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두 용 (참사랑은혜교회 담임목사)옛날이야기다.
1953년 한국전쟁이 끝나자 피난길에서 돌아온 사람들은 전 국민이 거지나 다름없었다.
어린이들은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있다가 학교에서 나누어 주는 우유가루나, 구호물자로 배급되던 옥수수가루를 나눠 먹으며 허기를 달래야 했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이유 없이 어른들에게 얻어맞기가 일쑤였다.
처절하게 생존해야했던 그때, 아이들이 뭐 그리 소중했겠는가?? 그래서 무언가 알 수 없는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아이들은 지나가는 기차나 자동차를 보면 멀리서 돌을 던지고 도망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당시 미군은 해방의 은인이요 공산화를 막아준 고마운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미군 트럭이 지나가면 멀리서 돌을 던졌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뉴욕타임즈 기자가 한심했던지 “쓰레기통에도 장미는 피는가?” 라는 유명한 사설을 썼다.
아마도 그는 이런 나라에 무슨 장래가 있겠나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민족을 위해 미군이 피를 흘릴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먼저 전혀 상반된 시선으로 한국 민족을 바라본 사람이 있다.
1920년 인도의 시성 타고르가 쓴 ‘동방의 등불’이라는 제목의 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 일찌기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였던 코리아? 그 등불 다시 한 번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중략) 진실의 깊은 곳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국으로 내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타고르은 한국에 한 번도 와 보지 않고 어떻게 한국을 마음의 조국이라고 했을까? 그것은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지만 대충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이렇다.
그는 무슨 일이었는지 1920년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징용된 조선 노동자들과 유학생들을 만났던 것 같다.
비록 노동자라 할지라도 집집마다 지필묵과 책이 있었고 특히 유학생들과 대화를 해보니 박식, 총명하고 눈은 빛나고 있었다.
타골은 아마도 그들을 통해서 조선 민족의 장래를 내다보았던 것 같다.
100여 년 전 유럽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전도 집회를 할 때에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매가 한없이 선량하고, 검은 눈동자는 깊은 물처럼 총명해 보였다’는 기록이 있다.
‘쓰레기통의 장미’ 이야기를 귀 아프게 들으면서 가슴에 상처를 안고? 열등감 속에 성장하던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은 뜻 있는 선생님들이 가르쳐준 이 타고르의 시를 책상머리에 써 붙여 놓고 “아니야, 우리는 그런 민족이 아니야 우리는 깨어나야 돼!” 하며 서로를 위로했던 기억이 있다.
어떤 시각이 옳았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아는 바와 같다.
시드니 거리에도 차량 몇 대 지나가면 벌써 현대차가 하나 지나간다.
그만치 경쟁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가끔 TV에서? Life is Good ! 하며 선전할 때는 웃음이 절로 나온다.
사실 LG가 럭키금성의 약자 일터인데 둘러다 붙이기도 잘했다.
요술 상자 같은 삼성 스마트폰은 또 어떤가. 고집스레 모발폰 사용을 거부하고 있는 시대에 뒤떨어진 노인에게 아내는 보란 듯이 최첨단 스마트폰을 하나 구해 오더니 이것저것 찍어대는가 하면 여기저기 문자를 보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한다.
세상이 너무 좋아졌다는 것이다.
한국이 언제 모발폰 만드는 걸 알았나? 불과 몇 십 년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한국제품이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 ‘ 25 시’의 작가 게오르규는 작품을 통하여 서구문명이 초래한 인간성의 상실을 고백하면서 새로운 희망은 동방으로부터 올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기자들이 작품 속에서 암시한 동방이 어디냐고 묻자 그는 서슴없이 한국이라고 대답했다.
그는 1975년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남서해안 3300개의 주옥같은 섬들과 설악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너무나 감탄한 나머지 ‘25시를 넘어 아침의 나라로’ 라는 저술을 내었다.
그는 한국을 가리켜 대륙을 여는 열쇠 모양으로 마치 값진 보석으로 만든 지구의 귀걸이와 같다고 말했다.
소설가이기 전에 루마니아 정교회의 사제이기도 한 게오르규는 아마도 영성이 깊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 앞을 좀 내다봤다는 말이다.
며칠 전 ANZ 스타디움에서 열린 K-POP 공연에서 눈물을 흘리며 함께 춤추며 따라 부르는 중국인이나 백인 청소년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래, 이제는 한국의 소년 소녀들이 세계인의 혼을 빼앗을 차례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외국에 나와서 피부색갈이나 또는 영어 때문에 주눅 들어 있는 이민자들에게 세상에 이런 선물이 또 있을까? 이제는 저들이 노래 말 때문에라도 한국말을 배워야 하고 저들은 이제부터 우리네 아들딸들을 흉내 낼 터인데 우리가 영어 좀 못한다고 주눅들 일이 무언가.나는 김연아가 백인들의 전유물 이었던 피겨 스케이팅으로 세계를 제패할 때 확실히 느낀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민족이 세계에서 그 어떤 민족보다도 우수한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수한 체력, 우수한 미모, 우수한 두뇌, 우수한 음악성, 정교한 손재주, 어디에 내 던져도 살아남는 적응력과 인내력, 등등, 이 모든 것이 금세기 이후는 한민족이 세계 문명을 주도해나갈? 민족이라는 확신을 갖기에 충분하다.
? K-POP 공연을 보도하던 SBS 아나운서가 흥분한 나머지 "K-POP 이여 영원하라" (K-POP Forever! ) 외치며 뉴스를 마쳤다고 한다.
대중음악이야 유행따라 흘러갈 수도 있겠지만 그 밖에도 영화나 스포츠, 음식문화, 전자제품, 컴퓨터 게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나고 있는 작금의 이 한류 열풍은 일시적인 것 같지는 않다.
? 그야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활짝? 핀 것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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