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두 가지 종류의 노래 악보집이 있었다.
하나는 붉은 겉 표지를 열면 해설과 함께 흘러간 옛 노래들이 들어있는 것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던 나는 이 악보집을 공부 책처럼 연구하길 즐겼다.
즐거이 습득한 ‘두만강 푸른 물에’를 부를 때면 이북이 고향인 아버지는 먼 산을 보시며 답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셨다.
‘나는 가슴이 두근 거려요.17살이예요’를 부를 때면 어머니는 젊은 시절로 돌아가신 듯 홍조를 띄며 웃으시곤 했다.
부모님께서 좋아하시는 노래를 불러 드리는 일이 어린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재롱이자 효도였던 셈이다.

또 하나의 노래 악보집은 레코드 판과 함께 이태리 민요, 독일가곡, 오페라 아리아 등의 악보와 성악가 및 해설이 들어있는 명곡 전집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이 책을 내게 국민학교 입학 선물로 사 주셨다.
흘러간 옛 노래의 음악은 친근하게 다가온 반면, 이 외국의 명곡들은 멋지게 느껴졌다.
나는 잠자는 것을 잊을 만큼 악보를 보며 음악 듣기를 즐겼다.
레코드 판에서 원어로 노래가 나오는 것을 한국어 가사를 보며 우리 말로 따라 불렀다.
친구들이 동요를 부를 때 나는 ‘마리아 마리’ ‘슈베르트의 세레나데’를 자주 불렀다.

클래식 음악과의 동거는 학교생활을 통해 더욱 깊어졌다.
국민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까지 빠짐없이 들어있던 음악수업을 통해 음악이론 및 세계의 민요를 포함하여 바로크 음악부터 낭만파 음악까지 배웠다.
점심시간에는 방송반을 통해 아름답고 고상하며 듣기 좋은 클래식 음악을 즐길 수 있었다.

또한 합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육 환경 속에서 하나됨이 만들어내는 화음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국 민요들도 서양의 화성을 입으며 합창곡으로 변모되어 많이 불려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대중음악과 동거하는 시간이 생겨났다.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는 순수한 사랑으로 엮어진 화목한 가정의 모델이 되었다.
통기타 가수들의 노래는 수학 여행가서 제일 많이 부르는 목록이 되었다.

친구들중에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별이 빛나는 밤에’ 마니아들이 많았다.
학생 때 교회에 가면 예배시간에 찬송가를 불렀다.
그 외의 모임에서는 주로 가스펠 송을 불렀다.
청소년에게 찬송가는 클래식 음악, 가스펠은 대중음악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세대에는 부모시대의 음악도 우리 것이었다.
대중음악으로는 트로트, 팝, 재즈, 락, 디스코 음악까지 즐겼다.
클래식 음악에서는 바로크, 클래식, 낭만파, 후기 낭만파, 대학가서는 현대음악까지 들었으니 폭과 깊이는 세대를 넘어 가히 세계적이었다 할 수 있다.
세계화를 부르짖지 않아도 음악적으로 이미 세계화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호주로 이민와서 25년을 살면서 음악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다.
자녀 세대가 가지고 있는 음악적 편식 때문이다.
한인의 호주 이민 역사가 50년을 넘기며 자녀 세대는 2세까지 형성됐다.
이제 2 세대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의사 소통의 부재를 겪는 것은 음악 등 문화적 편식 때문이 아닐까? 자녀를 K 팝의 인기에 던져 놓지만 말고 음악적 편식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부모들이 늘어 나기를 소망해 본다.

김정혜 (샤인 코러스 지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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