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잃었다.

처음에는 어이가 없었다.
덕분에 정초부터 한 해의 시작이 산뜻하지 못했다.
?지난해 말 한국에 가면서 가톨릭성모병원에 건강검진 프로그램을 미리 예약했다.
호주에 오기 전에 했으니 꼭 6년만이었다.
그런데 결과에서 건강에 안 좋은 부분이 발견된 것이다.
미리 발견했으니 고마운 일인지 아니면 왜 몸을 미리 잘 챙기지 못했을까 후회해야 하는 것이지 그것조차 혼돈스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새해에는 건강검진을 꼭 받으세요”라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외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나쁜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나?”며 이것이 두려워 검진을 받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증상을 보일 때는 이미 늦다.
건강할 때 미리 예방하는 차원에서 또는 만성질병의 위험인자들을 미리 찾자는 의도에서 건강검진을 받자는 것이다.
질병을 예방하는 게 발견보다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건강검진에 들일 비용과 시간도 아까운 것이다.
‘난 아직 괜찮아, 주일마다 축구도 하고, 술도 그렇게 안 마시고, 담배도 조금밖에 안 피우고…’하며 손을 내젓는다.
호주에서의 삶은 한국의 동년배들보다 유유자적한 면도 있기 때문에 건강검진까지 필요치 않다는 것이다.

40대 이후부터는 만성질환이나 암 같은 병의 빈도가 늘어나기 때문에 2년에 한 번 정도는 검진을 받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시드니 한인들은 특별한 증세가 없는 한 건강을 자신하고 있다.
도대체 어디에서부터 나오는 자신감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는 직장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하기 때문에 1년에 한번씩 최소한 피와 소변검사는 의무적으로 한다.
그러나 자영업자가 대부분인 이민사회에서 병원에 예약하고 찾아가고 결과 듣고 그 과정이 귀찮고 바빠 미루고 미루다 보니 1-2년은 기본이고 10년은 그냥 지낸다.
??
건강검진은 검진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번에 또 한번 느낀 것은 검진 시 식습관에 대한 문진표를 작성하면서 내 스스로 깜짝 놀랐다.

‘물은 하루에 얼마나 많이 드십니까’ ‘생선은 1주일에 얼마나 드십니까’ ‘야채와 과일은 하루에 얼마나 드십니까’ ‘우유 및 유제품은 하루에 얼마나 드십니까’ 부끄러운 식습관을 가졌다는 것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은 검사 결과를 지표 삼아 두고두고 보면서 생활습관을 꾸준히 관리하고 있다.

건강검진 프로그램은 신체적인 것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우울증 같은 것도 측정한다.
결과 판독을 하던 담당 직원은 “이민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 하나가 우울증이나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정을 붙여도 호주에서의 삶은 늘 정신적으로 뭔가를 경계해야 하고 내가 제대로 알고 있나 신경써야 하는 부분이 있다.

‘인생에서 돈을 잃으면 조금 잃은 것이요, 명예를 잃으면 절반을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은 것’이라고 한다.
이번 건강의 적신호로 나는 인생에서 정말로 중요한 것을 알았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가까운 부모나 배우자, 자식들조차도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으니 내 몸 내가 챙기자는 말을 하고 싶다.

여러분, 제발 건강검진을 받으세요!
이은형 기자 catherine@hanho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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