은 가구상 건물을 불 지르면서 인근 여러 도시로 확산되었다.
주로 유색인종 이민자들로 절대 빈곤층을 형성하고 있는 수 만 명의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나흘 동안 런던과 인근 도시 수 백 개의 상점들을 무차별 파괴 방화 하고 약탈하는 모습이 TV 뉴스로 방영되자 영국의 지도자들은 물론 전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어떻게 민주주의 본산인 영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 날수가 있는가?2005년에 있었던 파리 폭동도 마찬가지였다.
파리 주변에는 약 2백만 명의 아프리카 출신 모슬렘 이민자들이 겟또(빈민촌락)를 이루고 살고 있는데 인종차별로 취업기회가 적은 이 지역 청년들이 파리 시내로 뛰어 나와 수 백대의 차량에 불을 지르고 두 달이 넘게 파리를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았었다.
당시 ‘작크 시락’ 대통령은 너무나 충격을 받아 3일간 말을 하지 않았다.
이 때 사회적으로 대두된 문제가 소위 유럽 종말론이다.
프랑스에는 약 6백만 명의 모슬렘이 있는데 지금은 전체인구의 10%에 불과하지만 주로 아프리카 이민자들인 이들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율로 보아 60년 후에는 프랑스뿐 만 아니라 전 유럽의 인구구조가 모슬렘이 더 많아 진다는 것이다.
일부 비관론자들은 이 때를 서구문명의 종말 시점으로 보고 유럽은 지금 종말을 향하여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한다.
노르웨이의 한 광적 지식인 청년이 일으킨 끔찍한 학살 사건도 따지고 보면 종말론적 위기의식의 히스테릭칼한 표현이라 볼 수 있다.
세계무대에서 유럽의 쇠퇴와 몰락은 금융 및 경제의 측면에서도 그 조짐이 심상치 않다.
이미 그리스, 이태리, 포르투갈, 아일랜드, 폴란드, 벨기에는 국가 신용등급이 2등 국가 수준으로 떨어 쪘고 그 다음 차례는 스페인인데 이들의 교역 파트너이자 맹주격인 미국이 이들을 구해내기는 제 코가 석자라서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TIME Aug22. The End of Europe) 특히 포르투갈에 이어 두 번째로 빈부격차가 심한 영국은 카메룬 정부 이후 청년 실업률이 20%에 이르렀기 때문에 리버풀 대학의 ‘스코트’ 교수는 이번 사태를 주저 없이 ‘계급간의 투쟁’이라고 정의한다.
이러한 서구 사회의 경제적 쇠퇴는 중국의 부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일찍이 저들의 경쟁상대가 되어왔던 일본뿐 만 아니라 도약중인 한국의 부상도 유럽제국에 위협이 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서 유럽의 3대 주축국인 영, 독, 불은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다지만 이번 런던 폭동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 나라들도 내부적으로는 인종적 갈등이나 청년 실업 문제 등 각종 사회 불안요인이 이렇게 폭발직전으로 팽배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명저 ‘문명의 충돌’에서 “미래의 가장 위험한 충돌은 서구의 오만함과 이슬람의 편협함 그리고 중화의 자존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할 것”이라 고 예언한 바 있다.
유럽은 이제부터 그 오만함을 버리고 종교적 인종적 대타협과 화해의 길로 가지 않으면 그 찬란했던 서구문명 시대는 미구에 종말을 고하고 아마도 그 주역의 자리를 중국을 비롯한 아세아 제국에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 와중에서 상대적으로 약하고 소외되었다고 느끼는 모슬렘 세력은 점점 과격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유럽이 직면한 인종, 종교 및 계층간의 갈등은 자업자득 이라 할 수 있다.
프랑스는 과거 식민지 알제리아 사람들을 데려다가 프랑스 말을 가르쳐 노예로 부렸었는데 돌아가지 못한 이들이 지금은 프랑스 시민이 되어 함께 섞여 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프랑스인들의 차별과 멸시로 도시에 나가 구걸을 하거나 아니면 도시주변에 빈민가를 형성하여 살고 있는 실정이다.
그들은 종주국의 종교인 기독교를 선택하지 않고 모슬렘이 됨으로써 상호 갈등은 더욱 심화되었다.
영국도 사정은 비슷하다.
수많은 나라들을 점령해서 식민지 삼고 영어 가르쳐 노예 삼았는데 유럽인들은 이제 이들을 포용하지 못해서 사회가 중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그래도 흑인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사회가 변화되었지만 유럽은 그렇지 못해서 미래의 전망도 비관적이다.
사실 서구문명이 중국의 황하문명이나 인도의 인더스문명을 앞지른 것은 르네상스 이후, 좀 더 엄밀히 말하면 산업혁명 이후라 말할 수 있다.
삼천 년 전의 비단은 말할 것도 없고 채륜이 종이를 발견한 것은 서양보다 일 천 년이나 앞선 서기 105년 이었다.
인쇄술, 화약, 금속문화, 도자기 모든 것이 서양보다 몇 백 년 앞서 있었다.
사무엘 헌팅턴이 문명의 충돌과정에서 중화의 자존심을 지적한 것은 놀라운 혜안이다.
청나라 왕조가 유럽제국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되었던 일, 재빠르게 제국주의를 흉내 내었던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수십만 시민이 학살당했던 저 남경대학살의 뼈아픈 역사를 중화인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금세기에는 지난 5백 년간의 서구문명시대가 어떤 형태로든 종말을 고하고 중화문명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것은 역사의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
한국은 일본과 달리 대륙에 붙어 있는 중화문명의 한 지류이다.
머지않은 장래에 통일될 조국은 중국과 더불어 세계역사를 주도해 나갈 것이다.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