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는 타고난 웅변가다.
청중을 휘어잡는 거침없는 화술, 권위 있는 목소리, 논리의 정연함, 그리고 그 진지한 표정과 제스처, 어느 것 하나 험 잡을 데 없는 탁월한 웅변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이렇게 말은 청산유수인데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살 같아서 내년 1월이면 그가 취임한지 벌써 만 3년이 된다.
만약 오바마가 내년 11월로 다가온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다면 이제 임기 중 마지막 한해를 남겨둔 셈이 된다.
그가 취임한 이후 발생한 금융 위기, 사상 최고를 기록한 14조 3천억 달러의 재정적자, 9 퍼센트에 육박하는 1천 4백만 명의 실업자, 국가 신용등급의 하락 등 큼직한 일들만 손꼽아 보더라도 오바마를 사랑하고 지지했던 많은 사람들을 혼란시키기에 충분하다.
실제로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는 열 명 중 여섯 명의 미국 시민이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 잘못 가고 있다고 대답하고 있다.
그러면 미국정치가 지금 왜 이렇게 되어 가고 있는가? 대통령이 무능해서인가? 아니다.
오바마는 무명의 흑인 초선의원으로서 일약 미국 대통령이 된 시대의 행운아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국 역사상 가장 불운한 대통령이기도 하다.
그것은 중국의 부상으로 국제무대에서 수퍼 파워로서의 미국의 입지가 나날이 쇠퇴해 가는 그런 시기에 그가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4조 3천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적자의 요인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미국이 현재 당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드러난다.
제일 큰 것부터 살펴보면 부시 행정부 때 세금 감면해 준 것이 1조 7천억 달러, 중국 등 채권국에 지급한 이자가 1조 4천억 달러,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비용이 1조 3천억 달러, 뭐 이런 순서로 되어 있다.
(Aug15 TIME) 그렇다면 오바마는 지금 조지 부시가 재선을 위한 인기정책으로 감면해준 세금과 잘못된 정보로 무모하게 일으킨 전쟁의 말하자면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는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국가도 빚이 많으면 파산하긴 마찬가지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국공채 이자 때문에 미국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이걸 엄청나게 매입하고 있는 중국은 점점 더 부자가 되고 있는 중이다.
이럴 때는 나라 전체가 허리띠 졸라매고 부자는 세금 좀 더 내서 국가부채를 줄여나가는 것이 경제정책의 정석이다.
그래서 오바마의 지금까지의 정책기조는 부자나 기업은 세금을 좀 더 내자는 것 이었는데 ‘티 파티’를 위시한 보수진영에서 벌떼처럼 일어나 오바마 퇴출운동을 벌리게 된 것이다.
'티 파티'(Tea Party) 란 일종의 시민운동으로 공화당원들이 주축이 되어 있는데 지난번 선거 때는 바람을 일으켜서 민주당이 지배하던 하원을 공화당 지배로 바꿔 버려 오바마 행정부가 국정을 수행하는 것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
이들의 주장은 일체의 세금 증수를 반대하고 차기 선거에서 오바마를 축출하자는 것인데 이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미네소타주의 여성 하원의원 ‘미쉘 백맨’은 지금 유력한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부상? 하고 있는 중이다.
?미국에는 보수 세력의 발언권이 커서 대통령이 세금 좀 더 내자 하면 인기가 추락한다.
물론 미국에도 국가가 처한 문제들을 꿰뚫어보고 “나 같은 부자들이 솔선해서 세금을 더 내야 한다”고 주장하는 양심적인 부자도 있다.
바로 내가 존경하는 ‘워렌 버핏’ 회장이다.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백신개발에 써달라고 ‘빌 게이트’ 재단에 3백억 달러를 쾌척한 바로 그분이다.
미국에는 그래도 이런 부자들이 있어서 이 나라가 아주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재선에 발목이 매인 오바마는 일단 눈높이 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내놓은 것이 지난 9월8일 오바마가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야심차게 발표한 4,470억 달러 규모의 일자리 창출법안이다.
기업의 세금을 감면해서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것인데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서 그 실효성은 의문이다.
경제논리에 민감한 증권시장이 전혀 반응하지 않은 이유이다.
“미국은 WASP (White Anglo Saxon Presbyterian)으로 지칭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이 ‘집단이기주의’를 깨트려 버리지 않는다면 절대로 희망 없는 나라”라고 탄식하던 한 언론인의 말이 생각난다.
오바마를 낙선시키기 위한 보수 세력의 움직임이 매우 조직적인 단계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사면초가에 처한 오바마에게 한 가지 다행스런 일이 있다면 그것은 현재로서는 공화당 대선 주자 중에 그와 견줄만한 거물급 대항마가 없다는 것이다.
메사추세츠 지사를 지낸 ‘미트 롬니’가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인품이나 학덕이 오바마와 비교될 인물은 아니다.
그밖에 티파티 운동의 리더 ‘미쉘’ 의원, 현 텍사스 주지사 ‘릭 페리’, 전 유타주지사 ‘존 헌츠만’등 고만 고만한 후보들이 나서고 있지만 이들의 정견 내용을 보면 한결같이 정부지출은 줄이고 세금을 감면하자는 틀에 박힌 주장들인데, 역사의식도 없고 시야가 좁아? 이들 중에서 차기 미국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공화당의 고민은 아무리 인기가 없다지만 현직 대통령을 이기려면 이들을 뛰어 넘는 전혀 다른 인물이 나와 주어야 하는 데 마땅한 인물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안철수’ 뜨듯 하루아침에 정치력이 검증된 바 없는 사람이 여론조사에서 대권 선두주자로 부상하는 일은 미국에서는 일어나지 않는다.
오바마도 미미한 지지율로부터 시작해서 타임지가 인물을 알아보고 띄우기까지 몇 달이 걸렸고 경선에 참여한지 8개월 만에야 힐러리의 지지율을 따라 잡았다.
?언제나 느끼는 일이지만 대권은 하늘이 내는 것이다.
하늘이 그 시대가 필요로 하는 인물을 불러다 쓰는 것이다.
오바마는 이 시대에 미국이 필요로 하는 인물이다.
지난 행정부가 저질러 놓은 일들을 뒤치다꺼리만 하는 그런 불운한 대통령이 아니라 흑인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아메리칸 드림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는 변화를 필요로 하는 이 시대에 변화의 방향을 제시한 위대한 대통령으로 역사에 남기를 바란다.
그는 인종차별적 발언과 인신공격을 일삼으며 물고 늘어지던 정적 힐러리를 포용해서 중용한 넉넉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만한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
오바마는 미국의 장래를 위하여서도 재선되어야 하며 또 그렇게 될 것이다정 두 용참사랑은혜교회담임목사
저작권자 © 한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